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

털보나그네 2010. 10. 7. 23:25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

2010년10월3일.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는 6.1m이다.

원래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 있었으나, 국권침탈 직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반환되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8각 원당()이라는 기본형에서 벗어나 평면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기단 구조는 7층을 헤아리는 석재() 각부에 조식()이 가득 새겨져 있다.

지대석()이 매우 넓고 층층의 높이와 넓이에 변화를 주고 있다. 탑신에는 전후면에 문비형()과 좌우에 페르시아풍의 격자창을 조각하고 다시 영락()으로 장식하였다. 옥개()는 천개형()으로 장막을 드리우고 옥리()에 해당하는 위치에 불()·보살·봉황 등의 조각이 복잡하다. 상륜부()도 앙화·복발()·보개()·보주()가 층층이 올려져 있다.

 

일제시대에 약탈당해 오사카까지 갔다가 반환이 되어 경복궁뜰에 세워져 있다.

6.25전쟁때 포탄에 맞아 거의 산산조각이 났었다는데 강력접착제와 시멘트로 원모습을 복원하였으나 원래 원주에 있는 법천사지터에는 부도탑을 비롯하여 화려하고 섬세한 석조각편들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 최대한 원 모습을 찾아 세우는 것이 더 좋지않을까?

 

기단 끝에 네 귀퉁이에 용의 발톱양식의 조각재가 땅을 움켜지듯 새겨져있고 그 위에 4마리의 돌사자가 있었다고 하나 안타깝게도 분실했다고 한다.

 

지광국사 (984~1067)

지광국사 해린(海麟)의 속성(俗姓)은 원씨(元氏), 자(字)는 거룡(巨龍), 아명(兒名)은 수몽(水夢)으로 원주(原州) 출신이다.
984년(성종 3)에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불교에 뜻이 깊어 법천사(法泉寺) 관웅(寬雄) 밑에서 수학(受學)하였고, 관웅이 개경(開京)으로 감에 따라 준광(俊光) 밑에서 삭발수도하였다. 해린이란 법명(法名)은 관웅이 붙여준 것이다.
999년(목종 2) 16세에 용흥사(龍興寺) 관단(官檀)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고, 1005년(목종 8) 왕륜사(王輪寺) 대선장(大選場)에서 담경(談經) 시험을 보았는데, 그 뜻이 심오하고 법문(法文)도 출중하여 왕이 대덕(大德)이라는 법계(法階)를 내렸다.

1010년(현종 1) 법천사로 돌아가는 길에 도강(都講)인 진조(眞肇)를 만나 역산법(曆算法)을 배웠고, 1014년(현종 5)에 대사(大師)가되었다. 1021년(현종 12) 개경 중흥사(重興寺)에서 설법하였는데, 논리·문장력·음운학(音韻學)의 실력이 대단하였다. 1021∼1030년사이에 중대사(重大師)가 되었고, 덕종(德宗) 연간(1031∼1034)에 삼중대사(三重大師) 수좌(首座)가 되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강의하였는데, 왕의 우대가 각별하였다. 1045년(정종 11)에 승통(僧統)이 되었고, 문종(文宗)이 즉위하자 궁궐(宮闕)로 초빙되어 유심(唯心)의 묘의(妙義)를 강의하였다. 1054년(문종 8) 법상종의 총본산이었던 현화사(玄化寺)에 이석(移錫)하여 보수공사를 지휘하였고, 경전(經典)도 판각(板刻)하였다. 1056년(문종 10) 왕사(王師)가 되었고, 다음해에 국사(國師)가 되었다. 1059년(문종 13) 내전(內殿)에서 백고좌회(百高座會)의 제일설법주(第一說法主)가 되었다.

1067년(문종 21)에 법천사로 돌아와 얼마 안 있어 입적하였다. 명봉산(鳴鳳山) 법천사 동쪽에서 다비(茶毗)하였는데, 문종이 깊이애도하여 지광(智光)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리고 원주창고에 있던 양곡으로 경비에 충당토록 하였다. 해린의 탑비는 1085년(선종 2)소현(韶顯)의 주관아래 세워졌는데, 제자로는 현화사(玄化寺)의 소현(韶顯)을 비롯하여 문종의 아들인 도생승통(道生僧統) 석규(釋窺), 수좌(首座)는 경현(慶玄) 등 1,370여명이 있다. 해린은 유학(儒學)과 노장(老莊), 역산(曆算)도 익혔으며 박학하고 문장도 뛰어났다. 그가 고려 불교계에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시기는 73세에 왕사가 되어 84세로 법천사로 하산할 때까지로, 이후 법상종은 현종(顯宗)대에 현화사가 창건됨으로써 전성기를 맞게 된다. 즉 해린은 고려 법상종 중흥의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사상에대해서 그가 강의한 것으로 화엄경에 나오는 유심묘의(唯心妙義)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법상종과 함께 당시 불교계에서 중요시되는 경전을 망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화사를 보수하고 경판(經板)을 판각하는 데 총지휘를 하였음을 볼 때 당시 귀족 불교계를 총괄하고 있었다.

 

 

    



 

 

1: 눈물속의 그대

2: 민들레 꽃길

3: 한 오백년

4: 아름다운 이별

5: 당신이 날 두고 떠날때


6: 여행의 길

7: 나그네의 눈길

8: 인생의 눈물

9: 꿈속의 사랑

10: 만행의 길


11: 정선 아리랑

12: 미 상

13: song of ocar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