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이야기-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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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입동 후 5일씩을 묶어 3후(三候)로 삼았다. 초후(初候), 중후(中候), 말후(末候)가 그것으로 초후에는 비로소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에는 처음으로 땅이 얼어붙으며, 말후가 되면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입동을 특별히 명절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겨울로 들어서는 날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겨울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입동 즈음에는 동면하는 동물들이 땅 속에 굴을 파고 숨으며, 산야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풀들은 말라간다.『회남자(淮南子)』권3 「천문훈(天文訓)」에 의하면 “추분(秋分)이 지나고 46일 후면 입동(立冬)인데 초목이 다 죽는다.”라고 하였다. 낙엽이 지는 데에는 나무들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영양분의 소모를 최소로 줄이기 위한 자연의 이치가 숨었다.
입동 무렵이면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기 시작한다. 입동을 전후하여 5일 내외에 담근 김장이 맛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요즈음은 김장철이 조금 늦어지고 있다. 농가에서는 냉해(冷害)를 줄이기 위해 수확한 무를 땅에 구덕(구덩이)을 파고 저장하기도 한다. 추수하면서 들판에 놓아두었던 볏짚을 모아 겨우내 소의 먹이로 쓸 준비도 한다. 예전에는 겨울철에 풀이 말라 다른 먹이가 없었기 때문에 주로 볏짚을 썰어 쇠죽을 쑤어 소에게 먹였다.
입동을 즈음하여 예전에는 농가에서 고사를 많이 지냈다. 대개 음력으로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날을 받아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하고, 제물을 약간 장만하여 곡물을 저장하는 곳간과 마루 그리고 소를 기르는 외양간에 고사를 지냈다. 고사를 지내고 나면 농사철에 애를 쓴 소에게 고사 음식을 가져다주며 이웃들 간에 나누어 먹었다.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도 있었다. 여러 지역의 향약(鄕約)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계절별로 마을에서 자발적인 양로 잔치를 벌였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제석(除夕)날에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을 치계미라 하였다. 본래 치계미란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하였는데, 마치 마을의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기인한 풍속인 듯하다. 마을에서 아무리 살림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년에 한 차례 이상은 치계미를 위해 출연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다. 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도랑탕 잔치라고 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10월부터 정월까지의 풍속으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임금에게 우유를 만들어 바치고,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나이 많은 신하들에게 우유를 마시게 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겨울철 궁중의 양로(養老) 풍속이 민간에서도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입동을 즈음하여 점치는 풍속이 여러 지역에 전해오는 데, 이를 ‘입동보기’라고 한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속담으로 “입동 전 가위보리”라는 말이 전해온다. 입춘 때 보리를 뽑아 뿌리가 세 개이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점치는데, 입동 때는 뿌리 대신 잎을 보고 점친다. 입동 전에 보리의 잎이 가위처럼 두 개가 나야 그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믿어지고 있다. 또 경남의 여러 지역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고 하는데, 특히 경남 밀양 지역에서는 갈가마귀의 흰 뱃바닥이 보이면 이듬해 목화 농사가 잘 될 것이라고 점친다.
이러한 농사점과 더불어 입동에는 날씨점을 치기도 한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겨울 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하고, 전남 지역에서는 입동 때의 날씨를 보아 그해 겨울 추위를 가늠하기도 한다. 대개 전국적으로 입동에 날씨가 추우면 그해 겨울이 크게 추울 것이라고 믿는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淮南子
한국 민속의 세계5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
가을과 겨울이 서로 싸우는 입동
세상은 아직 가을인데, 겨울이 호시탐탐 고개를 들이민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계절풍이 교대기에 들어가며 맑은 하늘에 느닷없이 먹구름을, 가을 산들바람이 아닌 모든 걸 날려버릴 듯한 겨울바람을 몰고. 이맘때는 날이 맑다가도 어느 순간 추위가 밀어닥칠지 알 수 없다.
가을과 겨울의 싸움은 이렇게 밀고 댕기는 맛이 있지만, 하루해가 짧아지는 게 날마다 눈에 보인다. 저녁 해가 금방 지고 아침은 더디 온다. 아침저녁에는 문밖을 나서기 꺼려질 만큼 바람이 차다. 무서리에 끄떡없이 푸르던 뽕잎도 모두 떨어지고, 가을꽃도 시들었다. 마른 덤불 사이로 새떼가 바삐 나는데, 빨간 찔레 열매, 노박덩굴과 망개(청미래) 열매가 꽃같이 반가운 철이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날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2009년은 11월 날씨가 봄 날씨 같이 푸근했다. 입동이 지났어도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고 한낮에는 볕이 뜨겁다. 하지만 이렇게 날이 푸근한데다 비까지 오니 곶감이 물러지고, 무말랭이 한다고 썰어 말리다가 곰팡이가 피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날이 계속 따뜻한 건 아니다. 된서리 한 번 없이 10월이 지나더니 11월 2일 오후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해 그날 밤 영하 6도까지 떨어졌다. 보통은 한 발 한 발 다가오던 추위가 기습하듯 다가왔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져 버렸다. 밭에 무청은 시들고, 감나무에 미처 못 딴 감은 얼어버렸다. 평균기온은 올라간다지만 겨울은 겨울이니 언제 추위가 몰아닥칠지 모르게 기후가 커다란 폭으로 출렁거린다. 지구 온난화는 사람이 불러온 거라는데, 우리들은 그 기후변화에 얼마나 대응할 수 있을까?
끝없어 보이던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농사도 얼추 끝났으니, 이제부터 땅 얼기 전까지 가을걷이 뒷정리를 해야 한다. 그 가운데 논둑, 밭둑 터진 곳이 있으면 그걸 새로 쌓는 게 첫째다. 2002년 루사 때는 논둑이 터졌는데, 2003년 매미 때는 밭둑이 터졌다. 그 일이 만만치 않다. 늘 시작하려면 엄두가 나지 않지만 하다 보면 다 된다. 나무들도 돌보아야 한다. 거름도 듬뿍 얹어 주고, 어린 나무는 볏짚으로 감싸 겨울옷을 입혀 준다. 짐승 우리도 겨울 채비를 해 줘야지. 바닥을 치워 밭에 거름으로 내고, 왕겨를 새로 넣어 준다. 내년 봄에 먹을 시금치, 월동초, 상추, 대파, 쪽파도 잊지 말고 가꾸어야지.
농사짓다 보면 풍년인 해도 있고 썰렁한 해도 있다. 만일 지독한 흉년이 들어 농촌에 먹을 쌀이 귀하다면 도시 사람들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농촌이 더 힘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까지 하는 사이에도 이맘때면 먹을거리가 집 안팎에 쌓인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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