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청계산종주(4/3)

털보나그네 2011. 4. 4. 13:28

 

 

 

청계산 종주.

 

 

 

 

 

2011년4월3일.

1월달에 다녀왔던 청계산이지만 빠진 팀들이 많았다고 다시 가자는 의견에 따라 4월 산행지를 청계산으로 정했었다.

오늘은 경석이 부부가 성묘하러 간다고 빠지고 모두 참석했다.

대공원역에서 9시에 만나기로 하여 모두 집합한 시간 9시20분.

30분부터 출발,우측 도로를 따라 지난번 갔던 코스로 간다.

능선길로 접어들면서 언덕이 나오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생강나무 가지에 노란 꽃이 피여있는 모습을 볼 수 가 있다.

어제 대공원을 돌아던 후유증이 남아 종아리가 땡긴다.

아침에 옷을 어떻게 입을까 고민하다 아직도 추울것 같아서 겨울에 입던 긴팔소매를 입었더니 덥다.

언덕을 오르는데 땀이 비오듯 쏫아진다.

작은 매봉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시계가 좋지않다.그리고 사람도 많다.

상규네 부부가 유난히 힘들어 한다.어제 저녘에 제사가 있었단다.

계속 진행을 하다가 헬기장에 도착하여 가져온 음식을 펴놓고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따로 뒤풀이를 하지 않기로 했다.

식사를 하면서 다음 산행지를 정했다.

강원도 사북에 기문이가 잘 아는 사람이 폔션을 하는데 그곳으로 1박2일 일정으로 가기로 했다.

토요일 10시에 만나서 차는 2대를 운행하기로 했다.

 

옥녀봉에서 대공원으로 빠지는 길를 어디로 갈까 설왕설래하다가 과천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오늘은 하산길이 지난번 보다 덜 지루했다.대공원 후문쪽으로 하산을 완료.

행락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우리부부는 다음주 산소에 가는 문제로 형님과 상의를 하기위해서, 안양에 형님댁으로 가서 그곳에서 사춘동생부부도 만나고 저녘까지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松山조견(趙絹)선생과 마왕굴(魔王掘)

이곳은 1390년대 고려말 충신 송산 조견선생(1351~1424)이 흘러나오는 샘물로 갈증을 풀고 쉬어가던 곳이다.

공의 본관은 평양(平壤)이고 처음 이름은 윤(胤),호는 송산(松山),시호는 평간공(平簡公)이다.

고려 충렬왕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조인규(趙仁規)의 증손이고 조선의 개국공신 조준(趙浚)의 아우이기도 하다.

고려말 영남안렴사(嶺南按廉使)로 내몰려 갔을 때 고려가 망하게 되자 두류산(頭流山,현지리산)으로 들어가 이름을 견(絹)으로 고치고,자(字)도 종견(從犬)이라 하였으니 이는 나라가 망했어도 죽지 않음이 개가 주인을 알아본다는 그 의(義)를 취함이다.

이태조가 공의 절개를 찬양하고 재능을 아껴 호조전서(戶曺典書,判書)에 명하였으나 사양하고,이 산 청계산로 옮겨 운둔생활을 하면서 위 상봉인 망경대(望京臺)에 자주 올라,송도(松都,개성)를 발보며 슬퍼하다가 이곳에 들렀다.

이곳은 고려가 망하기 직전 맥(貊)이라고하는 이상하게 생긴 큰 짐승이 여러 산짐승을 몰고 이 굴로 들어갔다 하여 일명 "오막난이 굴"이라고 불렀다.

이태조가 한양에 정도(定都)한 후 다시 조준을 대동하고 청계사로 찾아와 옛 친구사이(朋友之禮)로 마주앉아 도와주기를 간청했지만 굳은 절의를 돌이키지는

못하였으며 공은 다시 수락산 기슭 송산마을로 옮겨 은거하다가 생애를 마첬다.

공의 묘소는 성남시에 예장되었고 모셔진 사당은 양주의 정절사,의저부의 송산사,공주의 송산사우 등 세 곳이다.

                     --이상은 앞 팻말에 적혀있는 내용을 옴긴 글이다.--

 

 

 

 

 

 

 

 

 

 

                                                     Serenade To Spring (봄의 세레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