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서울도성 트래킹(2017.06.24)

털보나그네 2017. 6. 24. 21:33

Home Is Where The Heart Is - Kavin Hoo
 

 

 

 

 

 

                    

서울도성 트래킹.

(혜화문~삼청공원)

 

 

 

 

2017년06월24일(토요일)

지난봄에 형님이 6월24일 트래킹을 하려고하니 날를 비워두라고 했다.

그리고 도성트래킹을 하겠다고 카톡으로 공지를 올렸다.

오늘이 그 날이다.

11시 한성대입구역 4번출구 혜화문방향.

 

시간이 어중간하고 코스도 짧고하여 아침에 인천대공원에 나가 운동을 하고(13km) 들어욌더니...

시간이 촉박하다.

큰형에게 30만원을 줘야하는데 가져오는 것 전철를 타고 가는 중에 생각이 났다.

집에 전화를 하여 계좌로 붙혀달라고 했다.

 

다행히 11시정각에 한성대입구에 도착했다.

이미 누님과 형님은 와서 벤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반갑게 만남의 인사를 나누고...

트래킹을 시작한다.

이런 시간을 진작부터 많이 가졌어야 했다...

앞으로 많이 갖자...이런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와룡공원에서 잠시 쉰다.

덥긴했지만 하늘에 구름이 잔득...

곧 비라도 올것 같다.

 

말바위안내소 도착.

간식을 나누워 먹고, 둘째형이 불참한 것이 못내 아쉽다.

안양형님의 건강을 염려하고 어머니의 곧은 성품을 찬양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삼청공원으로 하산.

 

점심은 삼청동수제비.

그 유명세에 걸맞게 맞도 좋다.

명품수제비에 동동주 한대반,파전까지...

형님이 쏘셨다.

후식으로 스타박스에서 커피는 내가 쏘았다.

누님이 고맙다고 큰형과 나에게 스카프를 하나씩 사서 준다.

북촌언저리와 안국동,정독도서관,덕성여고와 풍문여고앞...

그 모습들이 많이도 변해있다.

행복한 시간,소중한 시간이 한 페이지추억이되어 이렇게 남아 있다...

 

9월에는 내가 코스를 잡아보라고 한다.

분기별로 마자막주 토요일에 이런기회를 정기적으로 가져보자고...

가능하면 동부인도,그리고 다른사람들도 합류해도 좋고...

 

 

 

혜화문.

 

 

길가 화단에 예쁜 꽃들이 피어 발를 잡아끈다.

 

 

 

 

와룡공원

 


 

 

 

애가똥풀.

 

작살나무꽃

 

삼청각

 


인왕산과 북악산이 조망이 되는 말바위 쉼터.

 

호는 백산(). 일본 육군에 임관되어 복무하던 중 1916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본 육군 중위로 승진되어 청도() 전투에 참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1919년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조국독립을 쟁취할 것을 결심하고 일본군을 탈출하여 만주(滿)로 망명한다. 만주로 건너간 뒤, 봉천성() 유하현()에 있는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에 임명되어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실시하여 많은 독립군 간부를 양성, 배출하였으며 신흥무관학교의 교성대장()을 역임한다. 1920년말 청산리독립전쟁 이후 중ㆍ소 국경지대인 밀산()에 모인 북로 군정서, 대한독립군, 대한국민회, 의군부, 혈성단 등 독립운동 단체들은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게 되었으며 그는 부사령관에 임명되어 이 대부대를 이끌고 소련령인 "이만시”로 이동한다. 1921년 일르크츠크시에 주둔한 독립군은 다시 고려혁명군을 조직하고 소련정부의 협조를 받아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립하였으며, 그는 교장에 취임하여 독립군 간부급 인재를 양성한다. 그러나 독립군의 이용가치가 줄어들자 소련정부는 약속을 위반하고 고려혁명군의 무장해제를 강요하자 이에 항전하다가 체포되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자유시참변”이다. 그는 임시정부의 강력한 항의로 석방되어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1923년 1월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자 그는 고려혁명군 대표로 이 회의에 참가하였으나 소위 창조론과 개조론 등으로 통일된 의견의 수합이 어려워지자 1924년에 신숙, 김규식 등과 함께 국민위원회()를 구성하고 그는 군사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기도 한다. 1925년 만주로 귀환한 그는 길림주민회(), 의성단(), 광정단(), 통의부() 등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하여 정의부()를 조직하고 군사위원장 겸 사령관에 취임한다. 길림성() 화전현()에 본부를 두고 국내에까지 대원을 파견하여 일제의 각종 기관을 파괴하고 일관헌()을 주살하였으며 무기를 노획하는 등 활발히 활약하는 한편으로 이념()에 입각한 독립운동의 체계화를 위하여 고려혁명당을 창당하고 그 위원에 선출된다. 1928년 2월에는 정의부, 참의부, 국민부의 3부 통합운동을 추진하였으며, 혁신의회()의 군사위원에 선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3부 통합운동이 단체본위와 개인본위 통합론으로 분리되어 실패하게 되자 그는 전민족유일당조직협의회()에 참가한다. 1930년 김좌진암살당하자 동년 7월 그는 한족자치연합회를 모체로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고 한국독립군을 조직하여 총사령에 취임하였으며 한ㆍ중연합군을 조직하여 무장항일 투쟁을 계속한다. 1932년에는 중동철도 연선과 동빈현 등에서 적의 대부대와 조우전이 있었으며, 아성현()전투, 쌍성현()전투, 대전자()전투 등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일제가 만주를 완전히 석권하게 되자 만주에서의 무장항일투쟁이 어렵게 되었으며, 1933년 그는 수십 년간 항전하던 만주를 뒤로하고 산해관()을 넘어 중국본토로 들어갔다.

