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중국여행-귀주성/성도(2018.09.21~26)-3

털보나그네 2018. 9. 29. 19:43


Gift Of Love - Nadama

 

 

 

 

 

중국여행-귀주성/성도-3

 

다시 성도(成都:청두)

 

 

 

 

2018년09월25~26일.

안순 포화호텔의 하루밤은 잠도 깊이 잘 수 있었고 아침에 호텔에서의 식사도 비교적 좋았다.

인근에 상가가 있는지 잠자기전에 우리일행은 한방에 모여서 술한잔를 기울이는데 계속 밖에선 음악소리가 들려왔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근처에 야시장도 있고 재례시장도 있다고 한다.

창문넘어로 철길이 보인다.

이름그대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고장인것 같다.

 

식사는 7시30분에 하고 8시45분에 집합하여 9시에 직금동으로 이동한다. 

 

직금동[织金洞 (즈진둥)]

 

중국 구이저우성[贵州省] 비제[毕节]에 있는 동굴.

 

깊이 약 10㎞, 최대 폭 173m, 높이 50m에 달하는 동굴이다.

내부는 넓게 트여 있으며, 각종 종유석과 석순, 석렴(石帘) 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바위는 40여 종의 암석이 융화되어 퇴적된 형태로 나타난다. 

전세계에 걸쳐 나타나는 다양한 용암동굴의 모습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고 하여 '용암박물관(溶岩博物馆)'으로도 부른다.

풍경구는 잉빈팅[迎宾厅], 장징탕[讲经堂], 타린둥[塔林洞], 완서우궁[万寿宫], 왕산후[望山湖], 장난쩌궈[江南泽国], 쉐샹궁[雪香宫], 링샤오뎬[灵霄殿], 광한궁[广寒宫], 스팡다산[十方大山] 등 10개로 조성되어 있다.

 

78m에 달하는 거대한 동굴 내부의 높이와 3,000여 ㎡의 규모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신비로운 종유석의 향연을 지나 동굴의 하이라이트인 400여개의 계단을 올라서면,

건물 5층 높이에서 거대한 동굴을 내려다 볼 수 있다.

 

 

9월24일 07시25분.

 

 

아침식사.

9월24일 07시36분

 

 

 

 

 

 

 

 

 

중국사람에 비해 한국사람이 잘 하는 것들:예의,위생,예술,축구,교육,금면,...

중국사람이 조선족사람을 부를때 '고려몽둥이'이라 부른다고 한다.

수나라시절 수양제가 전쟁을 벌리는데 고려인들이 끝까지 저항을 하면서 몽둥이를 들고 맞서 싸워 이겼다.

조선족에게는 몽고반점과 세끼발까락이 갈라지는 특징이 있단다.

박씨는 조선족에게만 있다.

 

우리가 탄 버스는 북쪽(長良)을 향하여 고속도로를 마구 달려간다.

도로변 풍경,농촌의 텃밭,아파트도 많이 짓지만 도로공사도 참 많이 한다.

공동묘지도 많이 보이는데 무덤둘레에 돌축을 쌓고 앞에는 비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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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을관람하고 나와 전동차를 타고 10분정도 이동하니 처음의 그 자리다.

식당으로 이동하여 중국식(현지식) 식사를 한다.

고추장은 한국사람이 많이 찾아서 특별히 준비한 것이라고 하는데 어제 선상에서는 준비가 많이 되었는지 충분히 주었는데 이곳은 처음에 쪼금 주고는 더 달라고 주문을 하니 없다고 한다.

음식들이 모두 느끼하다.

식후 느글한 맛을 우리가 따로 준비해 온 커피로 달랬다.

 

1시30분경 출발한 버스는 또다시 긴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마을과 수 많은 산하를 지난다.

아침엔 잔득 찌푸렸던 날씨가 다시 화창해 진다.

3시경 휴게소에 들려 주유를 한다.

