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Before & Never Again / Beth Anne Rankin
환단고기 [ 桓檀古記 ]
≪환단고기≫ 범례에 의하면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계연수가 1911년에 ≪삼성기 三聖紀≫·≪단군세기 檀君世紀≫·≪북부여기 北夫餘紀≫·≪태백일사 太白逸史≫ 등 각기 다른 4권의 책을 하나로 묶은 다음 이기(李沂)의 감수를 받고 묘향산 단굴암에서 필사한 뒤 인쇄했다고 한다.
그런데 편저자인 계연수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0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 계연수는 다음 경신년(1980)에 ≪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하라는 말을 제자인 이유립(李裕岦)에게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환단고기≫는 1979년 수십 부가 영인된 뒤 1982년 일본인 가시마(鹿島昇)가 일역(日譯)하고 원문을 게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세간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4권의 기존 책을 하나로 묶어 탄생시켰다는 ≪환단고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과 체재를 지니고 있다.
≪삼성기≫는 본디 안함로(安含老)가 지은 것과 원동중(元董仲)이 지은 두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이 중 계연수 집안에 소장되어 있던 안함로 저작의 ≪삼성기≫를 상편으로, 태천의 진사 백관묵(白寬默)으로부터 얻은 원동중의 ≪삼성기≫를 하편으로 하여 ≪삼성기전≫을 구성하였다고 한다.
1457년(세조 3) 세조가 팔도관찰사에 수압령을 내렸던 책들 가운데 그 이름이 등장한 바 있는 ≪삼성기≫는 한국민족의 기원부터 시작하여 단군조선의 건국과 그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삼성은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을 가리킨다.
≪단군세기≫는 고려 말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을 지낸 이암(李嵒)이 1363년 관직에서 은퇴하여 저술했다고 한다.
이 책도 계연수가 백관묵으로부터 얻었다고 하는데, 47대 1,096년에 걸친 단군조선의 편년사가 펼쳐져 있다.
아울러 여기에는 그 역대 왕명과 재위기간, 치적 등도 서술되어 있다.
≪북부여기≫는 휴애거사(休崖居士) 범장(范樟)이 저술한 것으로 본디 ≪단군세기 합편≫으로 전해지고 있었는데 삭주의 이형식의 집에서 얻었다고 한다.
≪단군세기 합편≫ 가운데 ≪단군세기≫는 백관묵의 소장본과 글자 한 자의 차이도 없이 일치했다고 한다.
≪북부여기≫는 ≪단군세기≫를 저술한 이암의 현손인 이맥(李陌)이 편찬하였다고 하는데, 계연수의 스승인 이기가 소장했다고 한다.
이 책은 우주의 생성을 주로 다룬 <삼신오제본기 三神五帝本紀>, 환인이 다스렸다는 환국의 역사를 적은 <환국본기 桓國本紀>, 환웅의 치세를 서술한 <신시본기 神市本紀>, 단군왕검이 나누었다는 진한(진조선)·마한(막조선)·번한(번조선) 중 마한과 번한의 역사가 수록되어 있는 <삼한관경본기 三韓管境本紀>, ≪천부경 天符經≫·≪삼일신고 三一神攷≫ 등 단군신화와 관련된 경전교리에 관한 <소도경전본훈 蘇塗經典本訓>, 고구려·발해·고려의 역사 가운데 민족의 자존을 드날린 대외관계사를 중심으로 서술한 <고구려본기>·<대진국본기>·<고려국본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백일사≫는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4권의 책 가운데 가장 분량이 많은 것이다.
이처럼 ≪환단고기≫는 한국 상고시대의 정치와 종교를 서술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책을 어떠한 관점에서 수용하는가에 따라 한국고대사에 대한 인식은 현저한 차이가 나게 된다.
즉 이 책의 사료로서의 가치를 검토하는 일이 필요해지는데, 이에 대한 시각은 그 내용을 수용하는 태도와 비판적 태도, 예컨대 위서(僞書)로 간주하는 견해로 나누어진다.
이 책을 위서로 간주하는 논자들의 입론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이 책이 편찬된 후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약 7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은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이례적인 일이다.
뿐만 아니라 계연수나 이유립이 이 책의 공개를 늦추었던 동기가 충분히 납득되지 않기 때문에 그 편찬시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둘째, 이 책은 내용상 관직명·인명·지명·용어 등에 있어 시간적 비약이 지나치게 심하다.
