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2012년08월19일.
코스:시흥시 대야동-계수 저수지-동이길(과림저수지-양지산-능내동)-애기능저수지-구름산-가학산(가학광산)-광명역(버스로 이동)-광명보건소(버스이동)-범안로-과림저수지-대야동(버스이동)
집에서 06시에 나와 광명까지 장거리주를 할 생각이였는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였다.
동이길이라는 꼬리표를 보고 그 꼬리표를 따라 갔다.
과림저수지를 산길로 돌아 돌아 양지산으로 이어지는 동이길은 동구밖 이야기하며 걷는 길이라고 하는데 나는 나무와 들풀과 들새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하늘에 먹구름이 바람을 타고 어디로 가는지 열심히 달려간다.
왠지 저녀석들이 불안불안 하다.
급한 마음에 동네로 내려가니 능내마을이란 곳이다.우리집앞으로 지나가는 26번 버스가 지나간다.
방향감각을 잃고 열심히 걷다보니 반대로 가고있다.
다시 오던길를 되돌아 가다보니 배가 고파온다.
주변에 왠 해장국집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그래 해장을 하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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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정.
안장사(안장공 구종직선생사적비)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당이다.
무지내동 산18-1, 산18-5 일대에 있다.
조선 전기의 인물인 구종직(丘從直, 1404~1477)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이다.
해장국 한그릇 먹고나니 배가 불러 소화를 시키려면 다시 걸어 가야겠다.
얼마를 걷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쏫아 진다.
버스정거장으로 가서 비를 피했는데 아주 잠깐을 쏫아 붓더니 비가 그친다.
그래 다시 구름산을 향하여 간다.
오늘은 가학광산에 가서 어찌 생겼는지 한번 구경하고 와야겠다.
인도도 없는 도로가를 지나야 하는 구간이 영 맘에 안든다.
인도와 자전거 도로가 있어도 대형차가 떡 버티고 서 있어 사람은 차를 피해 차도로 걸어야 한다.
변두리라 어쩔수 없는 현상이다.
한차례 억수같은 소나기가 지나가고...
이 더위에 목감천에서 낚시하는 한사람...
광명 애기능.
애기능은 광명시에서 시흥시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다고 한다.
애기능에는 소현세자의 빈이 묻힌 곳이다.
지금은 물 웅덩이만 있고 서삼능 소경원에 옴겨서 모시고 있단다.
조선 16대 왕인 인조는 김자겸,김류,이괄등 서인일파의 반정 성공에 왕이 됐다.
집권당의 이이첨 등의 대북파와 광해군을 몰아낸것이다.
병자호란이 끝나고 소현세자와 빈을 청나라 볼모로 보내고,
그들이 돌아온 뒤 혼탁한 정치를 벗어나려고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그리고 세자빈까지 사약을 내린다.
애기능저수지.
보호수:수령이 400년된 느티나무.
영회원
영희원
영희원에는 조선 16대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의 민회빈 강씨가 누워있다.
세자 강씨는 우의정을 지낸 문정공 강석기의 딸로 인조5년(1627년)에 세자빈이 되었다.
병자호란때는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볼모로 가서 고생을 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소현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평소에 세자빈과 사이가 좋지 안았던 인조의 후궁 조씨등이,
소현세자를 세자빈이 독살했고 왕실을 계속 저주하고 있다고 거짓으로 꾸며대어,
인조 23년(1645년)에 세자빈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하고 그 다음에 사약을 받게 했다.
그후 숙종44년(1718년)에 세자빈의 결백함이 밝혀져 민회빈으로 복위되고,
고종7년(1870년)에는 이 묘를 영회원이라 부르게 됐다.
명색이 왕족의 묘인데 쓸쓸하다.
문인석,석호,석마,석양이 있지만 정자각이 없다.
주변에 깨진 기와조각이 발에 밞힌다.
어쩜 정자각이 있었는데 언젠가 소실된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조사를 해 봐야겠다.
지금은 철망을 치고 사적357호로 보호하고 있다.
