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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도종환

늦가을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깊어갑니다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아름답습니다 지금 푸른 나무들은 겨울을 지나 봄 여름 사철 푸르고 가장 짙은 빛깔로 자기 자리 지키고 선 나무들 모두들 당당한 모습으로 산을 이루며 있습니다 목숨을 풀어 빛을 밝히는 억새풀 있어 들판도 비로소 가을입니다 피고 지고 피고 져도 또다시 태어나 살아야 할 이 땅 이토록 아름다운 강산 차마 이대로 두고 갈 수 없어 갈라진 이대로 둔 채 낙엽 한 장의 모습으로 살아져 갈 순 없어 몸이 타는 늦가을 입니다 도종환

문학의뜰 2023.12.06

뒤에서 바람 부니 / 백무산

뒤에서 바람 부니 여자의 젖가슴에 안겨 철든 아이처럼 태연스레 뻐끔뻐끔 주위를 둘러보는 저 개는 지가 개가 아닌 줄 아는 모양이다 말귀 다 알아듣고 침실에 발랑 누워 주인 집 아이에게 질투도 하고 거실에서 콩당콩당 뛰고 뒹구는 저 개는 지가 개가 아닌 줄 아는 모양이다 손님 찾아가면 슬금슬금 꼬리를 감추더니 주인 나오면 극성으로 짖어대고 주인이 말리면 더 큰 용맹 발휘하여 물려고 덤벼드는 저 개는 지가 개가 아닌 줄 아는 모양이다 개에게는 저 짓이 생존의 방식이라지만 개는 자신이 개임을 부정해야 개밥 먹을 수 있다지만 이런 인간들이 도처에서 콩당콩당 뛰고 있다 주인 나왔겠다 충직하게 아무렇게나 용맹스럽게 짖어댄들 어떠리 뒤에서 바람 부니 아무렇게나 어떠리 백무산 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문학의뜰 2023.12.02

그런 날 있다 / 백무산

그런 날 있다 생각이 아뜩해지는 날이 있다 노동에 지친 몸을 누이고서도 창에 달빛이 들어서인지 잠 못 들어 뒤척이노라니 이불 더듬듯이 살아온 날들 더듬노라니 달빛처럼 실체도 없이 아뜩해 살았던가 내가 살긴 살았던가 언젠가 아침 해 다시 못 볼 저녁에 누워 살아온 날들 계량이라도 할 건가 대차대조라도 할 건가 살았던가 내가 살긴 살았던가 삶이란 실체 없는 말잔치였던가 내 노동은 비를 피할 기왓장 하나도 못되고 말로 지은 집 흔적도 없고 삶이란 외로움에 쫓긴 나머지 자신의 빈 그림자 밟기 살았던가 내가 살긴 살았던가 백무산

문학의뜰 2023.12.02

인간의 시간/백무산

인간의 시간 ​ ​ 마른 풀잎 위로 부드러운 빗방울이 깃털처럼 내린다 구름은 산자락까지 내려와 게릴라처럼 주의 깊다 비에 씻긴 바람도 저희들끼리 아주 주의 깊게 착지를 찾는다 개울은 작은 풀씨 하나라도 깨울까봐 뒤꿈치를 들고 걷는다 시간은 자신의 거처를 몰라 머뭇거린다 ​ 나무들도 옷을 벗는다 지난 가을에 외투만 벗은 나무는 마지막 단추까지 푼다 소리없이 안으로 옷을 벗는다 ​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대지에 무슨 음모가 시작되는가 새들도 숨을 죽인다 언제 명령이 떨어지는가 누가 발진을 지시하는가 시간도 순응하는 시간 ​ 일사불란한 지휘계통도 없이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순응하는 지휘계통 흙 알갱이 하나하나 수소처럼 가볍다 새들도 숨을 죽인다 ​ 대지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거역한다 소모와 죽음의 행로를 걸어..

문학의뜰 2023.12.02

시절인연​

시절인연 ​ 한시대를 함께 살아도 인연이 없으면 빗겨가지만 시절인연이 닿으면 멀리 살아도 만나지고 바쁘게 살아도 만나지고 계획하지 않아도 만나지는 것이 인연이다 ​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줄 알지 못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줄 안다고 피천득시인은 노래했다. ​ 우리의 인연은 보통인연이 아니니 소중하고 또 소중하여라. ​ 2023.11.12.수락산에서

자작시 2023.11.19

평상주-13.17km(2023.11.19)

평상주-13.17km ​ 2023년11월19일 일요일 장소: 인천대공원 거리: 13.17km 시간: 1시간30분59초 평속:8.7km/h 기온: 3.0/14.0℃ 신발: Asics Gel-Kayano 29: 88.69km 소모열량: 808kcal ​ ​ 어제 하루종일 운전을 했더니 피곤하다. 아침에 감기기운이 있는것 같아서 망서렸다. 하지만 어제먹은 음식들이 뱃속에 정체되어 나올 생각을 안한다. 지난주에는 김장한다고 해서 운동을 못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조건 뛰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막상 대공원엘 나오니 기분이 상쾌하다. 이제 큰 마라톤대회는 다 끝나고 날씨도 추워지니 운동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몸을 풀면서 준비운동을 하다보니 속에서 기별이 온다. 답답했던 속이 홀가분해 졌다. 천천히 달리면서 몸상태..

마라톤이야기 2023.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