가령, 고구려의 교육기관인 ‘경당(扃堂)’이나 그 관직인 ‘욕살(褥薩)’ 등이 단군조선 때에도 그대로 등장하고 있거니와 ‘문화’·‘원시국가’ 등을 비롯한 근대적 용어도 사용되고 있다.
셋째, 이 책은 일제시기에 소개된 신채호(申采浩)의 상고사 인식체계와 그 용어뿐 아니라 광복 이후에 작성된 위서로 밝혀진 ≪단기고사 檀奇古史≫의 영향까지 받고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 책을 위서로 간주하는 논자들은 ≪환단고기≫의 초고는 빨라야 1949년 이후에 성립되었을 것이며, 그 뒤 그 소장자인 이유립이 이를 수정, 보충하여 1979년 세상에 내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단고기(임승국 번역·주해, 정신세계사, 1986)
在野史書 解題 桓檀古記(李道學, 民族知性, 1986.11.)
揆園史話와 桓檀古記(趙仁成, 韓國史市民講座 2, 一潮閣, 1988)
韓末 檀君關係史書의 再檢討-神檀實記·檀奇古史·桓檀古記를 중심으로-(趙仁成, 國史館論叢 3, 1989)
역사를 誤導하는 上古史의 僞書들(李道學, 世界와 나 1990년 11월호)
대종교 관련문헌에 위작 많다-규원사화와 환단고기의 성격에 대한 재검토-(朴光用, 역사비평 1990년 가을호)
<환단고기>는 1911년 독립운동가 운초 계연수 선생이 우리의 고유 역사서 다섯 권을 하나로 묶어 펴낸 책이다.
신라의 고승 안함로가 한민족의 국통맥을 밝힌 <삼성기> 상과,
치우천황 등 환국과 배달국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이 담긴 고려 원동중의 <삼성기> 하,
고려 공민왕 때 수문하시중(국무총리)을 지낸 행촌 이암이 동북아의 종주 단군조선의 영광스런 역사를 드러낸 <단군세기>,
이암의 동지이자 고려 말 충신인 복애거사 범장이 잃어버린 부여사의 전모를 복원한 <북부여기>,
조선 시대 찬수관 이맥이 신교문화의 총체적 진면목을 드러낸 <태백일사>.
[한단고기] - 삼성기 상(三聖紀 上)의 한국(桓國). = 신라 스님, 안함로(安含老) 지음(撰) =
"먼 옛날 한 기(氣)가 서백력 하늘에 있었는데, 그는 홀로 변화하여 신(神)이 되셨다.
그 신은 밝은 빛으로 우주를 비추어 만물을 생성 변화(化生)시키는 권능을 가지시어, 만물이 장성하고 오래 사는 것을 보시고는 항상 기뻐하시며 타고 노닐며 기(氣)가 오묘(妙)하게 저절로 그리됨을 기꺼워하시었다.
그는 형상이 없는데도 볼 수 있고, 행동이 없는데도 이룰 수 있고, 말씀이 없는데도 행할 수 있으셨다.
어느날, 동녀동남 800이 흑수, 백산의 땅에 내려왔는데, 환인(桓因)이 그 무리들을 감독하셨다.
그는 하늘 세계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어켜서 처음으로 음식을 읶혀먹는 법을 가르치셨다.
이로서 한국(桓國)이라 하고, 이로서 하늘임금(天帝) 환인(桓因)이라했다.
또한 안파견(安巴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국(桓國)은 일곱세를 이어갔는데 그 연대는 알바가 없다."
[太古有一氣 在斯白力之天 爲獨化之神 光明照宇宙 權化生萬物
長生久視恒得 快樂乘遊之 氣妙契自然 無形而見 無爲而作 無言而行.
日降童女童男 八百於 黑水白山之地於是 桓因亦以監羣
居于天界 掊石發火 始敎熟食
謂之 桓國是 謂天帝桓因氏 亦稱 安巴堅也
傳七世 年代不可考也]
[한단고기]-삼성기 상(三聖紀 上)의 배달국(倍達國). = 신라 스님, 안함로(安含老) 지음(撰) =
"환웅(桓雄)씨가 계속 일어나 천신에게 받들어 고하고 백산과 흑수사이에서 우물을 파고(鑿子井女井) 넓고 물 좋은 땅(天坪井地)을 찿아 청구(靑邱)라 하였다.
