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관악산(2014.12.13.)-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털보나그네 2014. 12. 13. 23:07

Ein Kinder Traum...Stefan Pintev

 

 

관악산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2014년12월13일.

늦게까지 잠을 잤다.

딸아이가 오늘도 출근한다고 하여 깨워주고,와이프는 건강진단을 받으러 간다고 나간다.

홀로 집에 남아 설거지에 화장실청소까지 하고 나니 12시반이다.

등산복으로 갈아입었다,그리고 관악산을 향했다.

종합청사역.

오랜만이다.

조금 생소하기까지 하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백운사,국사편찬위원회,기술표준원...

처음 관악산을 오게된 것은 아마도 산무수리님 덕분이다.

그때 이길을 처음 알게되었다.

기억에 그날 비가 왔었다.

 

초입 이정표에는 '연주암 2,7km 1시간 30분소요'라고 표시되어 있다.

초입을 지나니 길이 낯설다.

오늘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간다.

목교를 건너고 문원폭포가 나오고 마당바위가 나온다.

오늘은 일명사지터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잔설이 남아 그늘진 곳은 눈이 제법 쌓여 있다.

앞서간 사람들이 아이젠을 착용한다.

나는 아이젠을 미처 준비하지 않았다.

조심스럽다.

그럭저럭 연주암 도착하고, 관악산 정산에 도착했다.

정상은 바람이 불어 춥다.

연주암으로 내려가 간식을 먹고 자판기커피를 빼먹고...

4시.

하산은 늘 그랬듯이 과천청사 향교방향이다.

해떨어 지기전에 하산완료하려면 이 코스밖에 없다.

하산하다보니 해가 떨어진다.

노을빛이 능선넘어로 조금 보인다.

능선코스로 하산했으면 저 노을을 보았을 텐데...

하산완료하니 5시30분이다.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성묘:각세도(覺世道)신계 리 선평 도조의 묘.

(구한말에 생긴 신흥종교중의 하나)

 

 

 

 

 

돌이 참 많다,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들이 참 아름답다.

 

 

일명사지방향.

 

 

 

 

 

 

 

 

 

 

 

두꺼비.

 

 

 

 

 연주암은 677년(문무왕 17)에 의상(:652~702)이 창건한 절이다.

의상은 관악산 연주봉 절벽에 의상대를 세우고 그 아래 골짜기에 절을 짓고 관악사라고 했다.

이후, 고려말까지 거의 폐사되다시피 하다가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로 의상대자리에 석축을 쌓아 암자를 지어 연주대를 지었다.

전국을 떠돌던 양녕과 효령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왕궁이 보인다하여 관악사를 현 위치에 옴기고 이름도 연주암이라 바꾸었다.

(고려의 충신 강득룡과 서견,남을진등이 그자리에서 고려의 수도였던 송도(松都)를 보며 통곡하였는데 이때문에 '주인을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는 다른 견해도 있다)

 

 

 

관악산 산고양이들.

청춘!

 

 연주대(:경기도 기념물 제20호)

제1약수터-바가지 하나 하나마다 각양의 바램들이 담겨져 있다.

나는 이들의 간절한 염원들이 다 이루워지길 바래본다.

정한수 맑은 물로인해, 그들의 삶이 더욱 맑아 질 것이리라...

 

 

 

 

 

 

 

 

 

전철를 타고 가면서 신문 사설 한 구절를 보았다.

백성철의 현문우답-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장사익의 노랜말 이야기다.

 

바다가 그리워 깊은 바다가 그리워

남한강은 남에서 흐르고 북한강은 북에서 흐른다

흐르다가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아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한강되어 흐르네

아름다운 사람아 사랑하는 사람아~

 

(이 현주목사)

 

 

 

우리는 만남을 통해 무엇을 얻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가 채워지고, 강해지고, 부유해 지길 꿈꾼다.

그래야 생산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은,

남한강이 남을 버리고 북한강이 북을 버릴때 비로서 '한강'이 되듯,

사람들도,자신을 버릴때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자기자신이 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