河馬...이곳의 지명이름인데 3개의 하천이 합해지는 곳이라는 의미란다.

온도는 17도를 가리키고 있다.

 

18시20분 귀양북역(貴陽北店)에 도착하여 물품검색과 신분검사를 마치고 대합실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린다.

청두(成都)역까지 또다시 4시간의 긴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열차식 도시락를 또 경험해야 한다.

느끼하긴 해도 따듯한 음식이 나는 먹을 만 하다.

그런데 나무젓가락과 이쑤시게가  함께 나오는데 대나무로 만들어 견고하고  쓸만하고 좋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것들은 왜이리 약하고 허접한 걸까?

중국산이라고 다 나쁜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재질은 상관없이 무조건 값싼물건만 찾기때문에,

중국사람들의 인식에 한국사람들은 값싼것이면 무조건 좋아한다는 인식이 배여 있는지 모른다.

반면에 일본사람들은 무조건 품질이 우수해야 그에 상응하는 돈을 준다는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니 중국산의 품질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선호도와 취양이 문제인 것이다.

 

청두(成都:성도)역에 11시경에 도착,역사와 연결된 통로를 이용하여 호텔에 도착한다.

첫날 묵었던  냄새가 많이 나는 호텔이다 .

이번에는 모두 17층이고 나는 5호실이다.

이번엔 지난번처럼 냄새가 독하지는 않다.

그래서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약밥.

 

 

 

 

 

乐堡啤酒[lèbǎopíjiǔ]
투보그(tuborg) 맥주

"乐堡啤酒" 덴마크 맥주이지만, 톡쏘는 맛이 기름기가 많은
중국음식을 먹을 때 느끼함을 잡아준다고 한다. 


Tuborg맥주는 전세계 4대 맥주제조기업인 칼스버그계열의 브랜드이며, 2012년 중국에 수입되기 시작하여,

현재 쉽게 병뚜껑을 딸 수 있도록 설계된 국내유일의 맥주이다.
1880년 코펜하겐에서 시작된 Tuborg맥주는
덴마크 제일의 담백한 맛의 맥주이다.
상쾌하고 감칠맛이 나며, 수수하고 적당한 쓴맛의 Tuborg 8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 판매가 잘되고 있으며,

전세계 10대 고급 맥주브랜드 중의 하나로 불리고 있다.

또한 전세계 젊은 소비자들을 위한 최신 유행 맥주브랜드로 만들어 지고 있다
 

 

 

 

 

 

 

 

 

 

 

 

 

 

주유소 휴게소.

 

 

 

 

※휘발유 90 (일반),95(고급휘발류)

중국은 국영으로 운영하므로 모든지역의 가격이 모두 똑같다고 한다.

 

               

 

 

 

톨게이트.

 

 

 

 

 

 

 

성도(成都:청두)에서 마지막일정

 

 

 

레이펀트 호텔에서 여유로운 아침을 맞는다.

아침에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땅이 젖어있다.

6시기상,6시30분 식사,7시20분에 집합하여 30분에 출발.

 

성도(成都)는 제갈공명이 설계했다고 한다.

거미줄모양으로 1杯는 제일가운데 큰길로 시작하여 2杯,3杯,4杯..6杯까지 체계적으로 되어있다.

성도는 행복지수가 높고 한번오면 떠나기 싫은 도시(행복도시)라고 한다.

 

앞으로 화폐가 없어진단다, 지금도 70%는 사용을 하지않는다고 한다.

시대가 변하면 제도도 변해야 한다,택시는 애풀어풀로 사용한다.

대기오염을 막고 공기정화를 위해 자전거를권장하는데 QR코드를 사용하는방식으로 대여,

사용후 반품없이 그대로 목적지에서그대로 두면 되는 자전거가 생겼다.

북경대학생의 아이디어로 지금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단다.

한때 택시기사수입이 줄어들어 시위도 했었다는데 대다수의 국민에게 좋은 제도라하여 무마되었단다.

