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관악산(12/20)-사당역에서 과천

털보나그네 2008. 12. 22. 11:04

 

 

 

관악산.

 

 

 

1.산행시간:2008.12.20.11:00~15:00(4시간)

2.코스:사당역-하마바위-마당바위-관악문-연주대-두꺼비바위-새바위-과천경찰서.

 

 

 

 

금요일 저녘 회사 망년회식을 하고 토요일은 휴무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출근걱정 안하고 맘껏 먹고 마시기로 했다.

1차는 한우집에서 소주와 함께 저녘식사...

2차는 노래방....

이제 분위기 봐서 도망가야할 처지가 되였다.

3차는 꿈도 꾸면 안된다....

 

토요일 아침 아이들 학교갈 준비...

아들 학교까지 차로 등교시켜주고 집으로 와서 혼자 뭘 할까?

옷을 갈아입고 사당역을 향하여 출발.

버스를 타고 전철를 타고 도착한 사당역.

등산객이 꽤 보인다.

이쪽은 처음이라 사람들 뒤를 따라갔다.

골목길을 한참 타고 간다...

등로가 나온다.

오르다보이 이정표가 나오는데 사당역,낙성대,관음사,연주대방향이 각각있다.

아마도 낙성대에서도 오르는 길이 있어 이길과 만나는 모양이다.

관음사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1km라고 적혀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른다.

요즘은 토요일 휴무하는 직장이 많다보니 토욜산행에도 사람이 많다.

다시 이정표를 만났는데 관음사1.3km,연주대2km란다.

관음사는 다음에 봐야 할 것같다.

날씨가 등산하기엔 좋다.

구름이 많아 해가 없고 기온도 그리 춥지도 덥지도 않다.

서울이 한눈에 다 보인다.

하마바위라고 쓰여 있는데 아무리 봐도 하마같지 않다

 

 

등로초입에서 사람들이 많다..

 

옆산으로도 사람들이 많이 오른다.

 

 

 

 

 

 

 마당바위에서.

 연주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등로에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열...

등산객이 적지않고 코스가 지루하지 않고 좋다.

마당바위에서 잠시 쉬였다가 한참을 오르니 관악문에서 정체다.

바위로 이루워진 좁은 문으로 사람들이 통과한다.

연주대가 먼 발치에서 보인다.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형상이 확연하고 바위투성이로 이루워져 암능이 멋있다.

어렵게 어렵게 정상을 올랐다.

우회길이 있다는걸...나중에 찍어논 사진을 보다가 알았다.

연주암에 가서 혹시나 점심을 얻어먹을수 있나 식당으로 갔더니 방금 끝난모양이다.

입구에 식수관계로 12;00~01:00까지 한다고..시계를 보니 01시15분이다.

한가한 자리로 자리를 옴겨 가져온 음식을 먹고...

 

관악문...

 

지도바위..

 

 

코끼리바위,촛대바위..

 

오던길 뒤 돌아서...

 

연주대 우회길...

 

 

 

정상에서...

 

 

 

 

 

<< 无量壽(무량수):추사(완당阮堂)김정희 선생이 씀. >>

 

 

케이불카 능선으로 방향을 잡았다.

6봉이나 8봉코스는 아직 잘 모르니 가다가 물어보고 갈만하면 가고 그렇지않으면 그냥 과천으로 하산하기로...

하산초입은 전에 지난 기억이 나는데 계속 능선길로 가다보니 처음가는 길이다.

두꺼비바위가 있고 새바위도 지나고...

한사람에게 물어보니 오른쪽에 보이는능선이 8봉이고 6봉(5봉)은 안보인단다.

능선길이 길게 느껴진다.

계속 능선길로 하산하다보니 커다란 산소가 나오고 이를 지나가니 과천경찰서가  나온다.

과천청사역 11번입구가 바로 나온다.

 

 

두꺼비바위..

 

보이는 곳이 8봉능선이라던데...

 

새바위...??

 

 

 


    
    

 

 <<자료조사>>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봉(629m) 절벽 위에 연주대(:경기도 기념물 제20호)가 자리하고 있고, 그곳에서 남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지점에 연주암이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며 나한도량()으로서 알려져 있다.

연주암은 677년(문무왕 17)에 의상(:652~702)이 창건한 절이다. 의상은 관악산 연주봉 절벽 위에 의상대를 세우고 그 아래 골짜기에 절을 짓고 관악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이후부터 고려 말까지는 거의 폐사되다시피 하다가 1392년(태조 1) 태조 이성계가 의상대와 관악사를 중수하고는 조선왕조의 번창을 기원하는 200일기도를 하였다.

연주대는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로 의상대 자리에 석축을 쌓고 30㎡ 정도의 대를 구축하여 그 위에다 암자를 지은 것이다. 1411년(태종 11), 동생인 충녕에게 보위를 양보하고 전국을 떠돌던 양녕과 효령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관악사를 현위치로 옮기고 연주대의 이름을 따서 연주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위치를 바꾼 이유는 관악사의 원래 위치에서는 왕궁이 바로 내려다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관악사의 이름이 연주암으로 바뀐 유래에 대하여는 다른 견해가 있다. 고려의 충신이었던 강득룡(康得龍)과 서견(남을진(南乙珍) 등이 그 자리에서 고려의 수도였던 송도()를 바라보며 통곡하였는데, 이 때문에 ‘주인을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 절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중수를 하였는데, 1868년(고종 5) 중수작업 때에는 명성왕후의 하사금으로 극락전용화전(殿)을 신축하였으며, 1918년에는 경산()의 주도 아래 중수 작업이 이루어졌고, 1928년에는 재운()에 의해, 1936년에는 교훈()에 의해 새로 건물을 세우거나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본당인 대웅전과 그 뒤편에 금륜보전(金輪寶殿:삼성각)이 있고 연주대에 응진전(應眞殿)이 있다.

금륜보전은 현재의 건물 중 제일 오래된 건물로서 1929년에 신축한 것이고 대웅전 및 기타 건물은 1970년대 이후에 지은 것이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을 모신 천수관음전과 효령대군 영정(경기도 지방문화재 제81호)을 모신 효령각은 1996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대웅전 앞에 있는 높이 3.2m의 고려시대 양식의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4호)은 효령대군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균형감이 뛰어나며 단아한 느낌을 주고 있다. 16나한의 모습을 비단에 그린 탱화가 응진전에 봉안되어 있고, 약사여래 석상이 응진전 옆의 암벽에 마련된 감실에 봉안되어 있는데 고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상은 기복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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