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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이야기-상강(2013.10.23)

털보나그네 2013. 10. 24. 07:53

 

Oscar Lopez/Loving You

칠레 산티아고 출신의 라틴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Oscar Lopez 자신의 음악에 자신의 정신과 인생의 경험을
쏟아 넣는다는 라틴 플라맹코 기타 연주의 대가이다.


 

절기이야기-상강 [霜降]

 

 

 

2013.10.23.

상강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에 들며, 태양의 황경이 210도에 이를 때로 양력으로 10월 23일 무렵이 된다. 이 시기는 가을의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 대신에 밤의 기온이 매우 낮아지는 때이다. 따라서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며, 온도가 더 낮아지면 첫 얼음이 얼기도 한다.
이때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며 국화도 활짝 피는 늦가을의 계절이다. 중구일과 같이
국화주를 마시며 가을 나들이를 하는 이유도 이런 계절적 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상강에 국가의례인 둑제[纛祭]를 행하기도 했다. 특히 농사력으로는 이 시기에 추수가 마무리되는 때이기에 겨울맞이를 시작해야 한다. 권문해(權文海)의 『초간선생문집(草澗先生文集)』을 보면 상강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다.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바라보는 가운데 점점 산 모양이 파리해 보이고, 구름 끝에 처음 놀란 기러기가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잎에 병이 들어 시드는데, 울타리 아래에 이슬이 내려 찬 꽃부리가 빛나네. 도리어 근심이 되는 것은 노포(老圃)가 가을이 다 가면, 때로 서풍을 향해 깨진 술잔을 씻는 것이라네(半夜嚴霜遍八紘 肅然天地一番淸 望中漸覺山容瘦 雲外初驚雁陳橫 殘柳溪邊凋病葉 露叢籬下燦寒英 却愁老圃秋歸盡 時向西風洗破觥).”
중국에서는
상강부터 입동 사이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자연의 현상을 설명하였다. 이를테면 초후(初候)는 승냥이가 산짐승을 잡는 때, 중후(中候)는 초목이 누렇게 떨어지는 때이며, 말후(末候)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모두 땅속에 숨는 때라고 한다. 김형수(金逈洙)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도 한로상강에 해당하는 절기의 모습을 “초목은 잎이 지고 국화 향기 퍼지며 승냥이는 제사하고 동면할 벌레는 굽히니”라고 표현한 것을 보아 중국의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조선대세시기Ⅰ (국립민속박물관, 2003)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조선전기 문집 편 (국립민속박물관, 2004)

 

 하룻밤 사이 들판이 바뀌는 상강(농사꾼 장영란의 자연달력 제철밥상, 2011.6.3, 들녘)

상강이 다가오면,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면 하룻밤 새 들판이 바뀐다.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홀딱 데쳐진 듯 누렇게 바뀐다. 산에 칡잎은 사그라지고, 나뭇잎은 단풍이 든다. 들에 여름작물들도 모두 지고 여름풀마저 사라지는데, 그걸로 끝이 아니다. 그 자리에 겨울 풀이 하나둘 돋아나기 시작한다. 이맘때면 한로에 심은 밀·보리도 뾰족이 싹이 올라온다.

된서리 올 무렵이 되면, 새콩 꼬투리 햇살을 받아 톡톡 터지는 소리 들리고, 겨울 잠 자는 뱀, 벌레들 땅 속으로 숨어들겠지. 파리모기도 사라지고, 무당벌레 따스한 곳을 찾아 집으로 기어든다. 따뜻한 옷 꺼내 입고 따스한 차가 좋다. 금방 캔 생강에, 나무에서 빨갛게 마른 대추 따다 차를 끓이고. 구절초꽃 차도 좋다.

된서리 오기에 앞서 해야 할 일도 많다. 고구마 캐고, 생강 캐고, 국화 따서 차 만들고. 내년 봄에 먹을 상추, 시금치도 심어야지. 바쁜 일이 얼추 추려지고 나면 논에 널린 볏짚도 추슬러 묶어 가지런히 쌓아두거나 집에 옮겨 놓는다. 이맘때 차를 타고 지나다 아직 타작을 못한 논이 보일 때가 있다. 어쩌다 아직까지 벼를 세워 놓았을꼬? 저러다 이삭이 꺾어지면 어쩌나. 내가 이러니 그 주인 마음은 어떨꼬.

밭 가을걷이는 어느 정도 되었는가? 아직 밭에 남아 있는 검은콩(서리태), 수수 거두어들이고. 베어놓은 들깨도 털고 까불어 알곡을 추려야 한다. 얼음 얼기에 앞서 모두 거둬들여야지. 거두어들이는 대로 가을 햇살에 말리고 가을바람에 날려서 하나하나 갈무리한다. 양파 모가 제대로 자랐으면 더 춥기 전에 본밭에 심고 잘 살아 붙으라고 물을 넉넉히 준다.

된서리 내릴 무렵이면 온 식구 긴 장대 들고 감을 따러 간다. 단단한 감은 깎아 처마 밑에 매다니, 곶감 말리기 좋은 철이다. 감을 깎아 주렁주렁 매달면, 가을마당이 가장 화려하게 빛난다. 잘 익은 감은 저절로 홍시 되게 갈무리하니 겨울이 기다려진다. 우리네 농촌 가을에 감만 한 게 또 있을꼬. 시골집 둘레, 마을 둘레에 뿌리 내리고 자라서 사람 손길이 따로 가지 않아도 영글고는 하지. 가을이 되어 홍시 빠지면 주워 먹고, 깎아 매달아 곶감 만들어 겨우내 두고두고 먹어, 아이들은 감기 예방하고, 일하다 힘에 부칠 때 먹으면 힘이 난다.

그 가운데 감또개(감말랭이)는 새로운 맛이다. 곶감 깎을 만하지 못한 단단한 감을 껍질째 납작하게 썰어 채반에 말린 게 감또개다. 곶감은 한 달쯤 지나야 반건시가 되지만 이건 만든 지 열흘 정도면 먹을 수 있다. 홍시 먼저 먹고, 곶감도 떨어진 늦겨울. 뭔가 궁금할 때 먹으면 껍질째 씹히는 달착지근한 맛이 좋다.

이 소중한 감나무가 우리 동네에는 별로 없다. 추운 곳이고 감이 잘 안 되는 지형이라 그렇다는데, 그래도 해마다 감나무를 새로 심었다. 그 가운데 세 그루가 살아남아 한 그루에 감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해마다 멀리 원정을 다니며 감을 따오기도 한다.

가을 해는 어찌나 쏜살같이 떨어지는지. 일하다 해 떨어질 기미가 보이면 어깨 움츠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찬바람이 집 안으로 파고드니 문종이, 도배, 구들 청소……. 겨울 날 준비를 시작한다. 날이 차지면 땔감을 챙기면서 김장 생각을 한다. 밭에 김장거리는 잘 자라나. 무는 제법 굵어지고, 배추는 속이 차는가, 들여다보러 갔다가 하나 둘 맛을 본다.

가을걷이한 들판에 푸릇푸릇 올라오는 겨울 곡식과 풀들. 자연의 땅에는 빈 밭이 없다. 빈 듯 보이는 밭에 가보면, 냉이·달래·광대나물·겨울초·점나도나물·별꽃 따위가 찬 기운에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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