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en Glens Of Antrim - Phil Coulter
고양누리길3코스-서삼릉누리길
2018년03월03일 토요일.
누님이 홍은동에서 고양시로 이사를 했다.
집구경한번 가자고 했는데 근처에 경관이 좋다하여 집근처 트래킹을 하고 집에가자는 의견.
알아보니 고양누리길이 있는데 14코스까지 있다.
그중 누님댁과 가장 가까운 3코스를 선택하고 삼송역에서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집에서 출발를 하는데 대략 2시간을 예상하고 준비를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30분이 지체되었다.
부천에서 전철를 타고 가다가 종로3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간다.
삼송역 도착 예상시간이 9시59분이다,휴!! 다행이다.
독립문역을 지나는데 형님에게 카톡이 왔다.
도착 5분전 이란다.
앞차를 타고 가시나 보다...
요즘은 참 편리한 시절이다.
빠른 소통과 정보화의 시대에 살고 누리며 살고 있다.
5번출구로 나오니 누님과 형님내외분이 반긴다.
형수님이 다짜고짜 빨리 따라가자고 한다.
그러고보니 한무리의 사람들이 간편복을 차려입고 앞에 무리를 지며 가고 있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다.
따라가면 되는거예요? 따라가는 편이 헐신 수월하다는 속내가 있어 군말없이 따라 갔다.
가다보니 조금 이상하다...
따라가다가 안내지도가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가 따라가는 길은 한북누리길이고 북한산 방향으로 가는거다.
우리가 이길를 따라가면 반대로 가기때문에 나중에 돌아올 길이 멀어 진다.
교통수단도 불확실한 상태다.
다시 의논하여 되돌아 가 원래 가려던 길로 가기로 했다.
다시 삼송역으로 돌아와 고양고등학교방향으로 진행했다.
농협대학-서삼릉방향으로 진행하는데 누님이 오르막을 오르다 나무에 얼굴를 찔려 피가 얼굴에 번벅이 되어 있다.
반창코를 붙혀 피는 멎었지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바람에 서삼릉은 그냥 패스하고 원당역을 향하여 진행.
원당역에 도착하고도 병원은 한참만에 나왔다.
원당 재래시장까지 가서야 발견한 정형외과 병원.
치료를 마치고 식사를 하기위해 경희를 불러 만나서 '화로구이'집으로 경희,소희식구들,종성이가 함께 모였다.
맏딸답게 경희가 주도하여 추진하고 동생들를 책임지는 모습이 듭직하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서 집구경을 하고 과일과 커피를 마시고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여졌다.
소희내식구는 6월경에 직장사정으로 중국으로 들어간단다.
사위가 중국공장으로 4년동안 파견근무를 한다고 한다....
한북누리길 여석정을 조금 지나다가 다시 빽하여 되돌아 나왔다.
삼송역출발.
-세수동마을에서 등산코스(사탐말산)
-천일약수터
-농협대학
-세계문화유산 서삼릉패스.
-수역이 마을 폐촌.
-원당역.
나는 영문도 모르고 한무리의 사람들를 따라갔다.
형수님은 이들과 함께 스트레칭도 했다고 한다.
등산로 입구에 세워진 고양한북누리길 안내지도가 있어서 살펴보니
우리가 가려던 곳과는 정반대방향으로 전개가 되고 있다.
삼송역에서 0.66km지점이고 북한산방향으로 5.88Km를 간다.
안내도를 보고있는동안 누님과 형수님은 벌써 계단을 신나게 오르고 있다.
계단마루에는 여석정이라는 전망대가 있다.
여석정(礪石亭)이다. ‘숫돌고개 정자’란 뜻이다.
한가로이 정자에서 전망을 즐길마음의 여유가 없다.
이대로 이들를 따라가야할지 아니면 되돌아 나와야 할지 헷갈리는 순간이다...
결국 다시 되돌아 나오기로 결정했다.
북한산까지가면 다시 돌아나와 원당까지 오는것도 시간이 많이 걸릴것이다.
갈때 못보고 지나쳤던 의주대로안내판이다.
의주대로는 조선시대 한양과 평안도 의주를 잇는 옛길로 경의(京義)대로라고도 한다.
이곳 삼송동 구간은 북쪽에 여석령(숯돌고개), 남쪽에 창릉천(덕수천)이 있어
조선시대 때 관리들이 묵었던 숙소인 덕수원(德水院)이 있던 요충지였다.
의주대로를 되살린 트래킹 코스인 ‘의주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다시 삼송역까지 되돌아 나와서 안내도를 살펴보았다.
서삼능누리길안내도가 버젓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엉뚱한데로 가다니...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어야하는 건데 나의 불찰이다.
일차목표는 고양고등학교를 찾아 그 앞으로 지나가야 한다.
고양고등학교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이정표를 따라서 문제없이 잘 진행해 간다.
숫돌고개안내표시판이 서 있는데 글씨를 알아 볼 수 가 없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돕기 위해 명나라에서 파견된 이여송 장군은 평양성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후 파죽지세로 의주대로를 따라 남진하였다.
하지만 평양성 전투의 승리에 너무 도취되어 이여송 장군은 정찰을 충분히 하지 않은 채로 일본군을 추격했고 결국 1593년 1월 27일 숫돌고개에서 일본군의 매복에 걸려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 싸움을 ‘벽제관 전투’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패한 이여송 장군은 복수를 다짐하며 이곳 고개에 있었던 바위에 자신의 칼을 갈았다고 하며, 그 때부터 이 고개의 이름은 숫돌고개가 되었다.
한편,이곳에서 칼를 가는 숫돌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하여 여현(礪峴)이라고 기록이 남아 있단다.
숫돌고개 주변에는 지금도 많은 참호와 군부대가 있어서 숫돌고개가 여전히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표지판의 내용이다
북한산에 살던 거북이 창릉천을 따라 내려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바위가 되었다는데
이바위 땅속에 묻혀진 다리가 드러나면 창릉천이 마른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단다.
농협대학
어수선한 누리길이다
빙판이 있어 위험하기도 하고 가끔 차가 지나가서 매연을 마셔야 했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없어 걸어가는 사람이나 차를 몰고 지나가는 운전자 모두 조심해야 한다.
여름에는 차가 지날때마다 흙먼지가 날릴것이 분명하겠다.
서삼릉 입구
효릉입구
한국스카우트연맹 중앙훈련원
숲풀에 가려 잘 보이지않아 어디로 갈지 두리번거리다가 발견.
지나던 한 아저씨가 원당역방향이 맞다고 알려 준다.
이제 이곳주변은 재개발하려고 페허가 되어
비닐하우스 폐비닐이 나무에 걸려 바람에 펄럭이고 흉물스럽게 부서진 빈 주택들...
[한때 '수역이마을'로 원당역과 서삼릉사이에 위치한 큰 마을로 '쇄기'로 불리기도 했는데,
'수역 水域'은 물이 많은 지역을 부르는 이름인데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수역이가 오늘날의 '쇄기'로 불리게 된 것이란다.
2000년대에 들어 이곳에 식당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이지역에서 유명한 토속음식촌이 였다.
매운 쭈꾸미볶음이 유명했었다.]
이제 예전의 유명했던 음식점들은 모두 이주하고 없는 상태였다.
원당 재래시장
'여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주소금산(2018.03.24) (0) | 2018.03.24 |
---|---|
천마산(2018.03.11) (0) | 2018.03.11 |
수리산(2018.03.01) (0) | 2018.03.01 |
태백산(2018.02.025) (0) | 2018.02.25 |
대둔산(2018.02.11) (0) | 2018.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