이럴때는 공산국가가 더 이롭다.

 

가이드는 처음 객지로 나와 생활했던 곳이라며 성도도시와 중국인의 삶에대한 여러 이야기들를 전해준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가이드'조 룡걸'씨의 설명이 가슴에 와 닿는다.

생수 한병씩 나누워 준다.

어제는 몽키바나나를 사 주더니...틈틈히 이런것을 잘 챙겨주는 친절한 가이드다.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인것 같아 보기에 좋다.

어제까지 같이 다니던 기사분은 청두에 오기전에 작별를 하고 오늘은 새로운 차와 운전사다.

오늘은32인승 승합차다.

 

 

 

 

 

아침식사.

첫날은 좋지않은 인상과 기억으로 잠만 자다가 나왔는데 오늘은 아침식사까지 다 하는데,

식당도 근사하고 맛고 좋고 분위기도 좋았다.

 

 

 

 

 

시내에는 고속도로에 진입하기전 자동차가 많아 정체현상이 생겨 가다서다를 한다(40분 소요).

자동차 넘버를 보면 '川A J1353' 되어 있는데 'A'는 사천성에서 첫번째로 큰 도시를 의미한다고 한다.

성도시에는 세계의 모든 자동차가 와 있는데 그중에서 상하이폭스바겐이 제일 많이 굴러다닌다고 한다(19%).

광조우도요타,혼다.베이징현대,기아는 K2(소형)라는 한국에 없는 사양도 있다고 한다.

현대는 소나타가 제일 많단다(140,000~180,000원정도 판매가 되고 있다고...

주유소에서의 기름은 국영이기때문에 모두 가격이 똑같단다.

 

 

 

 

 

 

휴게소.

휴계소도 깨끗하고 좋다.

청소하시는 분도 청결를 엄청 신경을 쓰고 있다.

 

 

낙산대불

 (乐山大佛 러산대불)

 

중국 쓰촨성[四川省] 러산[樂山]에 있는 중국 최대의 석불.

소재지-중국 쓰촨성[四川省] 러산[樂山]

규모-높이 71m, 머리 너비 10m, 어깨 너비 28m

 

링윈대불[凌雲大佛]이라고도 한다. 민장[岷江] 강가에 있는 링윈산 서쪽 암벽을 통째로 잘라내 새긴 마애석불로서,

713년 창건된 링윈사의 본존미륵보살이다.

당나라 때 승려 해통(海通)이 배가 안전하게 지나다니기를 기원하여 조각을 시작하였으며, 그가 세상을 떠나자 지앤난[劍南]의 절도사 위고(韋皐)가 90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조각 당시에는 금빛과 화려한 빛깔로 장식하였고 13층 목조 누각으로 덮어 보호하였으나,
누각은 명나라 말기에 불에 타 없어졌다. 1994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어메이산[峨眉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성도의 남쪽 낙산시 민강,청의강,대도하 3개의 강이모여 흐르는 지점에 위치한 릉운산절벽.

"불상이 하나의 산이요, 산이 하나의 불상" 세계최대의 마애석불상 '낙산대불'이다.

 

 

 

 

 

 

러산대불

소재지

중국 쓰촨성[四川省] 러산[樂山]

규  모

높이 71m, 머리 너비 10m, 어깨 너비 28m

 

능운사의 천왕전을 나오면 바로 앞에 경수정이 있는데, 바로 낙산대불의 머리 왼쪽에 해당한다.

그곳에서 아래를 보면 세 갈래 강이 보이고, 옆으로는 가파른 돌층계가 아래로 나 있다.

여기서부터 구곡잔도(九曲棧道)가 시작되는데, 잔도(棧道, 바위에다 구멍을 내어 나무를 꼽아 만든 길)처럼 바위에다 길을 만들어 그 모양이 구불구불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낙산대불은 낙산시 동쪽 능운산 서란봉(棲鸞峰)의 서쪽 절벽을 깎아서 만들었다.