그는 천부인(天符印)을 가지고 다섯가지 일을 주관하시는데, 세상을 교화시키기 위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치를 설하시고,도읍을 신시(神市)에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배달(倍達)이라고 불렀으며,三七일을 택일하여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실때, 바깥 물건은 꺼리고 근신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주문을 외우며 몸을 닦아 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더니,약을 드시고 신선이 되시었다.
팔괘(八卦)를 그으시고 점을 쳐(象) 신명(神命)과 수많은 혼령(羣靈)을 움직이고, 모든 철학자(諸哲)들에게 보필하도록 하더니, 웅씨 여자를 거두어 황후로 삼고 혼례의 법을 정하매, 짐승 털가죽으로 패물을 삼았다.
밭을 갈고 씨를 뿌히고 가축도 기르고 시장도 열어 서로 교환하고,아홉 성(九城)이 조공을 바치니 새와 짐승들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뒷 날 사람들은 그를 세상 최고의 신(神)이라고 받들어 세세토록 제사가 꾾김이 없었다.
신시 말기에 치우천왕(治尤天王)이 있어 청구(靑邱)를 개척하고 넓혔느나,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누리더라."
[桓雄氏繼興 奉天神之詔 降于白山 黑水之間 鑿男井女井於 天坪劃井地於 靑邱
持天符印 主五事 在世理化 弘益人間
立都神市 國稱倍達 擇三七日 祭天神忌 愼外物閉門 自修呪願有功
服藥仙成 劃卦知來 執象運神命 羣靈 諸哲爲輔納 雄氏女爲后 定婚嫁之禮
以獸皮爲幣 耕種有畜置市交易 九城貢賳 鳥獸率舞
後人奉之爲 地上最高之神 世祀不絶
神市之季 有治尤天王 恢拓靑邱 傳十八世 歷一千五百六十五年]
한국(桓國) 환인천황(桓因天皇)계표.
환인천황(桓因天皇) 7세, 3,301년 (BC 7,198 ~ BC 3,898)
세 |
천황 명 |
즉위년도(환기-B.C) |
약 사 |
1 |
안파견(安巴堅) |
1-BC7198 |
|
2 |
혁 서(赫胥) |
|
서방 만리에 환국의 법을 전한 광서제가 있었다. |
3 |
고시리(古是利) |
|
700년(수명) |
4 |
주우양(朱于襄) |
|
발귀리가 있어 동방 삼역에 삼의법을전함. |
5 |
석제임(釋提壬) |
| |
6 |
구을리(邱乙利) |
|
하늘에 제를 올리는 "소도제천"시작.삼묘산 아래에 "서자부(庶子部)"를 세웠음."아랑 아랑 아르리 아르이고"천해를 떠나면서 부른 노래 |
7 |
지위리(智爲利 |
세 |
천왕 명 |
즉위년도 (한기-B.C) |
재위 기간 |
약 사 |
1 |
거발한(居發桓) |
3301-BC3898 |
94 |
환인천황의 명을 받고 한웅께서 풍백 우사 운사와 함께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의 신단의 나무아래 내려오시니 이를 신시라 한다. 풍백 우사 운사를 데리고 농사를 주관하고, 삶을 주관하며, 형벌을 주관하고, 병을 주관하시고 선악을 주관하면서 무릇 인간의 360여사를 두루 주관하시사, 세상에 계시며 이치대로 교화하여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셨다 |
2 |
거불리(居佛理) |
3394-BC3804 |
86 |
|
3 |
우야고(右耶古) |
3480-BC3718 |
99 |
|
4 |
모사라(慕士羅) |
3579-BC3619 |
107 |
|
5 |
태우의(太虞儀) |
3686-BC3512 |
93 |
12아들중 막내 아들이 복희(중국시조3황중1인)이다.
