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도(牧民心道)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과 그의 형제(약전, 약종)가 조안면 본가에서 집뒤 능선을 따라 학문(文)의 도를 밝히며(喆)걷던 산길를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본 따 '백성을 생각하며 걸어 보라'는 뜻으로 '목민심도'라 이름 지었다.
다산능선을 비롯하여 적갑산과 갑산, 그리고 운길산을 잇는 한반도 모양의 산길를 종주하는 코스를 말한다.
코스 : 운길산역~조개울마을~견우봉~예빈산(직녀봉,590m)~율리봉(585m)~예봉산(683m)~철문봉(630m)~적갑산(560m)~도곡리-도곡리버스종점~꼭지봉(갖무봉)~비봉(조조봉)~두봉(가마바위)~갑산(549.3m)~제공안산(386m)~큰명산(379m)~신선봉~고래산~제공안산~세재고개~약수터~운길산(610m)~절상봉(513m)~수종사~운길산역(약42km)
예봉산은 경의중앙선이 전철화되면서 접근성이 더없이 좋아졌다. 팔당역에서 하차하여 역 앞 길, 즉 옛 6번 경강국도를 건너면 양수리, 양평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한 세대 전 우리의 길을 만난다. 중년이 된 세대들에게는 팔당, 양수리, 양평으로 이어지는 이 길이 나들이 길이며 설악산과 동해로 가는 낭만의 길, 고행의 길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관동대로(평해로)였다.
천주교묘지는 예빈산 남쪽 기슭 양지바른 곳 대부분을 점하고 있다.
묘역 아래 강가와 좌측 마을은 조안면 능내리 봉안마을이다. 오래된 마을로 겸재의 독백탄도(獨柏灘圖)에도 족자섬 뒤로 이 마을을 그려 놓았다. 그 아래로는 다산 선생의 생가 마을 마재가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에 옛 봉안역(奉安驛)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 시대 길을 떠나면 민간은 객주집(주막)에 머물었고, 관원은 역참(驛站)에서 말 먹이고 쉬며 원(院)에서 잠을 잤다. 우리가 잘 아는 청파역, 구파발, 이태원, 퇴계원 이런 지명은 모두 역원(驛院) 체계에서 비롯한 지명이다.
우선 예빈산이란 이름이 붙게 한 조선 시대 예빈시(禮賓寺)라는 관아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시대 육조(六曹) 이외의 관아로서 6시 7감(六寺七監)이 있었다. 6시(寺)는 태상시(太常寺), 종부시(宗簿寺), 위위시(衛慰寺), 사복시(司僕寺), 예빈시(禮賓寺), 전농시(典農寺)이고, 7감(監)은 태부감(太府監), 소부감(小府監), 선공감(繕工監), 사재감(司宰監), 군기감(軍器監), 사천감(司天監), 태의감(太醫監)을 말한다.
그중, 예빈시는 사신, 종친 등 손님 맞이와 궁중연회를 책임진 부서였다. 출근하는 의정부 삼정승 등의 식사도 책임진 부서였다. 그러다 보니 예빈시는 의정부 옆에 자리잡았다. 예빈시는 땔감이 많이 필요했다. 이런 예빈시의 땔감 공급처(시장: 柴場)가 바로 이 산이었으니 자연히 그 이름도 예빈산이 되었다. 참고로 강 건너 검단산은 군기시(軍器寺)의 시장(柴場)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조선 말기가 되면서 예빈산의 큰 봉우리가 슬그머니 예봉(禮奉)으로 기록되더니 일제강점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나 조선지형도 등에는 아예 예봉산(禮峰山)으로 독립하여 버렸다. 아쉬운 것은 해방 후에 일제의 자료가 여과없이 그대로 대한민국 지도로 굳어지니 이 지역 산의 주산(主山)은 예봉산(禮峰山, 683m), 곁다리 산은 예빈산(禮賓山, 590m)이 되었다. 더욱 이상한 일은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에 의해 그나마 예빈산이라는 이름도 주봉은 직녀봉, 작은 봉은 견우봉 표지판이 점령해 버리니 아아, 예빈산 산신령님은 아연실색(啞然失色)을 하고 계실 것이다. 이렇게 예빈산 신령님은 안방을 내어주고 건넌방 신세가 된 후 이제는 행랑채 신세가 되었다.