'임금의 수라상에 독을 넣었다'는 혐의로 비통한 최후를 맞은 비운의 여인.
17세기 격동의 역사 속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을 온 몸으로 실천했던 여걸, 소현세자빈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 1611~1646) 이야기다.
그녀는 1637년 소현세자와 함께 병자호란 패배의 인질로 청나라 심양(瀋陽)에 잡혀갔다가 1645년 귀국했다. 심양에 머무는 8년 동안 경영수완을 발휘, 국제무역과 농사일로 많은 재산을 축적했고 함께 인질로 끌려간 백성을 구제했다.
청나라에서 세자와 빈은 독일 선교사이자 천문학자인 아담 샬(Johanne Adam Schall)과 교류하며 서양의 최신 과학기술을 접했다. 그리고 조선의 개혁과 개방을 꿈꾸며, 억류 생활을 마치고 고국 땅을 밟았다.
불행은 왕권을 이어갈 소현세자가 귀국한 지 70일 만에 34세로 급서하면서부터 찾아왔다. 그녀는 소용돌이 치는 권력의 암투와 음모로 못난 시아버지 인조의 미움을 사 사약을 받는다. 늙은 어머니와 4형제 모두 처형 당했다. 제주도로 귀양간 세 아들 중 두 아들은 그곳에서 죽었다.
구천을 떠돈지 70여 년이 지난 1718년(숙종 44) 혐의를 벗고 세자빈에 복위됐다. 광명시 노온사동 산자락에 자리잡은 영회원(永懷園, 사적 제357호)에 누워있다. 그녀의 무덤 역시 여느 다른 조선 왕실의 묘역처럼 정자각과 재실, 홍살문, 넓은 잔디와 울창한 수목 등을 갖추었다. 적어도 1970년 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초라하다. 개인 사유지 한가운데 겨우 몸만 가누고 있다.
광명시청 관계자는 "금천교에서 홍살문까지 진입공간의 수목들이 1974년 항공사진에는 울창했으나 1981년 항공사진에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1970년대 후반에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떤 기업이 인근 땅을 불하받아 골프장을 조성하려다 무산됐다고 한다.
기자는 지난 22일 영회원(사진)에 갔다. 아직은 비공개 지역이다. 광명시내에서 한치고개 쪽으로 가다가 애기능 낚시터로 접어 들었다. 이어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길을 따라 들어 가자 '이곳은 개인 사유지'라는 경고(?)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진입로조차 남의 땅이다.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알리는 홍살문도 없다.
그렇게 도착한 민회빈 강씨 묘역은 봉분 주변 2천㎡ 남짓을 남겨두고 울타리가 쳐졌다. 인근 주민 정하진(65)씨는 "70년 대까지만 해도 인근 지역 학생들이 소풍왔던 곳"이라고 했다.
민회빈 강씨는 아직도 저 먼발치 한강너머 서삼릉 소경원(昭慶園)에 잠들어 있는 소현세자를 그리워하며, 남편이 왜 죽었는지, 자신은 왜 죽어야 했는 지를 묻고 있다.
/이동화기자 itimes21@itimes.co.kr
가학광산을 구경하려면 번호표를 뽑아 기다려야 하는데 게시판을 보니 2시간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20명씩 안내원이 안내를 하며 지급하는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다녀야 한다.
지금은 개발단계라서 무료입장이지만 앞으로 개발이 다 끝나고 나면 유료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동굴 입구에 서 있는데 동굴안에서 나오는 냉기가 나와 더위를 한순간에 잊게 한다.
오늘은 안에 들어가는 것은 포기해야겠다.
입구에 임시버스가 운행되고 있는데 광명역까지 가는 버스다.
그리곤 대중교통은 없다.버스를 타고 광명역까지 나왔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다시 버스를 타고 광명보건소까지 나왔다.
이제 감이 잡힌다.다시 걸어서 범안로로 가서 시흥방향길로 뛰여갔다.
이길로 곧장가면 과림동이다.과림저수지까지 가서 그곳에서 26번 버스를 타니 집앞에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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