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황매산(2015.05.02.)

털보나그네 2015. 5. 3. 01:36
Magic Night / Mikis Theodorakis
 

 

'Mikis Theodorakis'는 그리스가 낳은 위대한 작곡가 겸 가수.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올드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을 토대로 한65년 영화 '희랍인조르바(Zorba The Greek)'의 영화 음악 작곡자.

한때는 그리스 음악의 대사 라는 호칭까지 얻었던 인물이다.


그리스의 상징적 반체제 작곡가 '테오토라키스'는 1925년 7월29일 지금은 터키 땅이된 소아시아의 '키오스' 섬에서 태어났다.'테오도라키스'의 음악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멜리나 메르쿠리'가 주연한 영화 'Phaedra(죽어도 좋아)'와 'Never on Sunday(일요일은 참으세요)'1960 와 '안소니 퀸'이 주연한 'Zorba the Greek(희랍인 조르바)'1964의 영화음악으로 소개된다.


제국주의와 억압에 함께 항거했던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작곡한 'To treno fevgi stis okto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는 그의 작품의 단편에 지나지않으며 1,000여곡이 넘는 민중가곡 외에도교향곡 7곡, 2곡의 발레곡 2곡의 대작 오라토리오 4개의 오페라 등 정통 클래식 작곡가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 상처없는 생은 없다. ★


혼자 있지 말고 아픔과 함께 있어라
라며 슬픔의 뼈를
주문처럼 달고 다녔지
그러나 세상에 트집 잡고 살진 않아

풀도 바람에게 베여 고개 숙이며 아파하고   
꽃도 빗방울이 앉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찢겨지고

나뭇잎도 햇빛 살과 엮어지면 시들해지는 것을
모두다 상처를 입어 지레 겁을 먹고 있잖아 

상처 없는 생이 어디 있으랴
저마다 한숨과 원이 많아
마음 속 이슬 털지 못하고
달고 사는 것을

거둬버린 사랑에 대한 허기를 면하려고
사람 냄새 맡지 않고 사람으로부터 멀찍이
등졌더니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엔 혼자 있는게
습관이 되어버렸고
시와 자연에 생각을 부비고 마음 문대게 되었지

그렇게 사는 거지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맨발의 마음으로 몸 던지고 마음 던지며
처절하게 살아 낸 후에 얻어진
희열을 느껴 보는 것이라고...

-황 라현-

 
 
 
 

황매산(1,108m)

위치: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가회면-산청군 차황면

 

 

 

<황매산소개>

황매산은 가야산과 더불어 합천군의 2대명산이다.

황강에 댐이 축조되면서 조성된 합천호가 옆에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좋은 능선에서의 조망은 더욱 시원해졌다.

산은 물을 만나야 살아난다는 충주호를 끼고 있는 월악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황매산에서도 입증된다.

전체적으로 암산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바위가 무척 많은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암봉들이 띄엄띄엄 늘어선 주능선은 대체로 큰 나무가 없어 조망이 막히지 않은 상태로 산행을 즐길 수 있는데 주능선의 식생은 키작은 관목이나 억새가 대종을 이루고 있어 산행중 시선을 먼곳에 두고 산행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합천호 푸른 물 속에 산자락을 담그고 하봉, 중봉, 상봉등 세봉우리로 정상을 이루어 수중매로 불리는 황매산은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온 산을 물들이고,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이 함께 하며, 가을에는 쑥국새의 쑥국소리로 연신 입방아를 찧고, 겨울에는 새하얀 눈이 휘덮어 독립봉에 불어대는 혹한 바람으로 매서운 겨울산의 맛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북서쪽 능선 정상을 휘돌면 수만평에 걸친 황매산 고산 철쭉군락이 황매 평정을 뒤덮어 고산 화원을 이루고 있으며 통일 신라시대의 고찰인 영암사지를 품에 안고 있고 등산로가 개설되어 등산 애호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모산재를 등반하다보면 무지개터, 황매산성 순결바위, 국사당을 잇는 산행코스로 쳐다 보기만 해도 가고 싶은 충동을 준다.

합천8경중 8경에 속한다.

문화재는 영암사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 삼층석탑(보물 제480호), 귀부(보물 제 489호), 영암사지(사적)

 

 

 

 

2015년05월02일.

