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이문새 내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돼요 노을진 창가에 앉아서 그대 외로워 울지만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아차,용마산 그리고 대모,구룡산이 바람에 흔들린 날. 2012년03월24일. 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아침은 시간이 잘 간다. 아들이 학원에 가기위해 아침을 먹을때 나도 같이 아침을 챙겨 먹었다. 하지만 또다시 이불를 덥고 누웠다. 비몽사몽간에도 오늘 어디를 갔다올까를 고민했다. 10시에 와이프는 동네아줌마랑 소래산 가기로 되어있다. 난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전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산행준비를 한다. 옷을 입고 집을 나서면서도 정하지 않은 목적지. 와이프가 묻는다.오늘은 어디로 가냐고... 바람부는데로 구름가는데로 간다고 하고 버스를 타고 부천역으로 갔다. 생각이 난 곳은 평소 가고싶었던 아차산-용마산,그리고 대모산-구룡산. 먼저 아차산을 가기위해 신길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광나루역에서 광장초교 뒷길로 등로를 잡고 초행길이지만 감만 잡고 오른다. 생태공원에서 부터 눈에 틴 운동하는 한소녀,윗도리가 춘천마라톤 기념품이라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은 한 계속 쫓았다. 아차산 정상을 향하고 있는 듯 하다.나이도 젊은 것이 대견스럽다. 고구려정을 지나치다가 다시 자세히 보기위해 나는 고구려정으로 다가갔고 그녀는 계속 올라간 듯 하다. 다시 정상을 향하여 오르다 벤취에서 친구인듯한 사람에게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나는 내 갈길를 재촉했다. 한강이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는 영락없이 벤취가 마련되어 있다. 바람이 몹시 분다. 진눈깨비까지 날린다. 운무가 계곡을 타고 오르고 하늘은 먹장구름이 몰려다닌다. 바람이 불어 춥다. 집에서 10시에 출발하여 광나루역에 12시 도착하여 오르기 시작한 아치산 등반,4부루가 정상인듯 한데 도착시간이 대충 1시정도 시간이 됐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물만 한모금 마시고 용마산 정상을 찍고 하산하다 중턱쯤 바람이 없는 소나무 숲 벤취에 앉아 집에서 가져온 쑥덕을 먹었다. 뻥뛰기공원으로 하산하여 전철역을 찾으니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전철역에 당도하니 7호선이다, 어찌할까?시간은 2시가 지났다. 집에 가기에도 어중간하다.산행도 너무 짧고 시간도 이르다. 전철를 타고 일원역(3호선)으로 갔다. 사람들에게 물어 대모산 등로를 잡았다. 조금은 서둘러 가야한다.시간이 3시반,산행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적어도 5시에는 하산완료하여 집으로 가는 차를 타야 한다. 초입에서 약도를 보니 수서역에서 내렸으면 시간이 더 걸렸을 것 같다.일원역에서 내린것이 잘한 거다. 대모산 정상까지 가는 길은 급경사 길이라 쉬지않고 올랐더니 땀이 비오듯 쏫아진다. 대모산 정상을 찍고 구룡산을 향해 간다. 철책옆길를 끼고 계속 이어지는 산길은 육길의 편온함이 있다.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 가는데 천천히 가는 듯 한데도 뒤에서 쫓아 가기가 힘겹다. 덩치도 작고 빼빼한 사람이 힘들이지 않고 엄청 빠르게 간다. 결국 구룡산 정상을 못미처 놓쳐버렸다. 오르막 길에서 체력이 소진되어 속도를 따를 수가 없다. 구룡산 정상에서의 전망은 비온뒤의 대기중 먼지가 없는 탓에 먼 북한산,도봉산도 훤히 잘 보인다. 북한산,도봉산에는 흰눈이 쌓여 있다. 꽃샘추위가 멋모르고 올라왔던 꽃망울이 무색해지게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가운데 계속 이정표를 보며 전진에 전진을 거듭. 하산을 하니 학술진흥원 내를 지나쳐야 하고,대로로 나와보니 kotar가 옆에 있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이곳에서 청계산으로 연계산행을 할 수 있는데 오늘은 여기서 산행을 끝내야 한다. 대로변에서도 바람이 몹시 불어 모자가 들석들석 거린다. 버스를 타고 양재역까지 갔더니 3200번 버스가 지금막 출발한다.전철를 타고 가야겠다. 전철를 타고 교대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고 다시 신도림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부천까지 가서 부천 시장을 한바뀌 돌아보고 집으로 가니 8시가 되었다. <아차산,용마산> 검단산이 하얀 눈으로 덮혀있다. 망우산방향. <대모산,구룡산>
대모산(大母山)은,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높이 293m의 산이다. 대모산에는 불국사와 남쪽에는 헌인릉이 있는데 헌릉은 태종과 그의 비인 원경왕후 민씨의 능이며 인릉은 조선 23대 임금인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대모산 정상부에는 동서방향으로 조성된 산성의 흔적이 있는데 1999년 한양대학교에서 시굴조사한 결과 일부 구간에서 석축 성벽이 뚜렷하게 나타났으며, 신라시대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대기가 깨끗하여 저 멀리 북한산,도봉산 수락산,불암산,오늘 갔었던 용마산까지 잘 보인다. 청계산이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앉았다. 구룡산(306m)은,
그리움두고 머나먼길 그대 무지개를
찾아올순 없어요
멀리 떠가는 구름을 보면
찾고 싶은 옛생각들 하늘에 그려요
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속에
떠나지 않아요
염곡동을 감싸안은 구룡산(九龍山)은 옛날 임신한 여인이 용 10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1마리가 떨어져 죽고 9마리만 하늘로 올라가 구룡산이라 불리게 되었고, 하늘에
오르지 못한 1마리는 좋은 재목, 좋은 재산인 물이 되어 양재천(良才川)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정상보다 낮은 이 산의 주봉(主峰)은 국수봉(國守峰)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전 부터 정상에 봉수대
(烽燧臺)가 있어 국가를 지킨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이 곳에는 바위굴國守房(국수방)이 있어 봉수군
(烽燧軍)이 기거했다고 한다.
신갈나무,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수피가 얇은 종잇장처럼 벗겨지는 물박달나무 등이 산재해 있다.
대모산 기슭에 있는 헌인릉과 함께 구룡산 기슭에 세종대왕릉(英陵)이 있었으나, 영릉은 1469년(예종 1년)
에 여주로 천장(遷葬)하였다.
또한 접근이 용이하고, 적당한 높이 때문에 현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된 일제시대 1925년 을측년대홍수 때
구룡산에 12.74m의 강우량이 관측된 산이다.
세종대왕 초장지(初葬地) 서초구 내곡동에는 세종대왕 초장지였던 영릉터가 있다. 1446년(세종 28년)에
세종의 비 소헌왕후 심씨가 승하하자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조영하였다. 이 때 오른쪽 석실은 세종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 세조대에 영릉의 자리가 불길하다는 이유
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년)에 경기도 여주로 옮기게 되었다.
여주로 천장하면서 원래의 영릉터에 있었던 상석, 망주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수, 신도비 등은 그
자리에 묻혔으나,1973~1974년에 걸쳐 발굴하여 세종대왕기념관 등으로 옮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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