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Heavens Caravan / Mehdi
02. Albatrosz /Szebtpeteri Csilla
03. Tiger Eyes / Omar Lopez
04. With You / Ernesto cortazar
05. Last Waltz / Park MinJi
06. Classical Dream / Francis Goya
07. Autumn Slumber / Fariborz Lachini
08. My Heart / Bernward Koch
09. La Vie Est Belle / Andre Rieu
10. A thousand kisses deep / Chris Botti
장성 편백나무숲을 다녀와서...
2013.12.14.
지난 12월8일 산사랑산악회를 통해 장성 편백나무숲길를 다녀왔다.
장성 편백나무숲길은 고 임종국님이 이룩해 놓은 업적의 흔적이였다.
잘 몰랐던 그분의 생애와 발자취를 알아보니 삼나무와 편백나무로 조성된 그 숲길이 새롭게 다가 온다.
임종국(林 種國)
1929~1989.시인,비평가,사학자,경상남도 창녕 출생.
1956년 고려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였다.
시작품<비 碑>(文學藝術,1956.11)와 <자화상 自畵像>(思想界1960.1.)등이 추천되어 시작활동을 하였다.
이 한직(李 漢稷)의 추천으로 발표된 작품<비>는 역사적흐름을 겪고 산 한 생애가 비로 요약됨을 형상적으로 드러내며 유한이 깃든 삶을 연민의 정으로 인식하는 내용이 보인다.
이어 <자화상>에서는 시대적 제한을 암시하는 벽을 설정하여 개인적인 삶의 실현이 고통스러움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기진한 나비'에서 시적자아의 한계를 보이고,'유월의 질풍'에서 1950년대의 역사적 고통을 암시하여,역사적 격류에 개인의 희망이 불확실함을 드러내어 역사의식에 민감한 서정적 감응을 보였다.
1960년대 사화집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저술로<친일문학론 親日文學論>(1966)과 <흘러간 성좌(星座>(1966)가 있다.
<친일문학론>에서는 일제치하의 우리 나라 작가,시인,비평가들 중에서 친일 작품을 발표하였던 인물들과 그 작품을 비판적으로 거론하였다.여기에 수록된 작가들은 자발적인 친일이기보다는 억압에 의한 강제적 친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어<흘러간 성좌>에서는 한용운(韓龍雲),안창호(安昌浩),이상(李箱),권덕규(權悳奎),윤심덕(尹心悳),신채호(申采浩),황석우(黃錫禹),홍난파(洪蘭坡)등 일제치하의 문학예술가 및 사상가들을 전기적 측면에서 다루웠다,
특히,일제의 가혹한 억압에도 굴함이 없이 사상적 일괄성을 견지하였던 점을 주요하게 드러내어 민족의식을 주축으로 하여 저술하였다.
이 책의 서문에서 조지훈(趙芝薰)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업적을 낸 인물들 가운데 '기이(奇異)한 행장(行狀)'이 나타나있음을 말하면서 그러한 '기행(奇行)'이 역사적,사회적 산물임을 일깨우고 있다.
그 뒤 민중사학의 입장에서 연구를 지속하다가 그 업적을 세상에 발표하지 못한채 작고하였다.
친일파 연구의 초석을 세운 임종국선생은 12,000여명의 친일인사의 관리 카드를 만들어 지금의 친일연구에 큰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
해방60년이 지난 지금,우린 아직까지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는 커녕 그 청산대상들이 권력의 중심에서 역사를 농단하는 꼴을 지켜봐야 했다.2차 세계대전 후 유럽각국의 엄혹한 나치잔재 청산과는 너무나 비교가 된다.
물론 이들 유럽 각국은 혹 있을 과거사에 대해서도 시효를 인정하지않고 여전히 응징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관련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했으며, 그나마 마련된 법안조차 정치적 이해득실에 누더기가 되었다.또한 법제화 이후 조사결과에 따른 정치적 논쟁이 우리사회를 한차례 휘몰아 칠 것이란 예상도 있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역사적 사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일제 청산을 위한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법제화에 성공한 것은 바로 한 사람의 의지에서 비롯 한다.
바로 임 종국 선생이다.
비록 선생이 살아생전에 한 일은 아니지만 선생의 친일 연구업적이 단초가 되어 많은 후학들이 친일 연구에 발 벗고 나서는 계기가 되었고,또 그 뜻이 모여 이렇게 친일 청산의 기회로 만든것이다.