오른쪽으로는 민강(岷江), 왼쪽으로는 대도하(大渡河), 그리고 가운데로는 청의강(靑衣江)의 강줄기가 합쳐지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청의강(靑衣江)

 

 

 이곳에서는 두줄기의 강물이 흘러나온다.

오른쪽으로는 민강(岷江), 왼쪽으로는 대도하(大渡河)

두 강의 물줄기가 합수되면서 물은 휘감아 돌다가 황하의 상류로 유유히 흘러 내려간다.

 

바로 배가 서있는 이자리가 세강이 합수하는 합수점이다.

 

 

청의강(靑衣江)

 

 

동방불도 입구.

옵션을 신청한 사람은 이곳으로 들어간다.

 

 

 

 

 

중국사람들은 강나루도 '항'이라고 한다.

 

 

 

肉菜(육채)구절

 

 

 

 

 소동파(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로 대표작으로는 赤壁賦가 있다.)가 개발했다는

동파육(東坡肉)은 보들보들한 살코기와 입에 착 감기는 양념 맛이 일품이다.

통째로 조리한 삼겹살에 간장 등을 부어 조려낸 중국 대표음식 중 하나.

하지만 먹어보았지만 별로 맛이 없다.

같이 먹은 이름모르는 나물이 더 맛있다.

이름을 물어봤는데 나물의 대가 속이 비어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며 뭐라했는데 잊어먹었다.

천공채???

 

 

 

 

소동파의 고향이라는 미산(眉山)

소동파[蘇東坡](1037.1.8 ~ 1101.8.24)

중국 북송 때의 제1의 시인.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 고 해 초유의 필화사건을 일으켰다.

당시(唐詩)가 서정적인 데 대하여 그의 시는 철학적 요소가 짙었고 새로운 시경(詩境)을 개척하였다.

대표작인 《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자:자첨(子瞻),호-동파거사(東坡居士),본명-소식(蘇軾),별칭-파공(坡公) ·파선(坡仙),중국 북송

출생지-중국 메이산[眉山:지금의 四川省]

 

차마고도.

 

 

 

 

 

보이차[普洱茶]푸얼차

널리 알려진 대로 보이는 명·청 시기에 지금의 서쌍판납(西雙版納, 시솽반나) 및 사모(思茅, 쓰마오) 지역을 관장하던 행정 소재지 명칭이다. 운남성 남부를 관할하던 이 행정 소재지에 당시의 운남산 차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보이차라는 명칭이 생겨나게 되었다. 최근 보이차의 인기가 폭발하면서 중국 정부는 기존의 사모시(思茅市)를 보이시(普洱市, 푸얼시)로 개명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보이차를 가장 먼저 만들어낸 사람들은 하니족을 비롯한 운남성 남부 지역의 소수민족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족 및 태족의 자치 지역에서도 오래전부터 보이차를 만들어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보이차란 어떤 차일까? 중국 정부는 보이차를 '운남성에서 생산된 대엽종의 찻잎을 쇄청건조시킨 모차를 원료로 하여 발효시킨 산차(散茶), 혹은 긴압차(緊壓茶)'로 정의하고 있다.

 

보이차는 완성된 모양에 따라 산차와 긴압차로 구분한다.

