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a Dela(굽어 살피소서) - Sacred Spirit
북한산-칼바위능선
2018년09월02일 일요일.
들머리:빨레골
날머리:우이동 북한산탐방지원센터.
코스:1호선 동대문역에서 환승-지하철4호선 수유역3번출구-03번 마을버스탑승 종점(빨레골)하차-문필봉-칼바위능선-대동문-시단봉-동장대-용암문-도선사-우이동 북한산탐방지원센터.-120번 버스종점 탑승하여 수유역하차.
칼바위능선을 가려고 검색을 해 보니 들머리가 제각각이다.
그중 제일 맘에드는 코스가 빨레골이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코스로 산행을 다녀올 생각을 하고 출발.
집에서 07시에 출발하여 09시가 다되어 빨레골에 도착했다.
이곳은 북한산둘레길 흰구름구간이다.입구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예전에 둘레길 돌때 스처지나갔던 곳인데 기억이 잘 나지않는다.
궁궐의 무수리들이 빨레중에 속옷들를 궁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맑은 묽로 은밀히 빨면서 핑계김에 휴식도 함께 취했던 곳이란다.
안내가 잘 되어 있다.
시인 공초선생의 묘소가 있다는 표지석이 서 있다.
오상순 (吳相淳, 1894년 8월 9일 ~ 1963년 6월 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수필가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호(號)는 선운(禪雲), 공초(空超)이며 필명(筆名)은 오성해 (吳星海)이고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담배불를 붙혀 잠들때까지 꺼지지않는 골초중에 골초라서 남아있는 사진에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라니...
괘짜중에 괘짜였던 공초선생의 생애는 평범하지않았다.
묘소를 둘러보고 나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아침일찍 산을 오르고 이시각쯤에는 하산하는 모양이다.
하산하는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복장을 보면 먼곳에서 온 것 같지않다.
바람이 계곡을 타고 올라와 시원하다.
계곡을 타고 오르다가 한사람이 길이 작아지는 길로 올라가고, 나는 정석대로 정규등로를 타고 올랐다.
냉골약수터 이정표를 보고 약수터가 궁금하여 이정표를 따라 다시 하산하니 아까 올랐던 그 분이 급경사를 오르고 있다.
약수터사정을 물으니 물이 잘 나온다고 한다.
비가 많이와서 물이 콸콸 잘 나온다.
물맛을 보고 다시 원래대로 등로를 잡는다.
하늘에 구름은 너무 멋지고, 날씨가 너무 좋아 풍경과 함께 어울리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역시 북한산은 명산중에 명산이다.
칼바위를 지나 대동문,동장대를 지나 용암문에서 하산을 시작.
얼마를 내려가니 물이 흐른다.
물가에 앉아 가져온 음식을 다 먹어치웠다.
오늘은 베낭이 가난하다,다음에는 부자집베낭을 들고 와야겠다...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발길를 재촉하여 하산해 보니 도선사뒷편이다.
워낙 도선사에는 찾는 이가 많다.
불도자가 아니더래도 한번쯤은 와 볼만한 곳이다.
21세기 오늘날 도선사는 우리나라의 불교를 대표할 수 있는 큰 사찰 중에 하나다.
이곳에선 잔치국수를 10시(?)부터 5시까지 무료배급을 한다.
나도 한그릇 받아서 출출한 배를 남김없이 국물까지 다 먹어치웠더니 속이 든든하다.
역시 부처님은 좋은 분이신게 확실하다.ㅎ
버스를 타지않았다.
걸어서 북한산 우이동 탐방센터까지 왔다.
120번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수유역까지 졸면서 왔는데..
아차!!트랭글를 종료시키지 않았다.
시작할때도 한시간이 넘도록 시작도 하지않고 가다가 늦게서야 알고 시작했는데...
데이터가 엉망이다.어찌 보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거리-시간무시하고 쾌적만 참고하면 될듯 싶다...
북한산 둘레길 '흰구름구간길' 이정표.
화계사와 정릉길의 갈림길이다.
수유리 빨래터 유래.
빨래골이 위치한 수유동은 예부터 북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많아 '무너미'라 불러졌다.
무너미란 저수지물를 저장하기 위해 둑을 쌓아 놓고 한쪽의 둑을 조금 낮추어 물이 먼처서 흐르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맑고 깨끗한 물이 넘처 자연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고,당시 대궐의 무수리들이 빨래터와 휴식처로 이용하면서 '삘래골'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당시 무수리는 궁 근처의 청계천에서 빨래를 하였다.
궁에서 나오는 빨래는 하루에도 어마어마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많은 빼랫감 중 은밀한 빨래감(속옷 등)은 다른 아낙들과 섞이지 않도록 궁궐과 많이 떨어진 이 곳에서 빨래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무수리들은 빨래를 하던 먼 이곳까지 나온 김에 휴양까지 하고 가는 등 빨래골은 궁과는 독립적인 공간으로 많이 활용되었다.
