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수리산부부동반산행(12/27)

털보나그네 2008. 12. 28. 00:30

 

 

수리산.

 

 

산행시간:2008.12.27.10시00~14시00(4시간)

산행코스:병목안시민공원-->병목안 석탑 --> 약수터 --> 관모봉 --> 태을봉 --> 슬기봉 -->군부대좌측-->성불사뒷길(상연사).

날씨:구름이 많고 약간 쌀쌀한 기온에 바람은 없음.

 

 

수리산은 견불산(見佛山)으로도 불리던 산으로산의 전체적인 형상이 '독수리가 치솟는 모양'이라 하여'수리산(독수리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 신라 진흥왕때 창건한 현재 속달동에 위치하고 있는 절이 신심을 닦는 성지라 하여 수리사라고 하였는데 그후 산명을 "수리산"이라 칭하였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조선조 때에는 왕손이 수도를 하였다하여 "수李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리산은 청계산(618m), 광교산(582m), 관악산(629m), 백운산(564m)등 광주산맥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산지중의 하나로 군포시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큰 산으로 태을봉(해발 489m)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슬기봉(해발 451.5m)북쪽으로는 관모봉(해발 426.2m) 북서쪽으로는 수암봉(해발 395m)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계는 수리산 (태을봉 489m, 슬기봉 451.5m)이 군포시 서측에 남북으로 형성되어 안산시, 안양시와 경계를 이루며 수리산 능선이 동서로 뻗어 군포시를 양분하고 있으며 수리산은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 오른 듯한 산계를 이루고, 봉우리 및 절벽은 대체로 규암이고 계곡지대에는 풍화에 약한 흑운모호상 편마암이나 안구상 편마암이 많으며 부분적으로 백운모 및 흑운모 편암이 협재되어 있다. 

 

 

 

 

 

 

놀토에 방학으로 다 쉬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우리회사도 금욜날 급한일 다 처리하고 토요일 휴무하기로 했다.

마눌님 수리산에 같이 가자고 해서 쾌히 승락하고 금요일 저녁 마트에 가서 일주일분치 장을 보고...

방학때는 간식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집에 먹을 간식거리가 없으면 아이들 온 집안을 다 뒤져서 찾아 먹는다.

마눌님 너무 먹어대니까 사놓고 구석구석 숨겨두고 조금씩 꺼내 놓는다...

요즘은 영양결핍보다 과잉현상이 문제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병목안까지 갔다.

다음에 친구랑 같이 온다고 길을 알아 놓아야 한단다.

병목안석탑코스로 등로를 정하고 오른다.

석탑에서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니 거부한다.

사진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르막길 나보다 앞서서 가버린다.

 

 

 

병목안.
새마을교에서 안양 채석장에 이르는 지역으로, 마을의 지세가 병목처럼 마을초입(새마을교)은 좁으나 마을에 들어서면 골(谷)이 깊고 넓다고 하여 병목안이라 부르고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수리산 뒤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뒤띠미(後頭尾洞)라 칭했고, 행정규역 명칭으로는 과천군 하서면 후두미동으로 불리웠다.

 

구전에 따르면 이 마을에 진주 류씨가 부자로 살았는데, 날마다 찾아오는 食客으로 고민하고 있던 차, 하루는 시주하러 온 스님에게 그 방도를 물었다고 한다. 이에 스님이 이르기를 마을초임(새마을교)산밑에 묘를 쓰고 탑을 세우시오 라고 이른 후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가다고 한다. 그 후 류부자의 하인이나 가족이 죽으면 스님이 일러준대로 묘를 쓰고, 그 옆에 탑(돌탑)을 세웠다는 것인데 이렇게 정성을 들이자 과연 류부자 집에 찾아오던 손님(식객)의 발길이 끊겼을 뿐만 아니라, 진주 류씨가 일 거에 패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병목안 동쪽에 있는 뉴골든아파트 뒷산이 풍수로 보아 배형국(舟形局)이므로 산 끝에다 묘와 돌탑 등 무거운 것을 쌓았으니 배가 뒤집혀 패망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새마을교 옆에 있던 돌탑은 손을 대거나 치우면 병목안 주민들이 위해 를 당할지 모른다는 속설 때문에 그래도 있었다가, 한국전쟁 때 미군들에 의해 어디론가 실려갔고, 묘는 1980년대 초에 대부분 화장되었다. 마을 동남쪽에 있던 안양채석장은 1930년대 초에 개장되었다가 1989년에 폐장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차응설이 이곳에 야학을 세워 문맹퇴치에 헌신 하기도 하였다.
안양3동 15통.17통.18통.24통에 속해있는 병목안에서는, 일제 중엽까지 만 해도창박골 주민들과 함께 해마다 음력 7월 1일이면 창박골 앞산(약수 터 입구)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관모봉에서 본 태을봉이다.

한달음에 올라온 관모봉저상에는 사람들이 많다.

안양쪽에서 산님들이 많이 오르고 있다

태을봉:광정동 뒤 높이 489.2m의수리산줄기 최고봉이다.태을이란 도가에서 태을 성신을 말하는데 병란이나 재앙,인간의 생사를 다스리는 별이라고 한다. 또 풍수지리에서는 큰 독수리가 두 날개를 펼치고 날아 내리는 모습을 매우 귀한 지상으로 꼽는데 그런 현상을 천을봉,태을봉이라 한다.

 

태을봉에선 조망이 좋지않아 태을봉으로 오르는 도중에 관모봉의 모습을 담았다.

 

태을봉 정상석.

산악회사람들 한무리가 몰려간다.

메너도 좋고 분위기도 좋아보인다.

년령층도 골고르인듯 하다.

커피와 사과를 먹고 다시 슬기산을 향하여 출발이다.

우리마눌님 토끼처럼 깡충깡충 잘도 간다.

쫒아가기가 버겁다.

오르막은 자신있는데 내리막은 잘 못간단다.

내리막에서는 발 모양이 평범치가 않아 군살도 생기고 발톱이 아프단다.

 

 병풍바위에서 통과하려다 무서워서 못간다고 하여 결국 우회를 했다.

산악회 사람들 우왕좌왕 하다가 결국 모두 우회한다.

수리터널과 그위로 수암봉이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

수암봉까지 가자고 하니 슬기봉에서 하산하잔다.

 

씩씩하게 앞서서 잘 간다.

 

 

 

슬기봉에서 본 군포시일대이다.

 

 슬기봉(거룡봉):수리동과 대야동 사이에 있는 높이 469.3m의 봉우리이다.수리산 연봉중에서 태을봉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이다.

거룡은 큰 룡을 뜻하는데 그 연원이나 내력은 확실하지 않다.대개 풍수지리에서는 산줄기를 내룡(內龍) 또는 용이라고 하므로 지상학의 관점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한다.

 

어디로 하산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군포쪽으로 방향을 잡고 갔다.

그런데 내려가다 보니 낙엽이 무성한 비탈길에 사람이 오르는 사람도 내려가는 사람도 없다.

마눌님 길 안내를 잘 못했다고 뒤따라오면서 투덜댄다.

이런 길을 다음에 친구랑 어떻게 다시 오냐고 잔소리다.

하산길은 어디로 가나 밑에서 다 만난다고 우겼다.

한참을 내려가니 성불사(상연사)가 나온다.

수리동 아파트촌에서 버스를 타고 금정역까지 나와  집을 향해 간다.

 

 

 

 





인간은 가능성의 보따리다.
그의 인생이 끝나기 전에 인생이 그에게서 무엇을
꺼내는가에 따라 그의 가치가 정해진다.  [해리 에머슨 포스딕]




Sundancer / Den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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