산차란 찻잎을 뭉치지 않고, 우리가 흔히 보는 잎녹차의 찻잎 형태로 그냥 흩어놓은 차를 말한다. 긴압차란 찻잎을 공 모양이나 벽돌 모양, 혹은 버섯 모양이나 둥글납작한 빈대떡처럼 딱딱하게 뭉쳐 놓은 차를 말한다. 가장 흔한 것이 둥글고 납작한 빈대떡 형태의 차인데, 흔히 병차(餠茶)라고 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많은 보이차에는 '칠자병차(七子餠茶)'라는 말이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 병차는 차의 모양을 말하는 것이고, 칠자란 이 차들이 일곱 개씩 포장되어 운반되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보이차는 또 제다 방법에 따라 크게 생차(生茶)와 숙차(熟茶)로 나눈다. 구분의 기준은 차를 완성할 당시에 발효가 되었느냐 되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으며, 발효시키지 않은 찻잎으로 만든 차가 생차, 이미 발효된 찻잎으로 만든 차가 숙차다. 생차이면서 그 모양이 병차인 차를 흔히 생병(혹은 청병)이라 하고, 숙차이면서 병차인 차를 숙병이라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도 이러한 개념이 분명하게 정립되지 않아서 오래된 보이차는 모두 숙차라는 잘못된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보이차 제다법은 생차로 차를 만든 후, 장기간에 걸쳐 보관하면서 서서히 발효시키는 것이다.

 

생차로 만들어진 보이차는 한두 해 정도로는 그 참맛을 느낄 수 없고, 장기간에 걸쳐 제대로 보관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보이차다운 보이차가 되지 않는다. 만들어진 직후의 보이 생차는 맛이 떫을 뿐더러 향이나 약효 역시 오래 묵은 보이차와는 전혀 딴판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찾는 보이차는 오래 묵은 보이차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보이차는 당연히 수량이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이때 생산자들이 찾아낸 새로운 제다법이 숙차 제다법으로, 악퇴(渥堆)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특징이다. 악퇴는 찻잎을 두텁게 쌓아 고온다습한 환경을 만들어 발효를 촉진시키는 과정으로, 이를 통해 갓 만든 차가 오래 묵은 보이차와 유사한 맛과 향을 지닌 숙차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통적으로 최소한 몇 년 이상은 걸리던 후발효 과정을 40일 정도의 기간에 속성으로 완성시킨 차가 바로 숙차인 것이다.



 

 

고감로(苦甘露,거짓차)

원산지 : 운남성 고산

효능 : 기관지등을 깨끗하게 해주어 기침 천식 가래해소 및 후두염에 효과

마시는 방법 : 90℃ 물에서 10초가량 우려서 5~6회가량 재탕할수 있음.

고감로(苦甘露)는 차는 아니다. 일종의 대용차로 원산지는 중국 남쪽지역의 고산지역, 해발 3-4천 미터 높이 이상에서 생존하는 바위이끼이다.

고감로는 기관지 계통을 깨끗하게 해주어 기침, 천식, 가래해소 및 후두염에 효과를 볼 수 있다.

고감로는 어지간한 감기 초기와 특히 기관지천식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에겐 특효한 효능이 있다.

인후염(咽喉炎), 편도선염증(扁桃腺炎症), 호흡기관염증에 이롭고 해열, 해독, 소염, 속열을 낮추는 작용을 하여 아주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백국화, 진피(귤껍질 말린 것)와 함께 넣어서 식후 1-2컵을 마시면 강압 및 감기를 예방할 수 있다.

마시는 방법으로는 90℃ 이상의 물에서 10초 가량 우려서 5~6번 가량 재탕해서 마신다.

고감로의 첫 맛은 좀 비릿하나 다음부터는 달착지근한 맛이 나 마실 만하다.

단 주의 할 것은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기관지를 깨끗하게 하는 성분이 지나쳐 너무 많이 마실 경우에 오히려 기관지를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성분으로는 석곡이라는 차가 있는데 역시 많이 마시면 좋지 않으니 유의해야 한다.

우리일행은 한 집당 보이차1개,고감로차 1통,찻물우리는 통 1개를 800원주고 삿다.

 

 

 

불교용품가게가 모여있는 거리.

