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ward Simoni - El Tren Que Nos Separa
남이섬의 가을.
2014년11월01일.
서울에서 한강을 따라 동쪽으로 63km지점에
가랑잎처럼 청평호수위에 떠 있는 남이섬.
면적 46만 평방미터에 둘레 약 5km에 이른다.
스물여섯에 사나이의 용맹이 꺽인 남이장군
남이장군묘가 있어서 남이섬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1965년부터 수재 민 병도선생의 손끝정성으로
모래뻘 땅콩밭에 수천그루의 나무들이 가꾸어 졌다.
사랑을 들고 껴안고 욕망으로 가득찬 마음을 비우고
색깔없는 삶의 짐들은 어딘가에 벗어둔 채
인간이 자연의 모습으로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태초부터의 평화를 나누워 가는 곳...
가평역에서 버스타고 5분이면 남이섬에 도착한다.
입장료는 대인 10,000원.
배는 금방금방 온다.
이른시간이라 많이 기다리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고 특히 동남아나 중국여행객이 주류를 이룬다.
배를 타고 가면서 배안에서 남이섬과 마주오는 배를 담았다.
배에서 내리면 만나는 입구 '입춘대길문'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강변산책로,단풍나무길,메타세과이어길...로 이어진다.
단풍나무,높은 은행나무,왕적송나무에 넓은 잔듸밭이 있다.
청솔모가 많다,그리고 사람을 그리 무서워하지 않는다.
나도 가슴에 소원을 담고 종을 울려보았다...
자작나무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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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南怡) : 1441(세종 23) ~ 1468(예종 원년)남이 장군은 의령남씨이고 태종의 외손자이며 권남의 사위이다.
1457년(세조 3)에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467년(세조 13)에 이시애의 반란을 토벌하여 1등공신으로 명성을 날렸다.
27세의 나이에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그의 명성을 시기하던 유자광의 참소에 의하여 역적으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 남이 장군의 시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서 없애고
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서 없애리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사나이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이를 것인가.
* 이 시의 3련 '남아이십미평국'을 '남아이십미득국'으로 '평' 을 '득' 으로 고쳐서 남이가 왕이 되고자 했다는 참소를 당함.
노래박물관.
이용료는 38,000원.
가평역까지 자전거도로가 연결되어 있어 가평역까지 걸어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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