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운악산(2014.04.19.)

털보나그네 2014. 4. 19. 23:08

 

Shardad Rohani - Golden Dream

 

 

 

운악산(934.5m)

 

 

 

 

 

 

 

 

 

2014년04월19일.

잿빛하늘.

아파트 정원에 라일락나무에는 꽃이 활짝 피였다.

이문세의 '가로수그늘아래 서면'이란 노래가 떠 오른다.

가사도 잘 모르지만 흥얼거리며 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으로 간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안고 /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여위어 가는 가로수 / 그늘 밑 그향기 더 하는데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오늘은 차시간이 잘 맞아 떨어진다.

청평역에서 내려 앞선 등산객의 뒤를 따르니 터미널에 닿는다.(08시경)

하지만 현등사로 가는 차가 언제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현리행버스가 눈앞에서 떠나려 하고 있다.

현리 터미널 가느냐고 물으니 간다고 한다.

그곳에서 현등사가는 버스 탈수 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면서 탈거냐 말거냐 재촉한다.

다급하게 얼릉 집어탔다.

사람이 제법 많이 탄 시골 버스를 타고 현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현리 시장엔 오늘이 장날인가보다,봄 나물이며 여러가지 물건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시간표에 현등사행버스가 9시10분에 있다고 정류장에 붙어있다.

9분쯤에 1330-4번 버스가 왔다,운전사에게 현등사가냐고 물으니 간다고하여 올라탔다.

자석버스인데 차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운악산 주차장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어디로 가야할 지 잘 모르겠다.

등산로를 물어 현등사방향으로 오른다.(09시30분)

 

 

 

 

 공사중인 현등사.

현등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저멸보궁이 있으며 경기도내 3대 기도처(강화 보문사, 관악산 연주대 응진전, 운악산 현등사) 중의 한곳이다.

 

현등사 삼성각.

삼성각은 옛 산신각자리에 신축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건물이다.  

내부에는 산신ㆍ독성ㆍ칠성을 각각 탱화로 봉안하였는데, 특히 칠성탱은 치성광여래도라 불리며, 현재 경기도문화재자료 제 1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후기에 집중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칠성탱은 바로 이 시대 칠성신앙의 번성을 의미하는데, 현등사 칠성탱은 18세기 이후 작품이지만 그 작품성이 뛰어나다.  

현등사는 지장기도 도량이지만 그 산세가 뛰어나 기도도량으로서 많은 영험을 가지는데, 이 곳 삼성각 기도 역시 영험하다고 그 소문이 나 있다.

 

흰 구름이 일어나는 석산(石山) 운악산 현등사의 창건과 중창 내력에이어 함허 스님과 관련된  중건과 전설이 스님의 부도탑과 석등처럼 나란히 전해 온다.
조선 태종 11년(1411), 함허(涵虛 己和) 스님이 삼각산(三角山) 원통사(圓通寺)에서 오신산(五神山)으로 가기 위해 운악산을 지나다가 길을 잃는다. 홀연 흰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 따라가니 사슴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다. 수풀 속에 오래된 전각과 그 곁에 탑이 있었는데 탑에서 소리가 들리니 보조 국사의 인연처임을 깨닫게 되어 주위 나무를 베어 현등사를 중건하였다.
운악산현등사사적(雲岳山懸燈寺事蹟)」에 보이는 이야기인데 앞서 도선 국사의 중창에서처럼 보조 지눌 스님과의 관계를 부각시키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전설에 따르면 현등사에는 밤마다 들려오는 여인네들의 괴상한 웃음 소리 때문에 스님들이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떠나거나 병들어 죽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마침 함허 스님이 머무르고 계실 때인데 꿈 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이르기를, “이 절터는 음기가 있으므로 항상 습해 있어야 하는데 물이 없어 그 음기가 여인네들의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지금 곧 능선 둘을 넘어 가면 물이 흐를 터이니 그 물을 끌어다 마시고 흐르게 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스님이 곧 능선을 넘어 찾아 나서니 과연 물이 흐르는 곳이 있었다.

스님은 길이가 12자나 되는 나무 수채 60여 개를 연결하여 현등사까지 물을 끌어다 흐르게 하였다.

그 후 산신각을 지어 놓고 기도를 드리니 산신령이 다시 나타나 “이제 이 절을 내가 지켜줄 터이니 다른 곳으로 가서 불법을 전하시오.” 하고는 사라졌다. 그 후 여인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절을 떠나는 스님들도 없어 현등사가 지켜질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현등사에는 그때의 나무 수채 하나와 물을 담아 놓았던 돌확이 남아 있어 옛 이야기가 전혀 허황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함허(涵虛 :1376~1433) 선사는 조선시대의 스님이다. 충주 태생으로 법호는 득통(得通)이고 당호는 함허이다. 일찍이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21세 때 관악산의 상암에서 출가하였다. 이듬해 회암사에 가서 무학(無學) 왕사를 뵙고 법요를 들은 뒤 여러 곳으로 다니다가 다시 회암사로 돌아와 홀로 방에 들어가 수행하여 크게 깨달았다.그 뒤부터 공덕산 대승사, 천마산 관음굴, 불희사에 있으면서 학인을 교도하였고, 자모산 연봉사의 작은 방에 머물며 그 방을 함허당(涵虛堂)이라 이름하고 3년간 부지런히 수도한 뒤 《금강경오가해》를 세 번이나 강설하였다.

