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경남사천 와룡산(2016.04.16~17).

털보나그네 2016. 4. 18. 21:35

 Ocean of time / Axel Rudi Pell

 






와룡산()


와룡산소개

와룡산은 높고 낮은 봉우리가 아흔아홉 개로 형성되어 구구연화봉 이라고도 불리며,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하여 와룡산이라고 불린다. 와룡산 지명의 유래와 관련된 또 다른 얘기가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여덟째 아들 욱은 문장에도 밝았지만 지리에도 정통하여 유배지 사수현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와룡산 지기()의 영험()함에 부합하고자 아들에게 당부하였다. 욱은 일찍이 현종에게 금() 한 주머니를 몰래 주면서 "내가 죽거든 이 금을 지관에게 주고, 나를 고을 성황당 남쪽 귀룡동()에 장사하여라. 그리고 반드시 엎어서 묻도록 하라."라고 유언하였다.

안종 욱 자신이 와룡산의 엎드린 용이 된 것이다. 그는 용두가 아니라 용꼬리에 묻혀서 용으로 승천하였던 것이다.

아들 현종이 왕위에 올라 아버지 안종 욱을 효목대왕으로 추존하였던 것이니 승천하여, 곧 죽어서 임금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와룡산 기슭의 백천골은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왜군과 싸운 곳이라는 기록도 있는 곳이다. 백천골에서 와룡산 등성이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오면 성문등(), 파병산(), 난곡(), 퇴병산(退) 등 임진란과 관련 있는 지명이 산재해 있는 것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와룡산은 섣달 그믐날 밤이면 산이 운다는 전설이 있다. 와룡산이 운다는 내력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그 중 하나는 우리나라 산의 족보격인 산경표()에서 와룡산이 누락되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와룡산이 아흔아홉 골로 한 골짜기가 모자라서 백개의 골이 못되는 산이 되어서 운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일본사람들이 우리 고장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와룡산 정상(민재봉)을 깎아 내렸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와룡산은 800m도 못 미치는 낮은 산이라고 생각되기 쉬우나, 경사가 급하여 쉽게 산에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등산로는 남양동에서 주로 오르나 와룡마을 사람들은 와룡산의 정면이 와룡마을 쪽인데 정면에서 산을 오르지 않고 산의 뒤쪽인 남양동에서 오른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는데 앞쪽에서든 뒤쪽에서든, 한번 올라보면 적당한 워킹과 아슬아슬한 암릉도 만끽할 수 있으며, 와룡산 그 자체도 매력 있는 산이지만 산아래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에 가히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와룡산은 사시사철 등산객들을 반기지만 봄이 오면 온 산에 철쭉이 만개하여 진홍색으로 물드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와룡산 철쭉은 정상인 민재봉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민재봉에서 새섬바위, 민재봉 삼거리, 기차바위로 향하는 세 갈래로 뻗은 능선과 좌우 사면이 온통 철쭉이다.

그렇다고 5월에만 화려한 산은 아니다. 이미 3월 말부터 능선을 따라 진달래가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고 철쭉 군락에 드물지 않게 섞여있는 진달래도 볼 수 있다.철쭉은 진달래 과의 낙엽관목으로 잎이 난 후 연분홍색의 꽃이 5월에 피며, 꽃 모양은 진달래와 비슷하나 진달래와 달리 잎이 난 후 꽃이 핀다.

매년 5월초 와룡산 일원에서는 '와룡산 비룡제'가 개최된다.
와룡산 비룡제는 34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산악인들의 무사안녕기원제이며, 철쭉을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고,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멋진 바다 풍경을 감상하면서 즐길 수 있는 코스로 1박 2일에 걸쳐 개최된다.



※코스:남양저수지 → 도암재 → 새섬바위 → 민재봉→ 백천재 → 백천사.(10.0㎞,약4시간 30분소요)


2016년04월16~17일.

기상조건이 좋지않은 가운데도불구하고 만석으로 꽉찬 거산사악회 관광버스는 시흥에서 토요일 저녘 23시30분에 출발.