그의 딸은 여와씨이다. |
6 |
다의발(多儀發) |
3779-BC3419 |
98 |
|
7 |
거 련(居連) |
3877-BC3321 |
81 |
|
8 |
안부련(安夫連) |
3958-BC3240 |
73 |
|
9 |
양 운(養雲) |
4031-BC3167 |
93 |
|
10 |
갈 고(葛古) |
4127-BC3071 |
100 |
독로한 |
11 |
거야발(居耶發) |
4227-BC2971 |
92 |
|
12 |
주무신(州武愼) |
4319-BC2879 |
105 |
|
13 |
사와라(斯瓦羅) |
4424-BC2774 |
67 |
|
14 |
자오지(慈烏支) |
4491-BC2707 |
109 |
일명 치우천왕.
황제 헌원과의 10년 73회의 전쟁을 모두승리로 이끌고 헌원을 복속시킴.중원 최고의 전쟁신으로 오늘날까지 추앙 받고 있다. |
15 |
치액특(蚩額特) |
4600-BC2598 |
89 |
|
16 |
축다리(祝多利) |
4689-BC2509 |
56 |
|
17 |
혁다세(赫多世) |
4745-BC2453 |
72 |
일명 홍제 |
18 |
거불단(居弗檀) |
4817-BC2381 |
48 |
일명 단웅(檀雄).
단군임검은 단웅의 아들이다. |
단군조선으로 (4865-BC2333) |
안함로(579~640)는 신라 사람으로 유.불.선과 신교에 정통하였고, 신라인들의 존경을 받는 승려 였다.
성은 김씨이며 휘는 안함, 안홍이며, 안홍법사, 안함법사, 안함태 화상 등으로 불렸다.
경주 불국사 앞 목월 문학관내에 있는 '신라를 빛낸 인물관" 에 가면 신라 십성十聖 가운데 한분으로 안함로는 1000년 수도인 신라의 열손가락 안에 드는 위대한 고승이다.
'해동고승전(고려시대 승려. 각훈)에 보면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
안함로는 22세(진평왕 22년, 600년) 승려 혜숙과 함께 배르 타고 중국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되돌아왔고 그 다음해(23세)에 칙명을 받고 수나라에서 온 사신과 함께 수나라로 건너갔다. 그곳 대흥사에서 머물며 불교경전과 진문을 공부하고 열반에 이르는 십승의 비법을 익혔다.
4년 만에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경주 황룡사에 머물면서 전단향화성광묘녀경 을 번역하였고 참서 한권을 지었다. 선덕여왕 9년 만선도량에서 62세로 입적하였다.
이 책에서 안함로는 태어나면서 도리를 깨달은 인물이고, 일찍부터 사물에 통달하고 지혜가 밝아 세속의 속박을 벗어나 가고 머무름을 뜻대로 하였다고 한다.
안함로 승려가 지은 동도성립기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신라 27대에는 여자가 임금이 되니. 비록 올바른 도리는 있어도 위엄이 없어서 구한이 침범한다.
만일 대궐 남쪽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가 침범하는 재앙을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황룡사 9층탑은 안함로 스님이 입적한지 3년 이후에 탑이 세워졌다.
이렇게 안함로 도승은 사물의 이치를 통했고 불법을 깨쳤으며 신통력으로 나라를 구한 위대한 도승이다. 그런 그가 삼성기 상을 언제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성기 상을 읽어보면 불교를 초월하여 유불선과 상고시대의 신교를 통한 최고의 고승의 글임을 알 수 있다.
단군세기 [檀君世記]
고려 후기에 이암(李嵒)이 엮었다는 단군조선의 연대기.
일찍이 이암은 고려시대 ≪진역유기 震域遺記≫를 저술한 이명(李茗)과 ≪북부여기 北夫餘記≫의 저자 범장(范樟) 등과 더불어 경기도 양주 천보산(天寶山)에 올라갔다가 태소암(太素庵)에서 진기한 고서(古書)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 때 얻은 고서를 읽고 이 책을 엮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태백진훈 太白眞訓≫·≪농상집요 農桑集要≫와 함께 그가 남긴 이른바 ‘행촌삼서(杏村三書)’의 하나로 꼽힌다.
서(序)에 보면 1363년(공민왕 12) 10월 3일 강화도 해운당(海雲堂)에서 저술된 것으로 되어 있다.
1세단군(서기전 2333)부터 47세단군(서기전 295)까지의 2,000여 년간의 실록을 기록하고 있으며, 북부여 해모수(解慕漱)의 건국(서기전 239) 사실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
- 『해동잡록(海東雜錄)』
- 『환단고기(桓檀古記)』(계연수, 1911)
- 『강도지(江都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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