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인디언 족(6/16)

털보나그네 2009. 6. 16. 00:41

 

 

 

인디언족.

 

 

 2009년6월16일.

 역사 시대 이전에 아랄 해 일대에서 거대한 집단이 형성되였는데 이 집단이 기후조건에 따라 각지역으로 이동하며 유목생활을 했는데 그들이 메소포타미아까지 내려가 문명을 형성하고 일부는 동북으로 이동하여 황하강유역에서 문명을 이루웠다.또한 알라스카를 넘어 북아메리카대륙으로 유입하여 살기좋은 환경을 찾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새로운 문명들을 형성하게되는데 이들은 이미 아랄 해 일대에서부터 천문,문자,수학,지리등을 간직하고 무리의 수장들은 이를 보존하며 이동하였던것 같다.이것들이 자신을 지켜주는 힘의 일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인디언.

 

 중앙 아메리카의 문화는 BC 65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아마도 후기 홍적세나 빙하기의 언젠가 존재했을 육교를 통해 몽골로이드에 속하는 여러 인종 집단이 북동시베리아에서 이주했던 것 같다. 빙하가 북아메리카 북부를 뒤덮고 있던 BC 11000년경 수렵민족들이 남아메리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서늘하고 습진 초지로 이루어진 중앙 아메리카를 떠돌며 살던 수많은 포유동물들에게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BC 7000년경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고 북반구의 거대 빙상(氷床)이 상당부분 사라지면서 수렵생활방식이 끝나고 새로운 농업생활의 시대가 열렸다. BC 6500년 직후 푸에블라의 테오티우아칸 계곡의 사람들이 칠리후추·목화·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BC 5000~3000년에는 조생종 옥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BC 3500년경에는 콩과 개량종의 옥수수가 등장했다.

 

BC 1500~900년에는 환경이 중앙 아메리카의 문화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원지대는 환경조건이 다양했지만 공동체를 유지할 만큼 충분한 자원을 갖춘 곳은 없었으며, 각 마을이 공생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교역에 바탕을 둔 도시적 문화통합에 이르렀던 것 같다. 한편 저지는 자원이 상당히 풍부해서 모든 지역의 마을이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농경문화와 함께 멕시코 만 베라크루스와 타바스코 남부의 습한 저지대에서 BC 1150년경 발생한 올멕과 같은 거대문명도 공존했다. 올멕 문화의 발생은 대지역들이 커다란 도시와 행정중심지 등 중앙집중화된 지역으로 통합되었음을 나타낸다. 기름진 토양과 넉넉한 강우량이라는 자연조건에 힙입어 비옥한 농지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한정된 유용지를 둘러싸고 잦은 충돌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토지를 소유하고 군사력을 갖춘 권력집단이 형성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올멕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다. 초기 올멕은 중앙 아메리카 대부분을 포함하는 커다란 교역망을 지배했는데 교역품 가운데는 거울을 만드는 데 쓰는 철광석과 같은 사치품들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몇몇 가공품을 제외하면 올멕 문화는 카리브 해 동쪽의 베라크루스-타바스코 중심부들에서 마야 저지대까지 확산되지는 못했다.

중앙 아메리카의 나머지 지역과 올멕 문화와의 관계는 BC 300년경까지 지속되었고 이즈음에 절정에 이르렀던 것 같다. 올멕은 중앙 아메리카 최초의 고등문화였지만 그 문화권 전체는 중앙 아메리카의 토양에서 형성된 그밖의 문명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BC 900~300년에는 올멕 문화가 여전히 광범위한 세력을 떨치는 한편 각 지역의 문화적 차별성이 더욱 커졌다. BC300~AD 100년에도 초기 올멕 문화에 필적할 만한 통일세력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여러 왕국이 속출하고 지방단위의 문화통합이 이루어지면서 지역주의가 일반화된 것이 이 시기였다. BC 300년경 페텐-유카탄 반도의 저지대 마야족이 장차 신대륙에서 가장 강대해질 문명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마야문명.

