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 天
천 상 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 - 이동원
이동원, 1951 ~
이동원은 시(詩)로 노래하는 가수다. 그는 또 노래가 시가 되기를 원하는 가수이기도 하다.
그의 히트곡 ‘향수’는 정지용의 시이고 ‘이별노래’는 정호승의 시다. ‘마흔살 되는 해는’은
천양희의 대표작이고 ‘애인’은 장석주의 작품이다.
이동원은 자신의 노래중 천상병시인의 ‘귀천’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있다.
천상병 千祥炳, 1930. 1. 29 ~ 1993. 4. 28
천상병은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간 시인으로 기억된다. 병과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해맑은 동심과 웃음을 잃지 않은 사람. 그의 대표작, 귀천은 그런 천상병을 잘 설명
하고 있다.
천상병은 1930년 일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소년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자랐다. 아버지의 잦은 사업실패 덕분이다. 소년은 몸이 약한 대신 감수성이 예민했다.
마산중학교 재학 시절, 국어교사는 시인 김춘수였다. 스승은 소년의 재능을 눈여겨봤다.
1년간 혹독한 습작의 시간을 보냈다. 1950년, 소년은 스승과 유치환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문학잡지가 청소년의 마음을 사로잡던 시절. 중학생이던 소년은 전국구 스타
가 됐다. 그리고 전쟁이 터졌다.
1951년, 부산으로 옮겨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했다. 전쟁은 감수성 여린 소년
에게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선물했다. 대학에서는 평론가로 유명했다. ‘나는 거부하고
저항할 것이다’라는 다소 과격한 제목의 평론은 지금도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글이다.
아내는 기억한다. “시 쓸 때와 평론할 때, 남편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어요. 아주 독하
게 평론을 했답니다. 그의 매를 맞지 않으면 유명한 문인이 아니란 말이 나돌았어요.
때문에 은근히 남편의 평론에 오르내리길 바라는 분들이 많았죠.”
대학시절부터 천상병 시인을 사랑해온 그의 친구의 손아랫 누이인 목순옥 여사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는 천상병 시인과 혼인신고를 하고
뒷바라지했습니다. 본래 온화하고 착한 심성의 천상병 시인이었지만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이후의 그는 부인이게 자주 상소리를 해대었고 주벽도 심하게 부렸으나
부인은 묵묵히 받아들이셨다고 해요.
대학 재학시절부터 종종 작품을 발표해 오던 천상병 시인은 정신이상 이후에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셨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귀천또한 그때 발표된 작품입니다.
천상병 시인이 돌아가신 이후 그의 부인 목순옥 여사는 인사동에서
귀천」이라는 이름의 찻집을 운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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