 

45세 되던 해에 오대산 영감암에서 꿈에 한 신승(神僧)이 나타나 이름을 기화, 호를 득통으로 지어 주었다고 한다. 월정사에 있을 때 세종 임금이 청하여 대자어찰(大慈御刹)에 4년 동안 머물렀다.

 

그는 무학대사의 법을 계승하여 고려와 조선을 이은 대선사이었다. 여러 저술을 남겼으며, 그 가운데는 정토와 염불에 관한 법어와 글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함허 스님은 한 때 염불향사(念佛香社)를 결성하여 염불에 정진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선과 정토를 겸하여 빛낸 대선지식이었다.

《함허록》에는 스님이 동문 혜봉(惠峰)영가를 위해 설한 법어 가운데 염불향사에 대한 기록이 있다.

스님은 세종 15년(1433) 봉암사에서 입적하였다. 세수 58세, 법랍 38세였다. 비는 봉암사에 있고, 부도는 가평군 현등사에 있다.

 

 

 

 

백년폭포,무우폭포를 거처 현등사에 닿으니  현등사는 한창 공사중에 있다.

출입을 통제하는터라 겉모습만 한참동안 처다만 보다가 발길를 돌려야만 했다.

108계단을 지나 운악산방을 지나 약수한모금 마시고, 함허선사 부고를 지나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절고개폭포와 코끼리바위가 서 있다.

손이 시려울정도로 바람도 불고 기온이 차다.

절고개를 지나 남근석이 보이는 전망대를 지나 정상에 닿았다.

한북정맥길이란 표식이 서 있고 정상석이 있는데 또 정상으로 가는 표시가 서 있다.

지나는 산객에게 물으니 이것은 가평의 동봉이고 눈앞에 보이는 저 곳은 포천의 서봉이란다.

운악산에는 정상이 둘이란 얘긴가?

만경대표지가 엉성하게 서  있고 기암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하산길...

주로 이쪽으로 올라 절고개나 포천쪽으로 넘어가는 코스가 일반적인가 보다.

그런데 나는 거꾸로 코스를 잡아 올라오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오르는 사람들이 미륵바위를 보고 남근석아니냐고 하니,

뒤따라 내려오던 아줌마가 남근석바위는 다른곳에 따로 있다고 알려준다.

병풍바위는 정말 멋진데 가을에 단풍진 모습이 더 멋지겠다...

사연이 있는 눈썹바위를 지나니 이제 편안한 산책길만이 남았다.

연초록숲길,연달래가 피기시작한다.

하산을 완료하니 1시.

베낭에서 버스시간표를 꺼내보니 1시정각차가 있었다.방금 떠난 것 같다.

정류장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보니 1시30분차가 또 있다.

다행이다.그 뒤로는 한시간 간격으로 배차가 되어 있다.

곧 버스가 오고 청평터미널까지 와서 터미널에서 맛있는 막국수한그릇 사 먹고 역으로 갔다.

전광판에 전역을 출발했다는 안내글을 보고 얼릉 뛰여 올랐다.

용산역에서 내려 카메라가게에 가서 카메라수리를 물어보니,

수리비도 만만치 않고, 나중에 재발문제도 안고 있는데 완전한 수리가 어렵단다.

그래 수리하지않고 그냥 집으로 향했다.

dslr은 가격도 비싸고 휴대가 불편하고 미러리스도 만만치 않아 만만한것이 디카인데...

지금껏 사용했던 것도 디카의 한계는 있지만 그럭저럭 쓸만은 했는데...

와이프는 돈없다 반대하고...

 

 

 

동봉:937.5m-서봉:935.5m

 

 

만경대..

雲岳山 萬景臺는 金剛山을 노래하고

현등사 梵鍾소리 솔바람에 날리는데

百年沼 舞雲瀑布에 푸른안개 오르네  (운악산 표지석)

 

만경대(가평)의 표지판에는 좌측으로 부터 국망봉, 귀목봉, 화악산, 명지산, 연인산, 노적봉, 칼봉, 매봉, 깃대봉, 대금산 등이 보인다고 기록.  

특히 국망봉은 궁예가 왕건에게 쫓기어 도망 하던중에 도읍지 철원을 회한에 젖어 바라 보았다는 산.

운악산 비로봉 표지석 이면 엔 함허득통선사 시비

題雲岳山(제운악산)

雲岳山帶懸燈寺(운악산대현등사)  운악산 자락에 현등사

落石飛泉上下聲(락석비천상하성)  위로는 돌 구르고 아래선 물소리라

出自千尋與萬丈(출자천심여만장)  천 년 전부터 뭇 지식인의 발길 이어져

滄溟未到不曾停(창명미도불증정)  밝고 환한 날에도 오고감 멈추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