 

 

한소열묘(汉昭烈庙)

 

무후사는 중국 안에 9곳이 있다. 비의 아들 유선에 의해 가장 먼저 지어진 섬서성 한중시(汉中市)의 무후사와 허난성 난양(南阳)의 무후사후베이 융중(隆中)의 무후사충칭 백제성(白帝城무후사윈난성 바오산(保山무후사깐수성의 기산(祁山무후사저장성 란계(兰溪) 무후사, 샨시성 오장원 무후사 등이다.

27세에 유비와 함께 출사한 제갈량은, 기원후 234년 오장원에서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다. 그리고 유비의 뒤를 이은 유선의 명에 의해 한중시 면현(勉县)에 처음으로 무후사가 세워지고, 이후 동진시기 이웅(李雄)에 의해 청두에 무후사가 만들어지게 된다. 청두의 무후사는 유비를 모신 사당 한소열묘(汉昭烈庙)의 옛 터 위에 지어졌는데, 이에 왕과 신하를 함께 모신 유일한 사당이 된다. 몇 차례의 전란을 겪고 전소된 유비와 제갈량의 사당은 이후 명초기에 민간의 주도에 의해 재건이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비는 소외되는데 소식을 들은 당시 촉을 다스리고 있던 주춘(朱椿)은 명을 내려 유비의 묘와 사당 역시 다시 보수한다. 그리고 주군과 신하가 함께 모셔져 있음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무후사는 폐해 버리고 “한소열묘(汉昭烈庙)”라 부르게 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도 명나라 말기 전란을 겪으면서 전소되고 강희제 12(1672)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규모의 “무후사(武侯祠)가 다시 재건된다.

청나라 건륭제시대 때 쓰촨지역으로 파견된 관리 중 주완(周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 청두의 한소열묘와 무후사에 대해 역사적 고증을 실시한다. 주완은 고증을 통해 무후사가 원래 유비를 모신 한소열묘의 옛 터에 세워졌음을 밝혀내고는, 신하가 자신의 주인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 사실임을 확인한다.

타당하지 않다고 여긴 그는 며칠 간의 고심 끝에 무후사 대문의 편액을 한소열묘라 바꾸고, 묘 내에 있는 제갈량전은 무후사로 바꾼다. 하지만 일찍이 무후사로 부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던 민중들은 한소열묘를 여전히 무후사라고 불렀고 1956년 국가에서는 민중의 이런 습관을 존중해 “무후사(武侯祠)”라고 정식으로 명하게 된다

"明良千古"  명량천고

'明'자가 '日'자를 쓰지않고 '目' 눈목자를 썼다.

이것은 유비가 자신의 능력은 많이 모자라지만 제갈량,관우,장비등 많은 현명한 사람들을 골랐으니,

사람보는 눈만은 밝고 현명하다는 뜻으로 눈'目'자를 썻다고 한다.

즉 이 현판은 '천고의 밝은 눈'이라는 뜻이겠다.

 

 

 

장수들의 배를 자세히 보면 배를 까고 배에다가 문신을 세겼다.

배가 나오면 부의 상징으로 여겨 잘먹고 산다는 것를 과시하는 것이란다.

요즘도 배를 훌렁 까고 있는 사람을 볼수 있고 심지어 웃통을 벗거나 앞단추를 다 개방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장수들의 토우를 자세히 보면 그들도 그러했다.

 

 

 

[成都 武侯祠(청도 무후사)]

청두 무후사

한소열묘(汉昭烈庙)라고도 한다. 유비와 제갈량의 제사를 모신 사당으로 1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북쪽에 위치한 본당을 중심으로 남쪽을 향해 하나의 축을 이루는 구조이다. 본당 아래에 따먼[大門,대문], 얼먼[二門, 이문], 유비전(刘备殿), 꾸어팅[过厅,과청], 제갈량전오중(诸葛亮殿五重)이 있다. 서쪽에는 유비의 묘(刘备陵园)가 있으며, 얼먼에서 유비전과 동서전(东西殿), 꾸어팅에서 제갈량전(诸葛亮殿)의 동서방향으로 각각 두 개의 곁방이 붙어있는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사당 내부에는 촉한(蜀汉 : 삼국의 하나로 유비가 세움)의 역사적 인물들을 상징하는 토우가 41점에 달한다. 토우들은 청대(清代)의 조각가들이 만들었으며 촉한(蜀汉)의 군신서열에 의하여 배치되어 있다. 이 밖에 탕뻬이[唐碑, 당비]는 사당 내의 중요한 문화재 중 하나이다. 이 비석에는 제갈량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이 적혀있으며, 명대(明代)에 이르러 '삼절비(三绝碑)'라고 불렸다

