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을 스치는 향긋한 내음은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다. 이렇게 향이 처음 사람들 곁에 가까이 온 것은 종교의식에서 향을 피우면서부터다. 불교나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의 발상지는 대체로 아열대 지방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종교 행사에는 찌든 옷에서 풍기는 땀 냄새가 가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냄새를 없애주는 수단으로 향 피우기가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향을 피우는 풍습은 6세기 초 중국의 양나라에서 들어왔다. [삼국유사]에 보면 양나라로 사신을 보내면서 향을 가지고 왔는데, 이름도 쓰임새도 몰랐다. 두루 물어보게 하였더니 묵호자가 말했다. ‘이것은 향이란 것입니다. 태우면 강한 향기가 나는데, 신성한 곳까지 두루 미칩니다. 원하는 바를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차츰 향은 부정(不淨)을 없애고 정신을 맑게 함으로써 천지신명과 연결하는 통로라고 생각하여 각종 의식에 빠지지 않았다.
궁궐에서 가장 오래된 700년생 천연기념물 194호 ‘창덕궁 향나무’
700여년을 살아온 궁궐의 최고령 나무
유교가 통치 이념이 된 조선시대에는 조상을 기리는 제사에 향이 빠지지 않았다. 향의 재료로서 우리나라에서는 향나무가 가장 일반적이다. 주변에서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고 향기가 오래 가기 때문이다. 향나무는 태워서 향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발향이라 하여 부인들의 속옷 위에 늘어뜨리는 장신구, 점치는 도구, 염주 알 등에 까지 널리 쓰였다. 그 외에도 나무자체로는 고급 조각재, 가구재, 불상, 관재 등으로 애용되었다. 최근 신라시대에 만든 불상으로 알려진 해인사 비로자나불도 향나무로 만들었다.
오늘날 궁궐의 여러 나무 중 최고령나무는 천연기념물 194호 창덕궁 향나무다. 새로 복원한 봉모당(奉謨堂) 뜰 앞에 서 있었으며, 나이는 약 7백년의 세월을 살아온 것으로 짐작한다. 파란만장한 조선왕조의 영욕을 내내 지켜 본 생명체다. [동궐도]에서도 6개의 받침목이 동서 긴 타원형으로 뻗은 가지들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으로 우리와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창경궁 함인정 옆 화계(花階), 종묘 영녕전 앞 등에 자라는 향나무 고목들이 있다.
향나무는 나무를 잘라야 속에서 향이 나는 나무다. 그러나 왕실에서 사용하는 향은 궁궐에 자라는 향나무에서 바로 조달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제사에 필요한 향은 특별히 멀리서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정조 18년(1794)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은 월송만호 한창국을 시켜서, 울릉도를 조사하고 조정에 보고한 내용에는 ‘자단향(紫檀香) 두 토막을 올려 보냅니다’고 하였다. 여기서의 자단향은 향나무를 말하며 울릉도에서 생산되는 향나무가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다. 2년마다 한번씩 울릉도를 조사하고 지금의 태하리 일대를 일컫는 황토구미(黃土邱味)에서 채취한 황토와 함께 향나무를 조정에 보냈다. 한편 왕릉에 올리는 제사에 필요한 제물로서 향나무나 숯은 향탄산(香炭山) 혹은 향탄소라 하여 왕릉에 딸린 산에서 따로 공급하였다. 향나무가 대량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향나무 숲으로 남아있지는 않으나 융건릉 재실 앞에 자라는 향나무 고목 등이 제사에 쓰였던 향나무의 흔적으로 짐작된다.
![]() [동궐도] 소유제(小酉齋) 앞의 향나무,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이다. |
![]() 융건릉 재실 앞의 향나무 고목, 제향(祭享)에 쓰였던 향나무의 일부로 보인다. |
향을 내는 재료에는 향나무 이외에 침향과 매향 및 자단과 백단이 있다. 세계적으로 최고급 향은 침향(沈香)으로 대표된다. 동남아시아의 아열대 지방이 원산인 침향나무를 베어서 땅속에 묻고 썩혀서 수지(樹脂)만 얻거나 줄기에 상처를 내어 흘러내린 수지를 수집한다. 이 수지를 침향이라 하며 의복에 스며들게 하거나 태워서 향기를 내게 했다. 침향은 귀한 약으로도 이용된다. 그러나 수입품인 침향은 값이 비싸고 귀하여 왕실이나 귀족들만 제한적으로 겨우 쓸 수 있었다. 일반 백성들은 향기뿐만 아니라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침향을 갖고 싶어 했다. 수백 수천 년 동안 보통 향나무를 땅에 묻어두면 침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해안에 향나무를 묻어두는 매향(埋香)을 했다. 미륵사상과도 연계된 이 행사를 하고 매향비를 세운 곳이 전국에 여러 군데 있다. 그러나 매향을 다시 캐내어 향으로 실제로 이용했다는 기록은 찾기 어렵다.
대구 팔공산 자락에 있는 수릉향탄금계(綏陵香炭禁界), 현종의 아버지 묘 수릉에 필요한 향나무와 숯을 공급하는 곳이므로 출입을 금한다고 했다.
자단(紫檀)은 우리 향나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지만, 원래는 아열대 지방에 자라는 로즈우드(rosewood)를 말한다. 목재가 좋아 각종 조각품으로 쓰이면서 고급 향으로도 이용되었다. 백단(白檀, sandalwood) 역시 아열대 지방에 나며 향이 좋으며 조선 초에는 일본이 왕실에 바치는 진상품이었다.
1711년에 그린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 일부, 총석정 정자 옆에 ‘碑香埋’가 보인다.
세계서 가장 오래된 울릉 향나무
2천300년 추정… 높이 4m, 줄기 둘레 3.1m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향나무가 울릉의 관문인 도동항 좌측 흙 한 점,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척박한 절벽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다.
<사진> 여객선을 타고 들어와 울릉도 여객선 터미널에 내리면 오른쪽 절벽 꼭대기에 살고 있는 이 향나무는 산림청 녹색사업단의 측량 결과 2천300살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향나무다. 높이 4m, 줄기 둘레 3.1m이며 경상북도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1985년 발생한 태풍 브랜드의 폭풍에 상부의 주요 줄기는 일부 부러지고 밑둥과 작은 가지만 남아있다.
이 향나무는 울릉도에 사람이 살기 전부터 척박한 암벽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면서 울릉도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바라봐온 울릉도의 상징적인 나무다.
울릉도는 원래 오래된 향나무가 많지만 1900년 초 일본인들의 벌목과 울릉도 선조가 생활을 위해 향과 목 공예품을 만들어 판매 위해 마구 베어 가고 절벽 끝에 몇 그루씩 자라고 있다.
큰 나무와 오래된 나무를 발굴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산림청 녹색사업단이 울릉도를 조사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울릉도 도동항에서 가까운 절벽에 자라는 향나무는 2천~3천 년 생으로 추정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했다.
울릉도 향나무의 무분별한 훼손을 막고자 통구미 향나무자생지를 천연기념품 제48호로 태하동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를 제49호로 보호 지정하고 있다.
울릉/김두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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