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충주 조카네집집뜨리(2013.05.11~12.)

털보나그네 2013. 5. 12. 20:34

 

 

 

Alex Fox  / Those Were The Days

 

 

 

 

충주 조카네집 집뜨리.

 

 

2013.05.11~12.

충주에 사는 조카가 작년에 아파트를 팔고 개인주택을 사서 리모델링을 하고 있으니 올 봄에 시간을 맞춰서 놀러 오라고 했는데, 차일피일하다가 날짜를 잡은것이 5월11일12일이였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안양에서 9시에 집합하기로 하여 누님과 우리부부,안양형님부부,진영,춘영부부 이렇게 8명이 2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출발.

집이 있는 곳은 칠금동이다.

 

집에 도착하여 집구경을 하고 점심을 먹었다.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로 삼겹살를 푸집하게 먹고 월악산 송계계곡을 지나 만수계곡으로 들어가 취나물과 고사리를 채취.

산속을 헤메어 다니면서 채취한 고사리와 취나물,많지는 않지만 사춘들과 함께 이런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즐거웠다.

계곡에 모여 앉아 쉬면서 한바탕 웃음꽃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이동한 곳은 미륵사지.

입구에서 표고버섯을 한봉다리씩 사서 가방에 넣고 저녘에 먹을 송구버섯도 한 봉다리 샀다.

집으로 오는 길에 조카의 차 타이어가 빵구가 나는 일이 생겨 예비타이어로 교체하는 일이 발생.

안양형님과 성서방이 차와 관련된 일를 하니 타이어교체하는 일은 일도 아니였다.

 

원래는 돌아오는 길에 수안보에 들려 온천을 하려했는데 조카가 오늘 쓸려고 할인티켓을 모아 났는데 집에서 안가져 왔단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채취한 나물를 다듬고 저녘을 준비하여 술과함께 고기와 웰빙식을 맘껏 먹는다.

그리고 노래방.

늦은 시간까지 재밋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우리일행은 집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나갔다.

가보니 몇해전에 충주마라톤 집결지였다.

그때는 공사중이였는데 지금은 공사가 모두 끝나고 이름을 세계무술공원으로 붙혀져 있었다.

공원이 상당히 크고 좋다.

구경을 하며 돌아 다니다보니 모두 다 나왔다.

충주는 사람살기 참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든다.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수안보온천으로 갔다.

조선호텔 할인티켓이 있단다.

모두 온천을 즐기고 나와 다시 충주시내에 있는 송어회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가보니 지난번 조카와 함께 왔던 집이다.

송어회도 맛있었지만 매운탕이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일행은 조카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고속도로를 올라탔다.

여주휴계소에서 몰려오는 졸음을 떨처버리고 안양까지 밀리지않고 순탄하게 잘 왔다.

 

 

 

 

 

 

 

 

 

 

 

 

 

 

 

 

 

 

 

 

 

 

 

 

 

 

 

 

 

 

 

 

 

 

 

 

 

 

 

 

 

 

 

 

 

 

 

 

 

 

 

 

 

* 마의태자가 창건한 절터, 중원 미륵사지 *

미륵사지는 사적 317호로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남죽향으로 펼쳐져 있다. 미륵리 사지(彌勒里寺址)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꿈에 관세음보살로부터 석불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하늘재를 넘자마자 지세를 확인하고는 지금의 미륵리에 석불을 세워 절을 만들었다고 한다.

 

충주 미륵사지는 청주대학에서 1977년에서 1978년의 제2차 발굴조사를 통해 절의 명칭이 미륵대원사이었음이 밝혔고, 1980년에 이화여대에서 3차발굴을 통해 여기에 일찌기 석굴사원이 경영되다가 소실되어 현재의 석조물만 남았다는 것을 밝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아달라이사금 3년(156) 기록에 의하면 “4월에 계립령 길을 열었다”라고 되어 있다. 이를 통해 신라가 백제, 고구려와 교류하게 되었으며, 장기적으로는 한강을 통해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하게 된다.

 

* 미륵사지의 다양한 유물과 의의 *

미륵사지는 14,000평 정도의 직사각형 절터에 일탑일금당이 배치되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미륵리사지 내에는 보물 95호인 5층 석탑과 96호인 석불입상이 있고 지방 유형문화재 19호인 석등과 33호인 3층석탑이 있다. 중원 미륵리 사지는 석조(石造)와 목구조(木構造)를 합성시킨 석굴사원(石窟寺院) 터로 석굴을 금당으로 삼은 북향의 특이한 형식을 취한 유일한 유적이다. 또한 미륵사지의 석불은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이며 석불이 있는 석굴 방형의 주실은 가로 9.8m, 세로 10.75m의 넓이이며 높이 6m의 석축을 큰 무사석으로 쌓아 올렸고 그 가운데 불상을 봉안하였다. 석축 위에는 지금은 없어진 목조 건물이 있었으며 전당은 목조로 된 반축조석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