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소리

2010년 가을의 전설를 위하여...- Vincent

털보나그네 2010. 8. 7. 06:10

 

2010년 가을의 전설를 위하여...

 

 

8월,

대부분의 여름휴가는 팔월초순에 몰려있다.

여름의 심장을 지나는 요즘,

지엽적으로 소나기가 오락가락하고 폭염과 열대야가 매일 극성을 부린다.

팔월 달력을 살펴보니,

입추가 있고, 말복이 있고, 광복절 지나면 처서가 있다.

매년 광복절를 지나고나면 더위가 한풀 꺽인다.

이제 서서히 가을를 준비해야 하리라 생각이 든다.

10월24일 춘천에의 또한번 가을의 전설를 쓰기위하여....

 

1. 8월29일 -소년소녀가장돕기 2010 한강르네상스 마라톤대회.-하프신청.

2.9월12일-2010 경기 평화통일 마라톤대회-하프예정.

3.9월26일-제2회 서울수복마라톤대회(국내최초부교설치)-풀코스예정.

4.10월10일-제8회 하이서울 마라톤대회-하프예정.

5.10월24일-2010 춘천마라톤대회-풀코스신청.

 

이렇게 예정을 해 놓았지만 요즘 체력이 자꾸 떨어지는 걸 느낀다.

아마도 기록갱신은 엄두도 못내고 현상유지도 힘들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숙제를 정해두면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있지않을까....

기대를 해 본다...

 

 

 

 


Vincent - Dana Winner

Vincent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Starry, starry night: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s of amber grain,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For they could not love you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And when no hope was left inside
On that starry, starry night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But I could"ve told you, Vincent: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Starry, starry night: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Like the strangers that you"ve met:
The ragged men in ragged clothes.
The silver thorn, a bloody rose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 국내서 경매된 해외 작품 중 최고가(29억5000만원)를 기록한 고흐의 ‘누워있는 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한국인에게 가장 폭넓게 사랑받는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다. 1890년 7월 29일 사망, 세상을 떠난 지 120년이 지났지만 그의 이름은 그대로 서양 미술 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의 상징이 되어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고흐 전시회는 무려 82만명을 동원하며 역대 전시 사상 최다 관람객을 기록했다. 국내 경매 시장에서 팔린 최고가 해외 작품 역시 낙찰가 29억5000만원인 고흐의 ‘누워 있는 소’다. 명화 이미지를 활용한 아트 상품들 중에도 단연 고흐의 인기가 최고다. 국적불문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불멸의 톱스타 고흐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고 삶은 어땠을까?
   

신화가 된 휴먼스토리

반 고흐는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 남부 작은 마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목사였고 그 역시 초년엔 목사 수업을 받았다. 삶은 순탄치 않았다. 열여섯 살 때 화랑 점원으로 처음 일을 시작했고, 그 뒤엔 서점 직원과 교사·전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27세. 그때부터 모든 열정을 그림에 쏟았다. 유일한 후원자는 네 살 터울의 동생 테오였다. 온갖 역경을 극복하면서 화가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동생 덕분이었다. 테오가 없는 고흐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둘의 사이는 각별했다. 둘의 이야기는 ‘별처럼 아름다운 신화’가 되어 전해진다.


   고흐와 테오는 1872년 8월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쉼 없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는 무려 668통이다. 이 편지엔 생활의 기쁨과 고단함, 작품에 대한 집착과 연민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마지막 순간도 당시 파리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동생의 품에서 맞았다. 6개월 뒤 동생도 형의 뒤를 잇는다. 둘은 같이 살았던 하숙집 뒤편 공동묘지 안쪽에 나란히 묻혀있다. 둘은 형제 그 이상의 정신적 동반자였다.


   지금에야 고흐의 작품이 ‘천상에서 내린 명작’으로 추앙받지만 생전의 고흐는 정신적인 장애를 겪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알려진 2000여점의 작품은 정신질환(조울증)을 앓다 37세에 자살하기까지 10년 동안에 모두 그린 것이다. 고흐의 사후 명성은 어쩌면 그의 암울했던 생애에 대한 신의 보상인지도 모른다. 


