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 남기기

가을의 문턱에 서서(2016.10.22)

털보나그네 2016. 10. 22. 14:46

Wait For Long - Praha

 

 

 

 

 

가을의 문턱에 서서.

 

 

 

 

 

 

 

 

2016.10.22.토요일.

늦게까지 자리에 누워 뒤척이다

일어나야 하루가 시작이지하며 툴툴 털고 일어나 버렸다.

오늘도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가을햇살이 내 허락도 없이 창가로 스며든다.

애초부터 나의 허락따위는 생각지도 않았을거다.

 

공원에 나와 보았다.

나는 나무에게 전해 듣는다,곧 추워질거란걸...

나무들은 곧 추워질거란걸 안다.

바람불고 함박눈도 내린단다.

그래서 슬프고 아파도 보내주어야 한단다.

보내야 할 나의 분신들,

보내는 마지막 길에 꽃단장시켜주고 보낸 단다.

 

그래선지 햇살도 더 따사롭다.

가을햇살이 뼈속까지 스며든다.

정수기 코디아줌마 방문시간에 맞추어 귀가.

끝나면 치과에 한번 더 가봐야 한다.

오늘도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 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문정희는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남.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에 [문정희시집], [새떼], [찔레],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양귀비꽃을 머리에 꽂고], [지금 장미를 따라]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 수상.
*위 시는 [양귀비꽃을 머리에 꽂고](민음사, 2004)에 수록되어 있음.

 

 

 

 

 

 

 

 

 

 

 

 

 

 

 

 



-가을 부근/정일근-

 

 

여름내 열어놓은 뒤란 창문을 닫으려니

열린 창틀에 거미 한 마리 집을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거미에게는 옥수수가 익어가고 호박잎이 무성한

뒤뜰 곁이 명당이었나 봅니다

아직 한낮의 햇살에 더위가 묻어나는 요즘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일이나, 새 집을 마련하는 일도

사람이나 거미나 힘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거미를 쫓아내고 창문을 닫으려다 그냥 돌아서고 맙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여름을 보낸 사람의 마음이 깊어지듯

미물에게도 가을은 예감으로 찾아와

저도 맞는 거처를 찾아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야하다 하면 야한 시를 읽으면서 남녀의 성의 신비가 우주의 비밀을 담고 있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 더하면 이상한 방향으로 갈지도 모르겠어 여기서 그치려 한다. 그런데 왜 시인 임보는 여성의 치마에 대한 상대로 팬티를 골랐을까?


팬티 - 문정희의 「치마」 를 읽다가 
- 임보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고 싶어 한다/문지숙-

 

  

포도주처럼 향기로웠던 내 청춘도 가버리고

모든 것이 스산하게 저물어가는 황혼의 가을이 찾아오면

아주 작은 눈빛에도 갈대는 흔들리고 싶어 한다

이제 일몰의 시각은 점점 다가오고

아무리 체념의 체념을 거듭해도

두렵고 고독 한 것은 혼자만의 일이 아닌 것을 알아도

어딘가에 기대고 싶고, 안기고 싶은,

세월에 주름이 깊어 가면

아주 작은 바람에도 갈대는 흔들리고 싶어 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 미안하다, 정호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