북한산둘레길(흰구름길)의 자락에 있는 이 빨래골은 답답하고 엄격한 궁을 떠나 맑고 깨끗한 자연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쉴 수 있었던 곳으로 옛궁녀들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곳이다.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있던 나에게 한 사람이 안내를 돕는다.
삼성암을 오가며 운전하시는 분인것 같은데(스타렉스)
큰 도움은 안되었지만 의지심을 유발하게 했다.
결국 왼쪽길를 택하여 등로를 올랐다.
조금 오르다보니 공초(空超)선생의 묘소 안내표지석을 만난다.
空(빌 공),超(뛰어넘을 초).
얕은 물이지만 참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
공초 오상순선생의 묘소.
흐름위에
보금자리 친
오 흐름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魂
-방랑의 마음 중의 한 구절-
수까치깨.
그늘진 산길에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 좋다.
남산타워에 관악산,청계산,수리산이 보인다.
롯테타워도 멋지게 보인다.
아줌마 3명이 베낭을 다 풀어헤치고 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스트레스를 푼다.
빨래골 1.6km, 칼바위 공원지킴터 1.0km.
붉나무.
산비둘기.
칼날능선 정상부.
팥배나무.
며누리밥풀꽃.
기름나물.
산박하.
알록제비꽃.
바위채송화.
산박하.
자주병조희풀.
산박하.
이고들빼기
좀개미취.
고비.
김상궁사리탑.
위에 구멍이 있는데 이곳이 "사리함"이라하며 그 아래에
金尙宮淨光花之舍利塔 同治癸酉十月日立(김상궁정광화지사리탑 동치계유시월일립)
이라고 쓰여있는데 "淨光花"는 金尙宮의 佛法名이라하며 "맑고 빛나는 꽃"으로 해석할수 있다.
평생을 宮에서 결혼도 못하고 살다가 갔을 金尙宮에게 淨光花라는 法名을 붙여준 것은 김상궁의 품격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과학으로도 잘 설명이 되지 않는 舍利(사리)는 주로 남성들이 성생활을 극단적으로 자제하여 발생되는 일종의 '담석'같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여성에게는 발생될수 없다고 하는데 "사리"가 나올 정도였으니 당시에 획기적인 사건이었기에 "舍利塔"을 만들었겠다...
同治癸酉十月日立의 同治는 중국 靑나라의 연호이고 1862~1874 사이인데 조선에서는 철종 13년~고종 11년 사이.
癸酉十月日立의 癸酉는 60년에 한번씩 있는 해로서.. 1753, 1813, 1873, 1933년...
1862~1897년 사이의 계유년은 1873년 뿐이다.
김상궁은 여성으로서는 특이하게 사리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고, 김상궁의 사리탑은 1873년 10월(고종 10년)에 세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1873년,그 시절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연산군과 민비,철종과 고종...그시절에 궁궐에서는 엄청 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혼란의 시절이였다...
도선사.
봉황각.
봉황각은 동남향으로 자리 잡았고, 봉황각 왼편의 살림채 역시 같은 좌향을 하였다.
봉황각이 건립되었을 당시에는 봉황각 오른편 아래 우이동 버스종점 주변에 12동의 건물이 더 있었다고 하는데,
3·1운동 후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다고 한다.
봉황각을 포함한 건물의 숫자가 13인 것은 천도교의 신앙 방법 중의 하나인 '13자 주문'과 통한다.
봉황각은 '弓乙(궁을)'자형으로 평면이 구성된 한식 목조건물인데, '弓乙'자형의 몸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고,
왼쪽 머리를 구성하는 부분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인데, 오른쪽 모서리 한 칸은 몸채 왼쪽 모서리와 겹쳐 있다.
건물 평면을 '弓乙'자형으로 한 것은 천도교의 핵심사상 중의 하나인 '궁을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궁을은 천도교 교조 최제우가 하늘에서 받은 명부의 모양으로 우주 만물의 순환 작용과 활동을 형상화한 것이다.
손병희는 고종 19년(1882) 동학에 입교하였고, 2년 후 교주 최시형을 만나 수제자가 되었다.
을사조약을 찬동한 친일분자인 이용구 등과 결별하고, 1906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제3대 교주로 취임하였다.
1908년 교주 자리를 박인호에게 물려주고 이곳 우이동 봉황각에 은퇴하여 수도에 힘쓰며 지도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었다.
손병희는 3·1운동도 이곳에서 구상하였으며,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은 후에 3·1운동의 주체가 되어 구국운동의 최선봉에 서게 되었다.
봉황각에서 마주보이는 전면 약 50m 되는 산의 언덕에는 손병희의 묘가 있으며, 봉황각과 천도교회관에는 당시의 유품이 남아있다.
봉황각은 연성도량으로 의창수도원이라고도 한다.
별 헤는 밤-윤동주
계절이 지나간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진 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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