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서울둘레길-관악산구간 사당역에서 석수역까지(2017.08.01)

털보나그네 2017. 8. 1. 22:57

 


Wind Song - Roberto Cacciapaglia

 

 

                


서울둘레길-관악산구간

(사당역에서 석수역까지).

 

 

※전체거리 12.7km(소요시간 5시간50분예상)
 

 

 

 

 

 

2017년08월01일(화요일)

휴가라지만 휴가비도 없고 분위기도 좋지않아 계획없이 보내고 있다.

어제는 하루종일 집에있다가 저녘에 상민이네와 청구형님네랑 모여 식사,

숫불닭갈비집에서 간단히 소주도 함께,

서로 건강하고 아프지말자는 다짐으로 화제가 돌았다.

 

오늘도 계획없이 하루종일 집에 있자니 시간이 아깝다.

해서, 지난번 못한 관악산둘레길를 다녀와야겠다.

오늘은 사당역에서 석수역까지 염두해두고 집을 나섰다.

3200번을 타면 선바위역까지 외곽을 타고 가서 빠르기때문에 한참을 기달려 탔다.

선바위역에 도착하니 욕심이 생겨 용마골에서 남태령으로 가서 사당으로 가려고 무작정 용마골로 올라갔다.

그런데 가다보니 좀 이상하다는 느낌....

지도를 살펴보니 남태령마루도 그렇고 남태령에서 사당까지 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지않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되돌아 나왔다.

오전부터 무척 덥다.

큰길에서 버스를타고 사당역으로 왔다,세정거장가니 도착했다.

 

사당역에서 다시 시작이다.(사당역4번출구)

관음사를 들려 사찰를 구경하고 낙성대를 거처 서울대를지나 삼성산성지.

오늘 날씨가 바람도 없고 장난아니게 덥다.

숲길를 걸어가는데도 온몸이 땀으로 젖어 흘러내린다.

핸드폰에선 계속 재난메세지가 들어 온다.

호압사에 도착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산을 혼자다니기 시작할때 처음으로 이 호압사를 찾았다.

전철를 타고 버스를 타서 벽산아파트로 와서 호압사를 찾아 올랐다.

아침일찍 나선 길이라, 그때 이른아침 스님이 대웅전 앞마당을 빗자루로 쓸던 모습이 상끔하고 인상적이였었다.

지금은 그때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다.

그때는 단아하고 여유로운 사찰로 느껴졌는데...

오늘은 조금은 복잡해 졌고 어수선한 느낌도 든다.

 

사찰에 도착하면 나는 늘 물도 먹고 빈 물통을 채우는 작업을 한다.

아무래도 샘물보다는 사찰약수터물이 더 신뢰가 간다.

호압사에서 석구역까지는 3.3km로 결코 짧지않은 거리다.

시흥으로 빠질까도 생각했는데 그냥 석수역까지 가기로 했다.

갈수록 길이 나쁘지않고 숲길이 아름답다.

도착해서 트랭글를 끄려고 보니 어!? 이미 커져있다.

서울대까지만 표시되어있다...

모르는중에 잘못 눌려 졌나보다....

 

 

 선바위 전철역(10:31)

 

 용마골초입

 

 남태령망루

 

 

 

 

용마골앞 방공제1여단 부대앞건너편에서 11-1 버스를 타고 3정거장을 지나니 사당역이다

종점까지 가고싶을 정도로 버스안은 에어컨으로 시원하다.

사당역앞에서 내려 지하도를 건너 사당역4번출구로 올라와 관음사방향으로 오른다.

긴 주택가를 지나 올라가야 한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서울둘레길 스템프 찍는 곳이 보인다.(11:41)

 

 

 관음사 일주문.

 

 

 관음사 진부전과 불교방송 송출기념 9층석탑.

 

 관세음보살상과 대웅전

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불도자들이 많이 오간다.

 

 물한모금 목을 축이고...

 

 용왕각

 

 길가에 목을 쭉 빼고 핀 원추리꽃.

마치 얼굴를 내밀고 봐달라는 듯한 모습이다.

 

 12:06

 

 

망태버섯

 

 

 꼬리표와 이정표가 잘 되어있어 어려움없이 잘 갈수 있었다.

 

 

 

 

 

 



무속신앙(무당골)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은 우주의 만물과 그 운행에는 각각 그 존재와 질서에 상응하는 기운이 깃들어 있어 인간이 제 스스로 낮추어 그 기운을 거스르지 않고 위하고 섬기며 소원을 성취하며, 모든일이 질서를 찾아 편안해 진다는 확고하면서도 광범위한 법 우주적,자연적 신관과 나름대로의 신앙체계를 갖추고 있는 한국의 민간신앙이다.

 

신앙의 대상이 우주의 성진은 물론 천지간의 자연신과 인신,유령신,무형신 등으로 무한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늘의 해와 달,별자리,땅 위의 산과 들,바다와 계곡,동네의 우물,바위와 고목,가택의 대들보와 부뚜막,심지어 화장실과 굴뚝까지도 그 자체로 혹은 그 곳에 상주하는 신격이 있는 것으로 상정하고 위하고 조심하는 것은 물론 영웅신,성인 신,가내의 조상 신,길거리의 주인없는 귀신까지도 그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산길을 걷노라면 세상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보인다.

이 길은 인헌공 강 감찬길이다.

낙성대 뒤에 위치해 있다.