 

 

 

 

 

금리거리(錦里)

제갈량의 사당인 무후사(武侯祠) 바로 옆이 비단 직조공들이 모여 살던 비단마을 진리(錦里) 거리다.

지금은 전통 맛집으로 변해 관광객들를 불러모으고 있다.

 

무후사 뒷문으로 나오면 ‘비단길’이라는 뜻을 가진 진리(錦里)거리가 나온다. 촉나라 비단 직조공들이 모여 살던 마을을 재현한 곳으로 서울의 인사동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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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292045005&code=350102#csidx9c79709ad2a4fe88ad64508fb7fe580
무후사 뒷문으로 나오면 ‘비단길’이라는 뜻을 가진 진리(錦里)거리가 나온다. 촉나라 비단 직조공들이 모여 살던 마을을 재현한 곳으로 서울의 인사동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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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292045005&code=350102#csidx9c79709ad2a4fe88ad64508fb7fe580

이제 중국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는 시간이다.

옵션으로 사천요리가 있지만 우리는 현지식으로 하기로 했다.

먹다 남은 모태왕자주도 비우고, 소주도 비우고...

이렇게 깔끔하게 해치우고 가볍게 일어났다.

음식이 비교적 괜찮았다.

 

 

 

성도시의 야경은 아름답고 휘황찬란하다.

이제 중국,그리고 사천,성도(成都)는 더럽지않은 깨끗한 도시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공연'천극'의 하이라이트는 변검

천극지화(川劇之花)

천극은 예로부터 '촉의 배우는 대부분 문장에 능하며 박학다식하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 올 정도로 내용이 다양하고 대사가 세련되며 문학적이다. 동시에 천극은 사천방언과 노래를 이용한 사천인 특유의 유머감각에서 나온 재치 있는 말과 연기로 대중의 웃음을 끊임없이 자아내게 한다. 비극적인 내용도 이러한 표현을 이용해 희극적으로 처리되어 희극적인 분위기를 지니게 한다. 또 천극에 사용되는 언어는 해학적이고 통속적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도 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극종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천극의 가장 큰 특징은 변검(變臉)을 들 수 있다.

 

변검은 천극지화(川劇之花)라고도 불리며 파촉 공연예술 뿐 아니라 파촉 문화의 명물로서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이것은 천극을 공연할 때 배우가 얼굴에 있는 검보(臉譜)를 극의 분위기에 따라 바꾸는 연출기법을 말한다. 변검은 천극에서만 볼 수 있는 연기기술로 등장인물의 감정변화와 독특한 개성을 얼굴에 나타내는 얼굴분장이다. 이 공연기법은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며 변검이라는 배우의 서스펜스를 통해 관중을 극 속으로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여 오락성과 재미를 한층 고조시킨다.

 

 

 

연극공연을 끝으로 하여 중국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청두공항으로 이동하여 짐을 부치고 순서를 기다려 비행기에 탑승.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소지품을 확인해보니 내 지갑이 없다.

승무원에게 가서 자초지정을 설명하고 신고서를쓰고 ...

검색할때 바구니에 꺼내 넣었던  지갑을 깜박하고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

지갑안에는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신용카드,현금등이 들어 있었다.

먼저 신용카드 분실신고를 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오후에 찾았다는 전화가 공항에서 왔다.

택배로 부탁하니 35,000원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