산(山)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가깝고 먼 곳이 같지 않네
-다산 정약용
예봉산 정상에는 2019년 강우레이더관측소를 설치했다. 수도 서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강 유역의 강우량을 좀더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정약전 약종 약용 형제가 조안면 능내리 생가 여유당(與猶堂)에서 예봉산 능선을 따라 철문봉까지 와서 학문과 세상을 논했다고 한다. 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고 해서 철문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내용이다. 정약용 형제들이 여유당에서 철문봉까지 올랐다면, 여유당 뒤쪽 능선을 따라 지금의 예빈산을 넘어 율리봉과 예봉산 정상을 거쳐 철문봉에 이르렀을 것이다. 산꾼들은 그래서 이 능선을 ‘다산 능선’이라고 부른다.
2019년엔 철문봉 인근 능선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이 있었다.“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60여 년 전 선배 전우들이 목숨을 걸고 오르내린 전투의 현장입니다-국방부, 수도기계화 보병사단”이라는 문구의 안내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2022년01월30일 일요일.
코스:팔당역-견우봉-예빈산(직녀봉)-율리봉-예봉산-철문봉-활공장-적갑산-도곡리-도곡리버스종점-꼭지봉-비봉-두봉-갑산-새재고개-약수터-운길산-수종사-운길산역
거리: 22.94km
시간: 8시간40분
기온: -10℃/4.0℃
문득 지난번 예봉산-운길산 산행을 하면서 보았던 목민심도와 천마지맥길이 생각이 났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만만치 않다.
둘다 27km가 넘는다
더구나 목민심도길은 한반도모양으로 행적이 그려지는데 제대로 한다면 41km나 된다,
생각끝에 목민심도를 약식으로 체력과 시간이 허락되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갑산에서 제공안산,큰명산코스가 명확하지않고 그림이 이상하다.
신선봉과 고래산을 잇는 코스가 맞는 것 같은데 거리도 멀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쉽지않을 것 같다.
아침에 6시40분에 집에서 나와 버스타고,부천에서 07시10경에 전철타고 용산역에 7시45분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팔당역인데 덕소행이 온단다.
패스하니 바로 춘천행 itx열차가 들어왔다.
용문행은 08시3분에 있다.
매점에서 치즈토스트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08시03분에 용문행전철를 탔다.
서빙고역에서 신호대기로 한참을 정차 하다가 간다.
다른전철선은 히터도 빵빵하게 틀어주는데 경인중앙선은 싸늘하여 눈을 감아도 잠이 안온다.
또 청량리역에서 한참을 서다가 출발한다.
팔당역에 도착하니 09시10분정도 되었다.
등산로가 잘 안보인다.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견우봉은 사람이 잘 안다녀 낙엽이 쌓여 잘 찾아가야 할거란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그렇치 않았다.
초입에서 공사구간이 있어서 조금 헷갈렸던 것 밖에 없다.
초입부터 급경사다.
그리고 급경사는 견우봉까지 이어진다.
오르는 동안 새가 반겨주고 나무가 반겨주고 아침 햇살이 반겨준다.
나무뿌리가 바위돌과 함께 경사진 오름길에 발판이 되어주어 오름길를 도와준다.
가파른 오름길을 덕분에 덜 힘들게 올라 올 수 있었다.
사람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예빈산에서 남녀등산객을 만나고, 조금 더 가다가 노부부를 마주친다.
역시 예봉산에는 사람들이 많다.
연무인지,미세먼지인지 시계가 좋지않다.
철문봉을 지나 활공장에 도착하니 한참, 활공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한사람이 뜨려다가 다시 갈아앉는다.
다시 시도하여 하늘로 날아간다.
활공장을 지나가면서 한번도 보지못했던 모습을 오늘 구경한다.
적갑산에서 도심역방향으로 가는데 3.8km정도를 계속 하산모드로 간다.
그리고 어룡마을에 도착하여 도로변을 걸어서 버스가 있는 종점까지 갔다.
1시20분, 등로를 찾아보니 입간판뒤로 길이 있었다.
조금 올라가니 바로 이정표가 나온다.