1933년 10월 그는 임시정부의 명령으로 하남성()에서 중국군관학교 낙양분교()에 한인특별반을 창설하고 총책임자로 취임하여 교성대장에 이범석()ㆍ교관에 오광선(), 조경한() 등을 임명하고 상해(), 남경(), 천진(), 만주(滿) 등지에서 애국청년 90여명을 모집하여 군사훈련을 시켰다. 1934년에는 남경()에서 “대일전선통일동맹”을 결성하였으며, 다음해에는 민족혁명당 창당에 참여하여 군사국위원장에 취임하기도 한다. 1938년에는 장사()에서 임시정부 군무부의 군사학 편수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어 조성환()을 주임위원으로 유동열(), 현익철(), 이복원(), 김학규() 등 위원과 같이 군사학을 정리, 편수한다.

또한 1939년 10월 사천성() 기강()에서 열린 의정원() 정기의회에서 의정원 의원 및 국무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1월에 국무회의에서 군무장()으로 선임되어 입법ㆍ행정ㆍ군사에 대한 제반사항을 처리하는 중책을 맡았다. 이때 광복군 창설을 목표로 조성환()을 단장으로 하는 군사특파단을 조직하여 서안(西)으로 파견하여 활동케하였으며 다음해 2월에는 군무부에서 종래 경영하던 군사학 편수사업을 계속 발전시키기 위하여 군사학 편수위원회 주임위원으로 취임하여 이복원(), 조경한(), 김학규(), 조인제(), 공진원() 등을 위원으로 임명하고 이들은 지휘, 독려하여 군사학을 편수한다. 임시정부에서는 중국 국민정부와 협정을 체결하고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식()을 중경() 가릉빈관()에서 거행하였는데 이때 그는 총사령으로 임명되었으며 참모장 이범석(), 부관장에 황학수() 등이 임명된다. 그는 또한 중국 중앙군 및 주중연합군()과 긴밀한 연락 및 협조를 취하여 항일전을 전개하고 국내 진입 작전을 준비 하던 중, 일본군의 항복으로 광복을 맞이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池靑天] (21세기 정치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형이 수제비에,동동주,파전을 샀다.

 

스타박스에는 사람이 많이 줄를 서서 기다렸다.

 

서시/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上 善 若 水

 

노자 曰!
인생을 ...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무서운 ...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흐르는 물!

그 물의 진리를 배우라는 것 이다.
첫째, 물은 유연하다.

물은 네모진 곳에 담으면 네모진 모양이 되고 세모진 그릇에 담으면 세모진 모양이 된다.

이처럼 물은 어느 상황에서나 본질을 변치 않으면서 순응한다.
둘째, 물은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

물은 평상시에는 ... 골이진 곳을 따라 흐르며 벼 이삭을 키우고 목마른 사슴의 갈증을 풀어준다.

그러나 한번 용트림하면 바위를 부수고 산을 무너뜨린다.
셋째,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은 항상 ...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다가 물이 마침내 도달하는 곳은 드넓은 바다다.
넷째, 물은 남의 더러움을 씻어주면서 남을 더럽힐줄 모른다.
이런고로 ,,,물이 상선약수(上善若水)라!

세상에서 가장 선(善)함이 물이라 했다.

물은 만물을 길러주고 키워주지만 자신의 공을 남과 다투려 하지 않는다(水善利萬物而不爭).

물은 내가 길러주었다고 일일이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물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處衆人之所惡).

그러나 큰 강과 큰 바다가 수많은 개울과 하천의 왕자로 존재하는 것은(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낮은 곳에 있어 겸손하기 때문이다(以其善下之).
가뭄이 들어 세상이 모두 타들어가도 마르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계곡이다.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 계곡의 정신을 노자는 곡신(谷神)이라고 부르며 계곡의 정신은 죽지 않는다(谷神不死)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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