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신라는 어떤 나라인가?(2)

털보나그네 2009. 11. 27. 08:55

 

 

 

신라는 어떤 나라인가?(2)

 

 

2009년11월27일.

 

※경주 오릉(五陵)의 전설
― 경상북도 경주 문천에 전해지는 이야기


박혁거세 왕이 나이가 무척 들었을 때였다.

이상하게도 밤마다 어딜 다녀오는 것이었다. 이런 일에 가장 의아해 한 사람은 알영 왕비였다.

왕을 믿었지만 밤마다 왕이 어딜 나가시는지 의문스러웠다.
왕은 "잠시 다녀오리다."라고 할 뿐 그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왕비는 (왕이) 늦은 밤에 신하의 호위도 없이 나가는 것이 크게 걱정되었다.

그런데 왕이 나갈 땐 꼭 말방울 소리가 들렸는데 말 발굽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왕이 타는 말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왕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왕비였지만 이번 일만큼은 웬지 걱정이 되고 의혹이 생겨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왕비는 도술을 잘 쓴다는 사람을 불러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대책을 물었다.

하지만 나라의 왕이 관련된 일이라, 그는 계속 "알 수 없습니다."라며 발뺌하였고 왕비는 점점 강압적으로 물었다.
그래도 도사가 대답을 안 하자 왕비는 나름대로 생각해 작은 미물로 바뀌는 도술을 물었고 도사도 그 정도는 괜찮으리라고 여겨 그 도술을 일러주었다.
어느날 밤 왕은 또 스르르 일어났다.

밖에는 여전히 말방울 소리가 들렸다.

왕비는 재빨리 자기 모습을 미물로 바꾸고 말에 붙었다.

말은 순식간에 왕을 태운 채 하늘로 솟더니 천상(天上)에 다다랐다.
옥황상제는 예를 갖추는 왕을 아주 반갑게 맞았다.

곧 풍악이 울리고 왕과 옥황상제는 음식을 들었다.

상제(上帝)는 왕에게 "이제 이 곳에서 함께 할 날이 멀지 않았소."라고 하며 기뻐하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상제의 낯에 노여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어찌하여 이곳에 인간을 데려왔소. 인간을 데려오면 안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오?" 그러나 왕은 전혀 뜻밖이고 영문을 모르는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상제는 말을 데려다가 빗질을 시켰다.

그러자 한 미물이 떨어지더니 점점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바로 알영 왕비였다.

왕비는 옥황상제에게 용서를 빌며 왕과의 친분은 변치 말아 달라고 애원하였다.

하지만 옥황상제의 노여움은 가실 줄 몰랐다.
알영 왕비는 다시 인간 세계로 보내졌다.

그런데 그 다음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궁(宮) 앞에 왕의 몸이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널려 있었던 것이다.

곧 궁 안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장례를 치른 뒤 왕의 시신을 한데 모아 왕릉을 만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왕릉이 ― 커다란 폭발음을 내면서 ― 터져 왕의 시신이 나와 널려졌다.

그런 일이 있자 신하들은 궁리 끝에 시신을 각 부분으로 나눠 다섯 개의 능을 만들어 안치하였다 하고 그 능이 오릉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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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오릉이 경북 경주시 탑동에 있다. '문천'이라는 군(郡)이 있긴 하나 경상북도가 아닌 함경도 남쪽이라 이 글을 퍼온 곳에서 왜 "경주의 문천"이라는 말을 썼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서나벌이 처음에는 길림성과 평안도, 강원도에 있었다는 가설이 맞다면 원래 박혁거세 거서간의 무덤은 강원도나 함경도에 있다가, 박씨가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유골도 경주로 옮겨졌을 것이며 '오릉'이라는 명칭도 함께 내려갔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문천군은 강원도 동부와도 가까워 서나벌 백성이 "예왕(濊王)의 도장"을 주워서 바쳤다는 구절(『삼국사기』)과도 관련이 있다는 의심이 든다. 남해차차웅은 혁거세거서간을 죽이고 집권했기에 선왕의 시신을 새 중심지인 금성 대신 함경도 남부인 문천에 묻지 않았을까(이후 박씨족이 남쪽으로 내려갈 때 그의 무덤도 경주로 내려갔을 것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자세히 연구할 과제로 남는다.

설사 경상북도에 '문천'이라는 땅 이름이 있더라도, 이는 함경도에 있던 이름을 빌려 썼을 가능성이 있다

 

 혁거세 거서간이 왕위를 물려주는 과정에 뭔가 모르는 사건이 있지않았나 의심이 가지만 알수가없다.

거서간이 죽기 전 어떤 기록이 나오는지 살펴보자.


― 가을 9월, 두 미르가 금성(金城) 우물 속에서 나타났는데, 별안간 우렛소리(:천둥소리)가 나며, 비가 내리고 성의 남문에 벼락이 쳤다.-> 『삼국사기』「신라본기」혁거세거서간조 (혁거세거서간 60년/서기 3년)

 

― 봄 3월에 거서간이 세상을 떠나니 사릉에 장사지냈다.-> 「신라본기」혁거세거서간조 (혁거세거서간 61년/서기 4년)


"혁거세왕은 나라를 다스린지 61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는데, 7일 후에 왕의 육체가 땅으로 떨어지고 왕후도 따라 죽었다. 나라 사람들이 합해 장사지내려 했으나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쫓아다니면서 못 하게 하므로 오체(五體)를 각각 장사지내어 오릉(五陵)을 만들고 또한 구렁이와 연관되었다 하여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 했으니, 담엄사 북쪽 능이 그것이다."->『삼국유사』권1「기이」혁거세왕 조

이 기록은 경주 오릉의 전설과 견주어볼 때 거서간이 나이가 몹시 들었을 때 하늘로 올라갔다는 사실과, 왕의 몸이 다섯 토막으로 나눠진 사실, 사람들이 오릉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비슷해 진실을 부분적으로나마 전해 주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 음력 9월에서 다음해 음력 3월까지인 여섯달동안 무슨일이 일어났을까?이렇듯 의문점이 많이 남는다.

아무튼 서나벌 초기의 정권 교체는 이처럼 살벌하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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