마야인들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멕시코 남부 치아빠스주의 고원지방에 살았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는 농사를 지었으며, 기원 전 8세기 경에는 멕시코의 남부 지방과 과테말라를 중심으로 하는 중미의 여러 지역에서 생활 터전을 마련했다. 기원전 5세기에는 띠깔과 와학뚠을 중심으로 번성했고, 이때부터 기원후 300년경까지는 상당한 문화 발전을 이룬다. 당시의 중심도시는 과테말라의 북부에 있는 엘 뻬뗀이었으며, 과테말라 고원 지방 출신인 끼체 민족과 더불어 살았다.

마야 제국은 흔히 구 마야 제국(기원후 300-800)과 신 마야 제국(800-1500)으로 나뉜다.

기원후 5세기 전후에 번성했던 구 마야 제국은 9세기 중엽에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침묵의 시기로 접어든다. 신 마야 제국의 중심지는 유까딴 반도이다. 당신 이들은 멕시코 북부 지역의 똘떼까 문화권과 활발히 교류했으며, 국경지방에서는 이들과 활발한 교역을 했다. 9세기 후엽, 북부지방에서 내려온 이짜족의 세 도시가 연맹을 결성한다. 그러나 1450년경, 신마야 제국 주요 구성원들인 마야족과 이짜족 간에 전쟁이 발생해, 마야빤은 철저히 유린된다. 1563년에 스페인이 이 지역을 정복했을 때에는 마야 제국은 거의 유명무실한 존재에 가까웠다.

 

아즈텍

아즈텍 족은 원래 문화수준이 낮은 야만적인 수렵민족이었으므로 선진 여러문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국가 형성을 이룬 뒤에 만들어 낸 종교 체계나 천문, 역법, 문학 등은 주로 테스코코를 통해서 받아들인 똘떼까계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들의 세계관은 태양에게 인간의 피를 바치지 않으면 태양은 움직임을 멈추고 세계에 종말이 온다는 숙명적 신앙으로 특정지어진다. 산 제물이 되는 것은 항상 포로였으며, 아즈텍족에 있어서 전쟁이란 세력 확대 뿐만 아니라 산 제물이 될 인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사회 조직 면에 있어서는아즈테카는 카르프리라는 공동체 조직을 단위로 하는 계급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공동체적인 토지 보유의 형태가 보이는 한편, 그 도시생활에 있어서는 사회 계층과 직능에 따라 거주 구역의 행정 조직이 이루어져 있었고, 자치적인 경찰과 사법조직도 발달해 있었다. 직업도 여러갈래로 분화 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포추테마라고 불리는 상인 계층이었다. 그들은 토라테로르코, 초츠라, 그밖의 도시에서 큰 시장을 개설하였고 그리고 그들 집단은 멕시코 중앙 아메리카 지방을 널리 여향하며 교역을 행하였다. 또한 귀족 평민의 교육 기관도 발달해 있었다.


잉카 문명

 

잉카는 사실상, 현재의 페루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차빙, 띠아와나꼬, 모취까, 치무, 나스까 문화를 규합해서 이루어진 하나의 제국으로, 이들의 부족 이름은 께추아이다. 이 부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마야족, 아스떼까족, 띠아와나꼬족의 일파라는 설이 있으나, 아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잉카의 신화에 따르면, 태양신은 자신의 아들 망꼬 까빡과 딸 오끄요를 띠띠까까 호수의 한 섬에 보내어 다른 부족들에게 문화를 가르치도록 했다.

태양신의 자손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금지팡이가 박히는 비옥한 땅을 찾아야 했으며, 여러 날의 순례 끝에 1043년 이들 남매가 도달한 곳은 '세상의 배꼽'인 꾸스꼬로, 이곳을 수도로 정했다고 말한다. '잉카'는 왕, 임금을 뜻하는 말이며, 이 제국이 가장 번성했을 때에는 현재의 콜롬비아 남부에서부터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북부, 아르헨티나의 북부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점유했다. 그러나 찬란했던 이 제국은 형제간의 불화에 의한 제국의 분리 통치에 따른 내부 갈등으로 1532년 프란시스꼬 빠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군에 점령당한다.