   고흐의 상징이 된 노란색 역시 황시증(黃視症)이란 시신경장애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유독 신경이 예민했던 고흐는 그림이 뜻대로 그려지지 않을 때면 당시 유행하던 ‘압생트’를 마셨다고 한다. 바로 압생트에 포함된 테레빈이라는 유도체가 시신경을 손상시켜 색맹 증상으로 발전되었다. 이런 과음 후의 환시(幻視)로 ‘불타는 듯이 황홀한 황금빛’을 경험한 고흐는 그 유혹에 점점 깊이 빠져든 것이다. 결국 피폐해진 몸을 숙주 삼아 ‘노란 환영’의 작품들이 탄생한 것이다.
   
   고흐 일생에 있어 숙명적인 아픔은 사실 따로 있다. 고흐가 태어나기 바로 1년 전에 고흐의 형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사망한다. 어머니는 아이를 잃은 절망감과 불안감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결국 어머니는 곧이어 태어난 고흐에게 ‘빈센트’라는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준다. 잉태한 순간부터 이미 고흐의 존재감은 이 세상에 없었던 것이다. 형을 대신해 세상의 빛을 보고, 그의 이름으로 평생을 대신 살다 간 고흐. 태생부터 결핍의 숙명을 지고 나온 그가 어찌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스스로 광적이면서도 자학적인 삶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랑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미망인이나 애인이 있는 여자 또는 창녀 등 무의식적으로 ‘결핍된 여성’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았다. 병적인 집착은 성별을 구분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한 작업실에서 마음을 터놓던 친구 고갱마저 그의 별난 집착으로 떠나게 된다. 지나친 연민은 불안감과 고독을 낳고, 홀로 남겨진 고흐는 친구가 떠난 다음날인 12월 24일에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다.
   
   그렇게 보면 고흐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시각적 요소들, 즉 소용돌이치는 격정적인 붓 터치, 태양빛 노랑과 보라빛 파랑의 극적인 하모니 등은 그의 내면에 꿈틀대는 심리적인 갈등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음산한 검푸른 하늘빛을 배경으로 검은 까마귀 떼를 그려 넣은 밀밭 그림 역시 죽음으로써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려 했던 고흐의 심경이 그대로 드러난 듯하다.
   
   얼핏 서정적이고 더없이 아름다운 색조를 띤 고흐 그림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의 뒤안길이 엿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그늘진 삶의 무게는 한 인간의 못다한 인생 다큐를 풀어내는 원동력인 것이다.


시장경제 이끄는 고흐의 힘

  고흐 그림의 백미는 손맛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21세기 첨단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적 화풍의 전형인 고흐 그림의 가치는 천정부지다. 1990년 5월 세계를 경악시킨 일대의 사건이 벌어진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1890년 작품 ‘거셰 박사의 초상화’가 3분 만에 약 1000억원(8250만달러)에 팔렸다. 이 작품은 2004년 피카소의 작품이 경매로 나오기 전 14년 동안 부동의 ‘경매 최고가 1위’ 자리를 지켰다.
   
   사실 이 사건이 크게 이슈화되었던 것은 비싼 작품가격 때문이 아니었다. 이를 계기로 전세계에 고흐라는 이름이 더 이상 ‘불운의 작가’가 아닌 확고부동한 ‘블루칩 작가’로 각인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거셰 박사의 초상화’는 고흐가 자살하기 전에 남긴 작품들 중 하나로 100여년 세월 동안 파리를 시작으로 전 유럽을 돌아 뉴욕에 도착했으며 그동안 그림 주인도 13명이나 바뀌었다. 그리고 1897년 당시 이 그림의 가격은 고작 58달러였지만, 1990년엔 142만배 이상 경이적으로 급등했다.
   
   작품을 구입한 사람은 료에이 사이토라는 일본의 제지업자다. 이는 예술시장의 황금기를 알리는 동시에 일본의 엄청난 경제력을 전세계에 과시한 일대 사건이었다. 사이토는 이 작품을 극도의 보안 속에 도쿄로 가지고 왔으며 죽을 때까지 이 작품을 공개하지 않은 채 기온과 습도가 완벽하게 조절되는 특수 전시실에 보관했다고 한다.
   