일찍이 문학도이고자 했던 선생은 대학시절(고려대학교)시인 이상과 닮은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한다.
사실 선생은 고시 공부를 통해 판검사가 되고자 했으나 지칠대로 지친 자신의 몸과 정신에서 좌절과 절망에 이르렀고 결국 고시를 포기하면서 시인 이상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때 펴낸<이상전집>은 문단의 주목을 받은 것은 물론 선생이 곳곳을 다니며 자료를 모으고,심지어 이상이 일본에서 보낸 편지 유족들에게 입수해 펴낸 역작이다.
문학도의 길를 걷게 된 선생은 <문학예술>에 <비碑>로 등단하게 된다.
시인으로서의 선생은 10여편의 시를 남겼으나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말년에 친일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친일파총사>(총10권)를 공동집필하게 되는데,이 책은 선생의 지병이였던 폐기종으로 펜을 놓으면서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이 남긴 연구업적은 고스란히 후학들에게 물려져 민족문제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고,친일 청산 법제화가 이루워지면서 고독한 연구가 아닌 국가적과업이 되었다.
이제 우리에겐 "벼락이 떨어져도 내 서재를 떠날 구 없다"던 선생의 말처럼 현재 진행형인 친일 청산의 의지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굳건히 지켜나가는 일만 남았다.
춘원 임종국공 조림공적 비문.
여기 울창한 산림은 선각자 춘원 임종국공의 집념과 노력으로 이룩된 것이다. 옛부터 치산치수는 치국의 요체라 했는데, 우리 국토는 일제와 6·25를 거치면서 심하게 황폐되어 있었다.
공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오직 산을 푸르게 하는 것만이 나라를 되살리는 길이라 믿고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평생을 바쳐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고 가꾸어 곳곳에 훌륭한 산림을 조성했을 뿐만 아니라, 인공조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켜 국토녹화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으니,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조림왕으로 추앙 받고 있다.
공은 1915년 1월 19일 전라남도 순창군 복여면 조동에서 나주 임씨 영규공과 안동 김씨의 장남으로 태어나 25세 때인 1940년에 장성읍 장재마을로 이거 해왔다. 양잠과 특용작물재배로 소득을 올리다가, 광복 후 양묘업에 종사하면서 황폐일로의 임야를 걱정하던 중 1956년부터 조림에 착수하였다.
연차적으로 북일면 문암리 서삼면 모암리 북하면 월성리 등지의 임야 수100헥타를 매입하고 묘목을 양육하여 본격적으로 대단위조림을 실시하였는데, 당시 생계도 어려웠던 시대에 임업에 투자하는 것은 세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매년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묘목을 식재하고 수목가꾸기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한편 효율적 관리를 위해 보호원을 배치하고 임도를 개설하니 예상 밖의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어 결국 전답과 주택까지 처분하고도 많은 채무를 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홍수로 묘포장이 유실되는가하면 가뭄과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기도 했는데, 1968년 한발 때는 인부를 구할 수가 없어서 온 가족이 물지게를 지고 염천의 비탈길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한 그루의 나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니 인근 주민들이 야간에 햇불을 들고 나와 도와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역경들을 수없이 겪었으나 날로 자라는 나무를 보면서 보람과 용기를 얻었으며 더욱이 조림목이 목재감으로 변해가자 임업도 경제성이 있음을 인식한 많은 산주들이 잇달아 조림에 착수하였다. 공은 이들에게 양질의 묘목을 공급하고 기술지도를 하여 조림의 선풍을 전국으로 확산시킴으로써 국토녹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공이 공들여 가꾸어 놓은 이 산림은 식재율 관리상태 경제성 등이 모두 전국 제일로 평가되고 있으며, 한국산림정책의 성공사례로 지목되어 공무원 학생들에게 견습림으로 활용됨은 물론 호주 일본 독일 등지에서 시찰단이 방문하여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부에서도 공의 공로를 인정하여 1970년 철탑산업훈장 1972년 5·16민족상을 수여하였다.
춘원 임종국공은 1987년 7월 27일 향년 72세로 타계하였으며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나무들은 이제 모두 남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 이 숲에 와보면 누구나 공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공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군민은 공의 높은 뜻과 큰 공적을 후세에 전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
장성문화원장 이병식 짓고 광산 이병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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