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족’ -김명인(1946~)
취중에 누구에겐가 꼭 실수한 것만 같다는 생각이
술 깬 다음날을 하루 종일 우울하게 한다.
실족이 잦아서
이슬로 가려는 술의 일생을 붙들고 자꾸만
썩은 웅덩이 근처로 넘어지지만
그것도 병이라면 대식으로 이 병을 키웠다고
시궁 냄새로 불거진 내 몸의 시화호에
아침부터 아내가 몇 드럼째 잔소릴 쏟아 붓는다.
아니라도 밤새도록 가둬놓은 하수 때문인지,
제방 부근까지 오물 부글부글 끓어 넘쳐서
얼른 수문부터 열어야 했지만
폐수와 섞일 때마다 물이 가 닿고 싶은 바다라면
최초의 그 물빛 탓일까,
그쪽 푸르름이 조갈 한나절을 시퍼렇게 물들인다.
향기가 맑아서 바다를 건넌다는
그런 천리향이라면 지천으로 퍼뜨리려고
한 아름 박하를 안은 채 나도 동해에나 부려지고 싶지만
누가 내 삶의 근거를 이내 들춰낼 것 같아
세우지 못한 면목이나 부표 대신 허파 안쪽에
헌 신문지 쪼가리나 부레 붙이고
졸음과 매연을 끌고 밤 이슥하도록
내 하루치의 시화호 헤엄쳐 건너가고 있다.
술 깬 다음날은 잘 돌아가지 않는 컴퓨터 마냥 하루종일 ‘자아조각 모음’을 실시한다. 창으로 들어온 햇볕이 뜨뜻하게 이불 끝을 적시는 중천인데, 한사코 이불을 붙잡고 떼쓰는 어린애 꼴이라니. 선비의 품격과 탁월한 시적 성취를 이룬 중견시인으로 평가받는 김명인 시인도 나처럼 대취한 다음날 죄의식에 시달린다니 신기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술자리에서의 ‘실족’은 “이슬로 가려는 술의 일생”에 대한 열렬한 예술가-탕아의 귀향의지이며, 그 역설이다. 술자리의 끝이 썩은 웅덩이나 시화호가 되고 말지만, 시인이 가고 싶어하는 곳은 언제나 최초의 물빛, 시원의 푸름이기에. 시인의 아내들이여, 다음날 조갈 한나절을 시퍼렇게 물들이는 시인의 실족을 나무라지만 말고 부디 찬양하시라. <박형준·시인>
취중에 누구에겐가 꼭 실수한 것만 같다는 생각이
술 깬 다음날을 하루 종일 우울하게 한다.
실족이 잦아서
이슬로 가려는 술의 일생을 붙들고 자꾸만
썩은 웅덩이 근처로 넘어지지만
그것도 병이라면 대식으로 이 병을 키웠다고
시궁 냄새로 불거진 내 몸의 시화호에
아침부터 아내가 몇 드럼째 잔소릴 쏟아 붓는다.
아니라도 밤새도록 가둬놓은 하수 때문인지,
제방 부근까지 오물 부글부글 끓어 넘쳐서
얼른 수문부터 열어야 했지만
폐수와 섞일 때마다 물이 가 닿고 싶은 바다라면
최초의 그 물빛 탓일까,
그쪽 푸르름이 조갈 한나절을 시퍼렇게 물들인다.
향기가 맑아서 바다를 건넌다는
그런 천리향이라면 지천으로 퍼뜨리려고
한 아름 박하를 안은 채 나도 동해에나 부려지고 싶지만
누가 내 삶의 근거를 이내 들춰낼 것 같아
세우지 못한 면목이나 부표 대신 허파 안쪽에
헌 신문지 쪼가리나 부레 붙이고
졸음과 매연을 끌고 밤 이슥하도록
내 하루치의 시화호 헤엄쳐 건너가고 있다.
술 깬 다음날은 잘 돌아가지 않는 컴퓨터 마냥 하루종일 ‘자아조각 모음’을 실시한다. 창으로 들어온 햇볕이 뜨뜻하게 이불 끝을 적시는 중천인데, 한사코 이불을 붙잡고 떼쓰는 어린애 꼴이라니. 선비의 품격과 탁월한 시적 성취를 이룬 중견시인으로 평가받는 김명인 시인도 나처럼 대취한 다음날 죄의식에 시달린다니 신기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술자리에서의 ‘실족’은 “이슬로 가려는 술의 일생”에 대한 열렬한 예술가-탕아의 귀향의지이며, 그 역설이다. 술자리의 끝이 썩은 웅덩이나 시화호가 되고 말지만, 시인이 가고 싶어하는 곳은 언제나 최초의 물빛, 시원의 푸름이기에. 시인의 아내들이여, 다음날 조갈 한나절을 시퍼렇게 물들이는 시인의 실족을 나무라지만 말고 부디 찬양하시라. <박형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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