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2010년10월3일.
지난 8월15일 광복절 기념행사와 함께 다시 개문한 광화문.
올해는 경술국치100년이 되는해이고 광복 65주년이 되는해이다.
4년의 공사끝에 광화문은 다시 고종 당시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경복궁도 옛모습 그대로를 복원하기 위해 지금도 진행중이다.
사실,
연합국의 승전과 일제의 패망으로 한국이 해방되어 광복을 맞이하였는데...
(해방:구속이나 억압된 상태에서 벗어남, 광복:빼앗겼던 주권을 도로 찾음.)
일본의 항복은 8월15일이었지만 일본의 식민지배가 공식적으로 종지부를 찍은 날은 9월9일이다.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재조선 미군사령관 하지중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38도선 남쪽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과 시정권을 이양하는 항복문서애 서명 하면서 질곡의 식민통치의 종언을 고하고부터 진정한 해방을 맞았고 이후 3년에 걸친 미군정이 이여졌다.
이후 어수선한 국내사정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항해하는 돗단배가 되여 흐르면서 우여곡절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이렇듯 광화문은 험난했던 우리 민족사와 운명을 같이 해 왔다.
광화문은 멀리 조선의 법궁(임금이 정사를 돌보는 궁)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조선 건국 직후인 1395년 건립됐다.
처음의 이름은 사정문(四正門)이었으나 1425년(세종7년) '임금의 큰 덕이 온나라를 비춘다'는 뜻의 광화문(光化門)으로 이름을 바꾸웠다.
제갈량이 선조의 남긴 덕을 빛낸다(光以先之遺德)라고 한 글귀에서 유래한 것이다.
광화문은 임진왜란때 선조가 왜군을 피해 한양을 버리고 북쪽으로 피신했을때 일부 백성이 경복궁에 불를 질렀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이후 여러차례 벌어진 조선.명 연합군과 왜군과의 전투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임진이후 270년동안 창덕궁등 다른 궁에서 정사를 보았다.
1865년(고종2년) 흥선대원군은 외척의 세도정치로 추락한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위해 경복궁 중건에 착수했다.
1926년 일제는 경복궁내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광화문을 헐어 없애려 했지만 여론의 반대로 경복궁 동쪽 건훈문옆에 옮겨지었다.
6.25때 목조 문후가 화재로 소실.
1995년 김영삼정부는 일제의 총독부청사 해체와 경복궁 복원 계획도 발표하면서 광화문 복원계획을 포함시켰다.
2006년 12월 복원공사가 시작된지 4년만에 15일 다시 개문한 광화문은 그동안 훼손됐던 것을 고증을 거처 고종당시(1865년)의 옛 모습 그대로 되살렸다는데 의의가 있다.
새 광화문은 화강석기단부에 소나무중 가장 튼튼한 금강송으로 누각을 지어 건물 구조를 옛 원형대로 복원했고, 위치도 바로 잡았다.현판도 고종 당시의 한문현판으로 복원했다.
또 옛 모습대로 광화문에서 홍례문까지 어도(御道)를 새로 깔고 동서 수문장청등 부속 건물과 용성문등을 새로 지었다.
궁궐을 둘러 싼 궁장도 복원했다.
광화문앞에 설치하는 섬돌인 월대를 복원하고 화재를 막아주는 상상의 동물인 해태 조각상도 설치했다.
※중심축복원.
조선시대 광화문은 관악산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1926년 경복궁에 조선총독부청사를 지으면서 청사가 남산의 조선신궁을 향하도록 만들었다.1968년 지어진 콘크리트 광화문도 철거되기 전의 구 중앙청(조선총독부 청사) 축에 맞추느라 북쪽으로 11.2m,동쪽으로 13.5m 비틀어지고 각도도 경복궁 중심축을 기준으로 3.75도 틀어진 상태였다.
2010년10월3일 개천절날.
※목조 누각
강원 삼척 등에서 난 금강송으로 지은 새 광화문 누각은 콘크리트 광화문에 비해 구석구서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누각을 받치고 있는 석축가운데 쓸만한 거은 되살렸고 부족한 부분은 고종때 중건당시 썼던 인왕산 돌과 석질이 유사한 경기 포천산 돌을 사용했다.
※한문현판.
콘크리트 광화문에는 박정희 저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새 광화문에는 고종 당시 경복궁 중건 공사 감독관이었던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현판 글씨를 국립중앙박무관 등에 남아 있는 옛 광화문 유리원판 사진을 토대로 디지털로 복원해 걸었다.
소나무에 중요무형문화재 106호 오옥진씨가 글씨를 새겼다.
※월대.
월대는 궁궐의 위엄을 높이기위해 길보다 1m가량 높게 설치하였으며 길이는 52m나 되었지만 복원된 지금의 월대는 초라하기 형편없었다.기왕이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으면 하는 소견이다.
※어도.
광화문에서 홍례문과 근정전을 지나 임금이 정사를 보는 정전인 근정전에 이르는 임금만이 다닐 수 잇는 어도는 그 길이가 100m에 이른다.박석을 깔아 복원했다.
Tanya Lubimenko가 Origen 이라는 이름으로 2002년 제작한
"AVE MARIA" 앨범을 제작. 우울한 듯 하면서도 매우 낭만적인
클래시컬한 뉴에이지 음악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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