 

 

 

 

 



안국사(安國祠)

낙성대공원에 있는 강 감찬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

고려시대명장 강 감찬(姜 邯贊,948~1031)의 사당으로,강 감찬 장군이 거란군을 물리치고 받은 추층협모안국공신(推忠協謀安國功臣)이라는 호를 따 안국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1974년 강 감찬장군의 출생지역인 낙성대(落星垈)에 건립하였고, 사당주변을 공원화하여 낙성대공원을 조성하였다.

'큰 별이 떨어진 곳'이라는 의미의 낙성대는 장군이 출생하던 날 출생지에 별이 떨어졌다는 전설에 따라 지은 이름이며. 1972년5월25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낙성대3층석탑이 경내에 있다.

안국사는 낙성대공원의 연못 뒤쪽에 있으며 길이 409m의 사괴석(四塊石)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입구에 기념 휘호석과 관리사무실이 있으며 안국문(安國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외심문을 통과하면 잔듸와 수목으로 깔끔하게 조성된 넓은 정원이 펼처진다.정원 좌,우측에는 고려강 감찬장군사적비와 '강 감찬낙겅대'라는 명문이 새겨진 삼층석탑이 있으며 정원 안쪽의 낮은 계단을 올라 내삼문을 지나면 사당이 나온다.

강 감찬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은 237.6m@의 정면5칸,측면2칸 팥작지붕 건물로 ,고려시대 목조건축인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1:25

 

이곳을 지나면 도로를 건너서 가야 한다.

 

 

 

서울대 정문

 

2:05

 

 

이 길를 따라 올르다가 물레방아가 있는 곳에 이정표가 서있는데 그곳에서 우측 길로 접어든다.

 

 

길가로 장승이 서 잇는 장승길이다.

 

기묘하게 생긴 돌무덕에 올라서면 관악산과 삼성산이 한눈에 펼처진다.

 

이곳에 앉아서 간식으로 요기를 하고...

 

물맛이 시원하다.

 

삼성산(三聖山) 성지는 기해박해(1839년)때 새남터에서 서양인 성직자로는 처음으로 천주교를 전교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아, 1839년 9월 21일(음 8월 14일)에 군문효수의 극형으로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范)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羅) 신부, 성 야고보 샤스땅 정(鄭) 신부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다.

 

삼성산 카톨릭 성지

 

<호압사의 창건유래>

호압사가 창건된 데에는 두 가지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먼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금천조에는 지금의 시흥군의 현감을 지냈다고 하는 윤자(尹滋)의 이야기가 전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금천의 동쪽에 있는 산의 우뚝한 형세가 범이 걸어가는 것과 같고, 그런 중에 험하고 위태한 바위가 있는 까닭에 범바위(虎巖)라 부른다. 술사가 이를 보고 바위 북쪽에다 절을 세워 호갑(虎岬)이라 하였다....."라 하고 있다.

또 다른 전설로는 1394년(태조 3)을 전후해 조선의 도읍을 서울로 정하고 궁궐을 짓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다. 즉 태조가 서울에 궁궐을 세울 때 전국의 장인을 모아 진행했는데, 여러 차례에 걸쳐 밤만 되면 무너져버려 노심초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둠 속에서 괴물이 나타났는데 반은 호랑이고, 반은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이상한 동물이었다. 이 괴물은 눈으로 불길을 내뿜으며 건물을 들이받으려고 하였다. 이때 태조가 괴물에게 화살을 쏘라고 하였고, 화살은 빗발처럼 쏟아졌으나 괴물은 아랑곳없이 궁궐을 무너뜨리고 사라졌다.

태조가 침통한 마음으로 침실에 들었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나 "한양은 비할 데 없이 좋은 도읍지로다"라며 멀리 보이는 한강 남쪽의 한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태조는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호랑이 머리를 한 산봉우리가 한양을 굽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인에게 호랑이 모습을 한 산봉우리의 기운을 누를 방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노인은 "호랑이란 꼬리를 밟히면 꼼짝 못하는 짐승이니 저처럼 호랑이 형상을 한 산봉우리의 꼬리부분에 절을 지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입니다."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 다음날부터 이곳에 절을 짓고 호압사(虎壓寺)라고 명하였다고 한다.

위의 두 설화는 공통적으로 풍수지리설과 비보사찰설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산의 모양을 호랑이로 본 것이며, 이를 누르기 위해 절을 창건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법정-

 

 

8

8각9층석탑

 

 

 

명 칭
석약사불좌상(石藥師佛坐像)
종 목
문화재자료 제8호(금천구)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석조/ 불상
수량/면적
1구

 

지 정 일
2000.04.10
소 재 지
서울 금천구 시흥2동 234

 

시 대
시대미상
소 유 자
호압사

 

관 리 자
호압사
상세문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문화공보과 02-890-2410
 

 

 

호압사는 삼성산(호암산) 자락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전통사찰로

1394년(태조2년) 태조의 명으로 무학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호압사는 비보사찰로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즉 삼성산(호암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호랑이기운을 가지고 있는데,

삼성산의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위해 호랑이꼬리부분에 해당하는 자리에 절를 창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단아한 석약사좌불상과 500년 묵은 오래된 느티나무 2그루가 있

 

 

 

 

 

왜 안아 주지 않니?박순득

 

언덕은

바람을 안고

웅덩이는

골따라 흐르는 물를 안는다

그런데 너는

그리움따라 흐르는 나를

왜 안아 주지 않니?

 

 

 

 

호암늘솔길

 

신선길

 

 

비비추

 

누리장

 

 

누구나 잠깐 동안 고요히 앉으면 수없이 많은 칠보탑을 만드는 것보다 낫다.

보탑은 결국 무너져 티끌이 되나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깨달음을 이룬다 <문희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