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홀로떠나는 여행길,관악산-연주대(7/27)

털보나그네 2008. 7. 27. 23:14

 



 

 지난날의 회한

사랑 욕망  미움
다툼으로 멍든 마음
모두 안으로 안으로 삭여
용서의 샘물로 씻어내고
맑은 마음에 여유를 담으라


자연이 나에게 전하는

속삭임들이 들릴 것이며
물이 낮은곳으로만 흐르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며
발걸음 재촉하는 구름의

뜻도 알게 될 것이니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비우고 또 비워

늘 넉넉한 마음안에

평온을 담으라

 

 

나홀로 관악산연주대가기

 

일시:2008년7월27일

코스:과천청사역-시흥향교-깔닥고개-연주암-연주대(관악산정상)-연주암-자하동천-과천청사역.

일행:없음.

 

 

아침에 05시40분 기상하여 베란다밖을 보니 길이 젖긴했어도 비는 오지않는다.

운동준비를 하고  인천대공원으로 갔다.

15km를 뛰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아침을 먹고...

요즘 가보지못했던 밭에 가서 딸것들 따고 뽑을것들 뽑고...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집에 돌아오니 12시반...

좀 늦은 감이 있다. 옷을 입고 나오니 1시다..관악산입구까지 2시간은 걸릴텐데...

 

버스를 타고 전철를 타고 ...연결이 잘된다...2시반에 도착.

한바탕 소나기라도 내린듯하다..땅이 젖어있다.

하산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등산을 시작...

전에 산무수리님과 왔던 기억을 생각하며 오른다.

요즘 비가 많이 와 계곡엔 물이 많이 흐른다...

물놀이하는 사람도 많다.

 

 

하늘은 구름이 꽉 찬 잿빗하늘이다.

원래 땀이 많은 관계로 온몸에 땀으로 목욕을 한다.

계곡에서 물에 들어가 놀고 있는 사람이 부럽다.

 

 

 

 

 

연주암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하며 주변을 들러본다. 

 

 연주암

연주암이 위치하여 있는 관악산은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불리었다.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 산은 줄기가 과천 청계산을 거쳐 수원의 광교산에 닿아있다. 곳곳에 드러난 암봉들이 깊은 골짜기와 어울려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으나 산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고 도심에서 가 까워 가족을 동반한 당일 산행 대상지로서 많은 이들이 찾는다. 연주암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가 있는데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는 연주암은 관악산의 모든 등산로가 집결하는 곳이다.
연주암은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봉에 자리잡고 있는 연주대 남쪽지점에 있다. 연주암은 관악산의 모든 등산로가 집결하는 곳인 데 남쪽 능선을 계속 따라가면 장군바위에 다다르게 되고, 북쪽 능선을 따라가면 마당바위 를 만나게 된다. 또 왼편으로는 무너미 고개를 지나 삼성산에 닿게 되며, 오른쪽으로는 자 하동천이 펼쳐져 있다. 연주암에서 자하동천 계곡을 따라 과천시로 내려가기까지 1시간 정 도가 걸린다. 연주암은 본래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당 시 관악사로 불리던 오늘날의 연주암은 조선 태종 11년(1411년) 태종의 첫째, 둘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한다. 정상에 이웃한 연주대는 관악산 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절경으로 이곳에 오르면,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국관광공사-

연주암3층석탑

탑은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형태이다. 바닥돌에는 연꽃을 둘러 장식하고, 기단 네 모서리와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에 1층은 4단, 2·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어 규칙성을 잃고 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 위로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 모양의 장식), 보주(寶珠:구슬 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관악산 연주암 응진전

하늘 향해 치솟은 절경 속의 작은 절 연주대 신라 667년 의상대사가 참선을 하던 곳이라서 ‘의상대’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연주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옛 임금을 그리워 한다’는 뜻의 연주대는 고려의 수도 송악이 바라보이는 이 곳에서 망국의 한을 달래던 충신들의 애뜻한 사연을 전하며, 벼랑 끝에 아스라히 걸려있는 법당은 응진전으로 5평 남짓한 아담한 건물에 맞배지붕을 이고 있다.

입구의 바위면에는 영험하기로 소문난 마애약사여래입상이 있어 소원을 빌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항상 끊이지 않는다.

해발 629m 의 기암절벽 위에 자리한 연주대와 함께 관악산 제일의 명소로 일컬어지는 연주암은 유명한 기도사찰이다. 지장보살에게 불공을 드리거나, 산신각인 금륜보전 뒤 붙임바위에 돌을 붙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해마다 대학입시철이면 합격을 기원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연주암은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으로 정할 때 앞으로 닥칠 환난에 대처하기 위해 세운 호국도량이라고 한다.

조선 태조 5년(1396)에 중건 했고, 세종 11년(1429)에 효령대군이 중수한 것을 비롯하여 최근까지 여러차례에 걸쳐 보수 관리가 이뤄졌다. 요사체 각 방에는 명필가의 방호가 걸려 있어 서예가들에게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다. 경내에 들어서면 연주암 3층 석탑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끌고, 그 뒤로 대웅전과 천수 관음전,효령각 등이 자리잡고 있다.

연주암의 건물들은 전통적인 가람 건축양식과 달리 높게 쌓은 석축 위에 이층 구조로 되어 있는 점이 독특하다.

연주암은 관악산을 찾는 이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코스 중 하나로, 산사가 주는 적요한 느낌 보다는 사람과 가깝고 생활과 밀접한 사찰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관악사의 이름이 연주암으로 바뀐 유래에 대하여는 다른 견해가 있다. 고려의 충신이었던 강득룡(康得龍)과 서견(徐甄)·남을진(南乙珍) 등이 그 자리에서 고려의 수도였던 송도(松都)를 바라보며 통곡하였는데, 이 때문에 ‘주인을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며 나한도량(羅漢道場)으로서 알려져 있다.   

 

 

 

 

 

오랜만에 비가 오지않아 사람들이 많이 왔다.

하산을 하는데 해가 구름을 헤치고 나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햇살이다.

반갑다햇살아~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발거름을 재촉한다.

집에선 저녘준비를 끝마치고 나오길 기다릴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