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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성은 아직 정식 시굴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성격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은 상태이나 입지(立地)나 축성기법(築城技法), 성 안에서 발견되는 유물 등을 고려할 때 이 산성은 서울 지역으로 진출한 신라가 한강 유역 방어를 위해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도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산성 축성 이전에도 청동기시대부터 주거유적이나 간단한 방어시설이 조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정상부의 평탄한 곳과 경사면 일대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청동기 시대의 무문토기류(無紋土器類)와 삼국시대~통일신라 시기의 경질토기편(硬質土器片)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거북바위.
2.3km
아마도 이쯤에서부터 길를 잘못잡은 듯 하다.
이후로 이정표도 없이 한없이 하산하는 통로가 이어져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길를 물어볼 수도 없었다.
큰길까지 내려와서야 사람을 만나 길를 묻고 방향을 파악하고 길를 정해갔다.
하지만 생각지않게 청학동길를 알게되었고 경험하게되어 나쁘진않았다.
하산길2km
도로길3km
반가운 청학리.
남양주 별내면의 청학동 방향으로 오르는 수락산은 저 너머 서울 상계동에서 오르는 길과는 전혀 다른 산같은 느낌이 있다.
동쪽 자락엔 김시습이 세조 왕위 찬탈 이후에 은거했다는 폭천정사(瀑泉精舍ㆍ폭포와 샘의 절간)가 있었다.
1472년에서 1480년 쯤의 8~9년간의 일이다.
은거지의 자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지만 인조, 숙종대의 사람인 남용익(1628~1692)의 기록(간폭정기)에 의하면 옥류폭포 옆에 간폭정이 있고, 그 정자의 5리 위에 매월당의 은거지가 있었다고 하니 그 위치를 어림짐작해 보면 228개의 돌계단을 숨차게 오른 뒤 만나게 되는 금류동천(金流洞天)이라 새겨놓은 바위 부근쯤 된다.
5세 신동과 금오신화, 생육신으로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자취가 있는 양주의 수락산
청학리에서 오르는 수락산 옥류동 은류폭포와 금류폭포 그리고 내원암.
이곳에 경주금오산,설악산 오세암,양주 수락산등 산수와 좋은경관을 예찬한 김시습을 만났다.
세조찬탈이후 10년간 방랑....
1471년(성종2년) 37세에 서울에 올라와 수락산 동봉에 폭천정사를 짓고 10년를 지냈다.
'간폭정기'라는 고서의 기록으로는 그곳이 내원암 인근이라는데...
숨결이 느껴진다...
한 점 두 점 떨어지는 햇살 밖
세 마리 네 마리 외로운 오리들 돌아가네
가는 기러기는 낮게 돌며 산을 넘지 못하고
찬 까마귀는 앉으려다 도로 놀라 날아가네
하늘 밖으로 눈을 부릅떠 본다, 천의(天意)에도 어찌 한계가 있단 말인가
붉은 빛을 모아 뒤집어진 햇살이 맑은 하늘 빛을 흔드네
一點二點落霞外 일점이점낙하외
三介四介孤鶩歸 삼개사개고목귀
去雁低回不能度 거안저회부능도
寒鴉欲棲還驚飛 한아욕서환경비
天外極目意何限 천외극목의하한
斂紅倒景搖晴暉 렴홍도경요청휘
-김시습의 '수락잔조(水落殘照ㆍ수락산 노을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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