 유래

미국의 인디언의 유래는 1492 Chris toper Columbus 대륙에 처음와서 여기를 동인도쯤 생각하여 원주민을 인디언 이라고 명명한것이다.

  

 

인디언 쇠퇴

유럽인들의 쇄도와 식민화이후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학살과 노예화, 전염병 등에 의해 그 수가 급감하였고, 특히 카리브 해,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미국 일부 지역 등에서는 사실상 전멸하였다. 특히 유럽에서 몰고온 천연두 등은 치명적이었는데, 본격적으로 유럽의 침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래하기 전에 이미 천연두가 남북아메리카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어 학자에 따라 적게는 2/3 많게는 90%의 치사율을 보였다고 가정한다. 이들이 이런 높은 치사율을 보인 원인으로는 인디언들이 오랫동안 다른 대륙과 접촉을 하지 않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유전적 동일성을 보였다는 점, 유럽대륙에서 사람들과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유럽인들의 면역력을 높인 말, 돼지 등의 동물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에 대한 면역력이 잘 갖춰지지 못했던 점, 유럽에 흑사병이 퍼졌을 때처럼 사람들이 병을 치유한다는 이유로 한 곳에 모여 있었다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에 더불어 유럽인들의 침입은 인디언들의 쇠퇴를 가속시켰다.

 

보호구역.

인디언 보호구역은 미국전역에 310개소이며 보호구역 면적은 한반도면적보다 넓은 225,410평방 킬로미터이다

현재 미국내 인디언족은 202종족이 있다.

대부분이 보호구역시설내에서 정부의 혜택으로 살아가고있으며 학교는 전부 장학금으로 무료 이며 나이든 계층은 마약 알콜중독 사냥등 소일거리로 지내고있다. 대부분 주정부가 이들에게 다른 혜택도없이 시설내에서 무료하게 지내도록  직업 알선등은 하지않은 상태이다. 일종에 고사 작전인데 규모가 큰 보호구역은 관광상품화시켜 관광수입으로 연명하는곳도 있다.  전통유지같은것은 전혀 없다.   현재 150만명정도가  보호구역내에서 거주한다. 

이들 종족별 언어만 300여종이나 된다고 한다.

 

 
Two In one / The Indian Song

 
Two In one / The Indian Song
 
 

Singing hey lay oh ha 
(헤이 레이 오 하 노랠 불러요) 
When the pain is coming down again 
(고통이 다시 찾아오면) 
Sing this Indian song 
(이런 인디안 노랠 불러요 ) 
Singing hey lay oh hey 
(헤이 레이 오 헤이 노랠 불러요 ) 
Singing hey lay oh ha 
(헤이 레이 오 하 노랠 불러요 ) 
When the wind is blowing in your face 
(바람이 얼굴에 불어닥치면 ) 
Sing this Indian song 
(이런 인디안 노랠 불러요) 
Singing hey lay oh hey 
(헤이 레이 오 헤이)  
hey lay oh ha (헤이 레이 오 하 노랠 불러요) When you're lost and lonely, hurt again (길을 잃어 외롭고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Sing this Indian song (이런 인디언 노랠 불러요) Singing hey lay oh hey (헤이 레이 오 헤이) hey lay oh ha (헤이 레이 오 하 노랠 불러요) When you can see the trouble ahead (앞에 놓인 근심거리를 볼 수 있다면 ) Sing this Indian song (이런 인디언 노랠 불러요 )

'역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董景昌과 동씨침법.  (0) 2009.07.31
[스크랩] 동 중서 재조명.  (0) 2009.07.31
위구르족의 분노.  (0) 2009.05.30
등불의 역사.  (0) 2009.04.25
고인돌.  (0) 2009.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