콩사랑앞에 가니 두분이 이미 와 계신다.

한분은 여성,한분은 나와 비슷한? 연배인 남성분.

차에 올라타니 만차다.

남아 있는 자석에 찾아가 앉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43명이란다.

두번 휴게소에 쉬고 생초IC를 빠져나와 장작마을에 도착하니 11시10분 4시간40분이 소요했다.

처음부터 도로사정이 좋지않았고 워낙 먼 거리다.

그나마 밀리지않는 도로로 잘 왔다.

 

태백산맥의 장엄한 기운이 남으로 치닫아 마지막으로 큰 흔적을 남기니 바로 이곳 황매산이라고 한다.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풍경이 마치  활짝핀 매화 꽃잎을 닮아 마치 매화꽃속에 홀로 떠 있는듯한 신비한 느낌을 주어 황매산이라고 헸단다.

장작마을부터 오르는 등로길 옆으로 들꽃들이 반겨준다.

붓꽃,제비꽃,양지꽃...

고사리도 눈에 뛰고,취나물도 눈에 뛴다.

중간쯤 오르니 엘레지가 군락을 이루워 피고 있다.

이곳의 엘레지는 색이 연해보인다.

정상이 가까워지니 별꽃과 노란 제비꽃과 노란 붓꽃이 눈에 자주 들어 온다.

 

아직 철쭉꽃이 피치못하고 몽우리만 져 있다.

정상을 지나고 베틀봉을 지날때까지도 피지않은 철쭉꽃이 아쉬웠는데...

모산재근처 산불감시초소에 도착하니 이곳은 꽃들이 활짝 피였다.

그리고 모산재에서의 절경,바위들의 진귀한 모습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것 같다.

 

조심스런하산길을 지나 영암사지.

국보급유물들이 있다하여 가 보았다.

 

긴 기다림끝에 출발,시흥에 도착하니 10시가 조금 넘은시간...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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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 정상

 

 

 

 

 

 

 

 

 

 

 

 

 

 

 

 

 

 

 

 

 

 

 

 

 

 

 

 

 

 

 

 

 

 

 

 

 

 

 

 

 

 

 

 

 

 

 

 

 

 

 

 

 

 

 

 

 

 

 

 


 

 

무지개터

한국 제일의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무지개터앞에 용마바위가 있어 '비룡산천'하는 지형으로 예부터 이곳에 묘를 쓰면 천자가 태여나고 자손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반면에 온나라가 가뭄으로 흉작이 든다하여 명당자리일지라도 누구도 묘를 쓰지 못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합천군>


 

 

 

 

 

 

 

 

 

 

 

지정번호 : 12-02-07

수      종 : 느티나무

수      령 : 600년

수      고 : 30m

나무둘레 : X.9m

지정일자 : 2002.08.02

소 재 지  :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1660

관 리 자  : 주민

-이 탑은 탑신부가 무너져 있던 것을 1969년에 복원하였으며, 현재 금당 앞에 새로 세운 두 채의 건물사이에 서 있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석탑으로 통일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영암사터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1933년경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하였다가 1959년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이 귀부 2기는 영암사터 내의 법당터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남아 있다. 영암사의 정확한 창건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전성기 때의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어 그 즈음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절터 안에는 법당터를 비롯한 여러 건물의 기단이 남아 있어 당시의 거대했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귀부는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의 받침돌로, 원래는 그 위로 비몸돌과 비머릿돌이 얹혀져 있었을 것이나, 양쪽 모두 지금은 귀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동쪽 귀부는 거북의 등무늬가 6각형이고, 비몸돌을 괴는 네모난 비좌 주위에는 아름다운 구름무늬가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용머리처럼 새겼고, 목은 똑바로 뻗어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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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귀부도 6각형의 등무늬를 배열하였고,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는 4면에 안상을, 가장자리에는 연꽃잎을 새겼다.

서귀부는 동귀부보다 얇고 약간 작지만 거의 같은 솜씨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특히 동쪽의 귀부에서는 정교하면서도 강한 생동감이 느껴지고 있다.

 

이 귀부 2기는 각 부 양식이나 주위의 석조유물 등과 관련지어 볼 때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