   이렇듯 한 점의 명화는 아트 비즈니스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고흐 작품은 아트 마케팅계에서 선호도가 으뜸이다. 일본의 보험회사인 ‘손해보험(손보)재팬’의 이른바 ‘해바라기 마케팅’은 아주 좋은 예이다. 이 회사는 지난 198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 중 가장 큰 작품으로 알려진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를 4000만달러에 구입한다. 이후 도쿄 신주쿠 본사 42층에 전시해 가히 폭발적인 화제를 낳았다. 1990년대 말까지 입장료만으로 작품 수입액을 충당했을 정도였다. 이 고흐 그림 한 점의 홍보 효과에 힘입어 ‘손해보험재팬’이 동종업계 2위로 올라서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다.
   
   이와 유사한 성공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2005년 해태제과를 인수한 크라운제과(회장 윤영달)는 아트 마케팅에 적극 나선다. 2008년부터는 아예 본격적으로 경영에까지 접목했다. 비스킷 과자제품 포장박스 표면에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인쇄해 월 매출을 20억원에서 30억원으로 끌어올렸다. 고흐 작품 특유의 이미지는 오늘날 기업의 이미지 쇄신 전략에 심심치 않게 차용된다. 고흐 그림으로 만든 LG그룹의 CF도 히트작이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밤의 카페 테라스’나 ‘별이 빛나는 론강의 밤 풍경’ 등의 그림에 ‘LG’ 기업로고를 삽입해 감성적인 친근감과 고급스러운 격조를 자연스럽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음을 울리는 우리의 자화상

보는 이의 심금을 사로잡은 고흐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선 고흐 작품의 특징은 힘이 넘치는 강렬한 선과 과감한 색채, 대담한 구도다. 이것은 인상파 화풍과도 통한다. 고흐를 비롯해 당시 적지 않은 인상파 화가들을 매료시켰던 것은 일본의 목판화 우키요에였다. 에도시대의 목판화인 우키요에는 평면적이면서 순도 높은 원색을 주조로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서는 그리 인기를 끌지 못했다. 당시엔 그저 만국 박람회 등지에 일본 물건을 보낼 때 사용했던 싸구려 포장지일 뿐이었다. 하지만 고흐는 인상파적인 화풍에 우키요에 판화의 특성을 접목해 당시 유행하던 렘브란트나 밀레풍의 어두운 화풍에서 탈피해 특유의 정열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고흐의 그림이 특별하게 정겨운 이유는 일상을 감싸 안은 따뜻한 시선 때문이다. 보리밭, 측백나무, 밤하늘의 별, 의자, 들에서 꺾은 꽃과 화병, 방안, 주변의 친구와 자화상, 거리 풍경이나 농부…. 화가로 지낸 약 10년간 거의 매일 작품을 그려냈던 고흐는 무심코 지나칠 만한 일상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이것들을 다시 우아하고 고상한 고객의 취향에 맞춘 것이 아니라 순수한 자연의 색으로만 고집스럽게 표현한 나머지 ‘고흐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만약 삶이 고단했던 고흐가 화상의 요구대로 시대의 평범한 유행과 타협했었다면 지금의 고흐가 있었을까. 비록 스스로는 비주류 인생을 자처했지만 사후 120년의 세월은 그를 새로운 트렌드를 이끈 주류로 만들었다. 37년, 스스로 심지가 되어 불꽃같이 짧은 생을 살다간 불멸의 화가 고흐. 그의 화폭엔 그만의 독창적이고 순교자적인 혼이 서려 있다. 역경의 질곡을 딛고 일어선 고단했던 우리 민족의 지난 여정과 고흐의 삶은 너무도 많이 닮았다. 밝고 활기차고 에너지가 느껴지는 고흐의 화려한 색채감 역시 한국인 특유의 역동적인 기질과 잘 들어맞는다. 소용돌이로 꿈틀대는 고흐의 붓 터치는 온 세상에 희망의 노래를 선사하는 지휘자의 손놀림이 되었다. 평생 고흐가 사랑했던 태양의 색깔 황금빛 노란색은 더 이상 광기의 상징이 아니다. 이젠 오히려 고흐가 전하는 ‘행복의 옐로 카드’가 되었다. 
 <김윤섭 울산대 교수·미술칼럼니스트>

 

  

                               ▲ 고흐의 1889년 작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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