철탑을 두개나 지난다.
그리고 소나무 숲이 이어진다.
1시40분 허기도 지고 다리에 힘도 들고 하여 따뜻한 양지녁 바위위에서 점심을 먹는다.
허기도 달래주고, 지친다리도 휴식을 취하니 도곡리 뒷산인 이곳은 한강상류가 훤히 보이는 명당자리다.
다시 솔숲길를 오른다.
하지만 멀리 못가서 또다시 다리에 힘이 빠진다.
꼭지봉(갓무봉),비봉(조조봉),두봉(가마바위)를 지나니 가파른 나무계단이 앞을 가로막는다.
계단을 다 올라오니 삼거리임을 알리는 이정목이 서 있다.
갑산이 70m,머치고개가 2.63/새재고개가 0.75m, 도심역 5.0km.
시간과 거리를 계산해 보니 적당한 위치에서 운길산으로 빠지는 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벌써 3시다.
4시에는 하산해야 하는데 4시까지 운길산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
갑산을 찍고 다시 내려와 새재고개방향으로 가니 바로 새재고개가 나온다.
사거리다.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모르겠다.
마침 두명의 젊은 친구가 올라온다.
길를 물으니 운길산방향으로 가라한다.
조금 가다보니 약수터가 나온다.
물맛이 좋다.
운길산 정상까지 3,7km, 그런데 핸드폰에서 픽픽소리가 난다.
빳데리가 방전 일보직전이다.
카메라도 한칸밖에 안남았다.
체력도 방전,핸드폰도 방전,카메라도 방전...전부 방전지경이다.
그래도 가야한다.
오르고 또 올라 지루한 운길산 정상에 닿았다.
4시47분이다.
까마귀때가 울면서 날아다니고, 멀리 두물머리에는 석양은 지고 있다.
넓은 전망데크에는 여러명이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너지 보충을 위해 남은 간식들을 먹고 수종사를 향해 하산.
은근 춥다.
잔바람도 꾸준히 계속 불어댄다.
수종사를 한바퀴 돌아보고 하산.
운길산역에 도착하니 6시다.
곧바로 전철이 온다는 전광판 알림에 부지런히 올라가 전철를 탑승.
오늘 산행을 하면서 다산정약용선생을 생각해 보았다.
조선말 다재다능했던 천재적인 큰 인물,
천주교를 한국사회에 처음 받아들여 안착시키며 격어야 했던 그 고통.
멸문지화에 놓인 그의 집안.
그가 남긴 많은 업적들.
후세에 오래오래 남으리라.
목민심도를 오늘 다 완성을 못했다.
점점 약해저가는 나의 체력으로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언제든 또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
그리고 천마지맥 누리길도 한번 다녀와야겠는데...
산에는 길이 너무도 많은데 체력은 자꾸 약해지니 걱정이다....
저 멀리 용문산과 백운봉이 보인다.
물푸레나무군락지
운길산이 지척에 있다.
예봉산방향
운길산방향
도심역방향으로 올라와 갑산으로 가서 정상을 찍고 다시 하산하여 새재고개방향으로 직진.
새재고개 사거리
묵언(默言)!!!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것
말은 적게 하되 신중하게 하고, 들을 때는 진심으로 두 배는 더 들어라
귀가 입보다 위에 있는 건 내 말보다 남의 말을 더 존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라
구시화문(口是禍門)’ 이니‘필가엄수(必加嚴守)’하라
입은 재앙의 문이니 반드시 엄히 단속해야 된다는 말.
이런사람 저런사람
한순간을 만났어도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매순간을 만났어도
잊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
내가 필요로 할때
날 찾는 사람도 있고,
내가 필요로 할때
곁에 없는 사람도 있다
내가 좋은 날에
함께 했던 사람도 있고,
내가 힘들 때
나를 떠난 사람도 있다
사람의 관계란 우연히 만나
관심을 가지면 인연이 되고,
공을 들이면 필연이 된다
얼굴이 먼저
떠오르면 보고싶은 사람이고,
이름이 먼저
떠오르면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외로움은
누군가가 채워 줄수 있지만,
그리움은
그 사람이 아니면 채울 수가 없다.
이해인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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