밤새 빗길를 달려 5시경에 사천시 삼천포항에 도착했다.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들어가는데 강풍에 문이 흔들거리고 간판이 쓰러진다.

아침을 북어해장국으로 해결하고 기상상태를 확인하니 예약했던 우리팀이 탈 배는 소형(승선인원100명정도)이라 출항이 불가.

여객선으로 발길를 돌려 매표를 하고 기다리는데 (첫배가 6시부터) 이것 마져도 기상악화로 출항이 불허.

예정했던 샤랑도는 갈 수 없게 되었다.

난감한 차에 공용화장옆에 걸어놓은 현수막에'다음산행은 와룡산으로'라는 제목의 문구가 눈에 띈다.

산대장에게 말했더니 그렇지않아도 검색중이란다.

코스를 정하고 이동,

간밤에 내린비로 하천에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스럽다.

 

 

 

 

 

 

 

 

 

 

 

옥녀꽃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암석은 화강암인데 크게 쥐라기에 관입된 대보화강암과 백악기에 관입된 불국사 화강암으로 나뉜다.

와룡산은 백악기에 관입된 불국사 화강암류가 기반암을 이루는 산지며 화강암은 화학적 풍화에 의해 쉽게 절리가 생기기 때문에 와룡산 일대는 군데군데 절벽들을 포함하고 있다.

절벽들이 계속적인 풍화에 의해 깎여 나가면서 산 비탈을 따라 절벽에서 깎여나간 돌무더기가 쌓이게 된다.

이러한 돌들이 골로 모이게 되고 동결과 융해를 반복, 골을 따라 계속 미끄러져 흘러내리면(젤리/솔리플럭션) 산 비탈에 길쭉하게 돌길 비슷한 것을 만드는데 이것을 암괴류라고 한다.

사천 와룡산일대의 백천사는 이러한 암괴류를 볼 수 있는 좋은 장소다.

백천사

1,300년 전 신라 문무대왕 시절 의선대사(의상대사의 속세 형제)가 백천사를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몸속법당 부처님을 모시게 된 백천사가 있는 와룡산에는 옛날의 절터가 많기로 유명하다. 구전(口傳)되는 전설로 와룡산에는 팔만구암자(八萬九菴子)가 있었다고 전하는 것을 보면 꽤 많은 사찰(寺刹)이 이 산 속에 들어 앉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양지(晋陽誌) 등에 나오는 백천사(白泉寺)의 기록에는 '백천사는 와룡산의 서편에 있었다. 도솔암에서 흘러내리는 동쪽계곡은 양구택, 조황담, 백련폭이 그 중 아름다운 곳이요. 선정암에서 흘러 내리는 절의 서쪽 계곡은 세심정, 무금대 등의 좋은 경치가 있고 동서계곡의 상하에 물레방아 16개소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뒤에는 12개만 남았다. 묵계암도 백천사 북쪽 10리에 있었다.'하는 것으로 보아 대충 백천사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가 있을 뿐 아니라 백천계곡의 경관마저 짐작이 된다. 이 절터 부근에는 축을 쌓은 돌담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석기(石器)등 기왓장이 부서진 채 널려있는 것을 새롭게 재건축하여 구국도량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오방불 무량수 공덕전.


 

 

 관세음보살입상.


 약사와불전.


약사와불전에 있는 길이 13m·높이 4m의 목조와불로 유명한데, 와불의 몸속에 작은 법당이 있다.

약사와불상 내부법당의 모습.

 

 

목탁소리를 내는 우보살

 

 

 

 

 약사여래불좌상.


 

 

용정수

:용의 정기가 흐르는 와룡산 약수라고 하여 용정수라 부르는데 심신이 정순하고 좋은 기운이 흐르는 사람이 진심으로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빌며 손잡이를 문지르면 그에 감응하여 물꽃이 핀다고 한다.

 

 

 평화통일기원대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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