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성묘와 벌초(2023.09.24)

털보나그네 2023. 10. 3. 16:46

성묘와 벌초

2023년09월24일 일요일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추석을 보내는 모습도 변해가고 있다.

점점 유교적인 관습은 사라지고 편리와 실속의 관념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집안의 사정에따라 그 변화의 속도는 제각각이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세대는 다 돌아가셨다.

형님부부가 천주교신자이고 장지가 천주교묘원이라 천주교식 장례를 치렸다.

그리고 모든 절차를 천주교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군자동에 계시던 부친의 묘도 용인천주교묘원으로 이장하여 모친과 함께 합장했다.

장차, 좀더 가깝고 관리가 수월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 9월 13일 와이프랑함께 용인천주교묘원에 가서 부모님산소에 인사를 올리고 왔다.

추석때는 복잡할 것 같아서 미리 다녀온 것이다.

 

 

그리고 어제 형님과 나는 괴산 군자동산소와 쌍곡문수암 할아버지산소에 다녀왔다.

명일동에서 6시에 출발, 쌍곡에 8시에 도착하여 아침을 해결하려는데 이른시간이라 영업하는 식당이 없다.

다행히 한곳에서 우여곡절끝에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군자동산소는 보람원(코오롱청소년수련원)내에 있기에 산소에 가려면 정문을 통과해야 한다.

매번 번거로움이 있는데 이번엔 무인시스템으로 바뀌여 전화해서 비밀번호를 받아 바리케이트를 열고 들어갔다.

입구쪽에 있는 '캠핑파크' 에는 이용객이 많아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러나 주차장에 주차를 해 놓고 산소로 올라가는 길은 청소년수련장이용객이 없다보니 길이 좋지않다.

빗물애 길이 파이고 나무가 쓰러진체 그대로 있다.

얼마전 충주에 사는 장조카내외가 와서 벌초를 해놓았다.

우리는 그때 못한 고모할머니,할아버지산소만 하면 되어 많이 수월하다.

벌초를 끝내고 문수암할아버지 산소를 가기위해 다시 쌍곡으로 돌아왔다.

계획이 잘못되었다.

도착지를 보람원으로 해서 벌초를 하고 쌍곡으로 넘어갔으면 시간이 절약되었을텐데...

그리고 할머니산소로 가는 길은 버섯체취를 막기위해 출입을 금지해 놓았고 주차공간을 모두 폐쇄해 버렸다.

처음에는 할머니산소까지 다녀오려 계획했었는데 시간상 점심을 먹고 할아바지산소만 다녀와야 겠다.

점심은 '송이식당'에서 버섯찌게와 버섯부침을 먹었다.

할아버디산소는 칠보산 들머리인 '떡바위'에서 출발한다.

시간이 1시다.

등로를 따라 가다가 1 km지점에서 왼쪽으로 길이아닌 경사구간 올라간다.

자세히 보면 희미한 발길이 있다.

이 산줄기에도 산소가 여러군대 있다.

예전엔 가깝게 느껴졌던 이 길이 오늘은 멀게 느껴진다.

할아버지산소에는 상석과 비석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때는 없지만 풀도 없어서 벌초할 것은 없다.

주변정리만 하면 되고 잔 올리고 인사하는것에 큰 의미가 있다.

하산을 하면서 계곡물에 족욕을 하니 피로가 그방 풀려버린다.

하산을 완료하니 3시반이다.

출발을 위해 레비를 작동하니 명일동 도착예정시간이 6시09분이다.

동서울 만남의 광장에서 심한정체가 있었지만 비교적 수월한 고속도로사정이다.

다른집안 사람들은 지혜를 모아 산소관리를 잘 하는것 같은데, 우리는 힘든부분이 참 많고 앞으로 숙제도 참 많다.

형님과 여러가지 생각들을 이야기해 보았지만 뾰죽한 수가 떠오르지않는다.

또다시 내일로 미루고 만다.

보람원주차장에서 산소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길.

 

쌍곡'떡바위' 칠보산들머리에서 할아버지산소가는 길.

 

 

 

 

 

 

 

 

 

오늘 9월24일 의왕시에 있는 하늘쉼터에 계시는 안양형님에게 와이프랑함께 다녀왔다.

어제 산소에 다녀왔던 얘기를 하며 함께하지못한 서운한 맘을 전했다.

이제 산소를 쓰지않고 납골당(納骨堂)에 모시는 풍습이 대세인 요즘이다.

이것이 실속과 편리함이 가져온 세로운 장례문화다.

 

 

 

동그란 길로 가다.

박노해

누구도 산정에 오래 서 있을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환희의 날들은 짧다

고난의 날들도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