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뀌꽃
마디풀과의 일년초인 개여뀌
학명Persicaria longiseta (Bruijn) Kitag.
원산지 한국
고개숙일수록 멋드러진 여귀꽃
혹시 '여귀'라는 풀이름을 아는가? 요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흔들 것이다. 하지만 꽃사진을 보면 '아하, 어린시절에 많이 보았구나' 혹은 '강가에 많은 풀이로구나'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여귀라는 풀은 우리나라에 지천으로 널려서 우리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풀이지만, 요즘은 그 이름조차 지워져가고 있다. 왜 그럴까? 꽃향기가 아름다운 풀들도 각종 환경파괴로 사라져가는 터에, 꽃도 볼품없고 특별하게 돈벌이에 이바지하지도 않으니 무자비한 사람들 앞에서 살아남을 리 없다. 그러니 참으로 외롭고 서러운 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어떠했는가?
동양의 은은한 멋을 지닌 풀
예로부터 동양의 선비들은 여귀라는 풀을 그림이나 문학의 소재로 자주 이용했는데 그것은 여귀라는 풀이 동양 어디에서나 흔한 풀이었기 때문이었다. 중국 고대의 시를 모아놓은 '시경'에서도 여귀에 관한 시들이 아주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여귀의 그림이 나타나는데, 고려청자에도 여귀의 문양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가. 또 문집류를 살피면 월사방장이 족자에 여귀꽃을 그렸고 이조시대에서는 신사임당, 정선 같은 화가들이 소재로 이용했다.
이규보 / 여귀꽃 떨기 속의 해오라기[白鷺]를 보고
앞 여울엔 물고기와 새우가 아주 많아서
해오라기란 놈 물결을 가르며 날아들다가,
사람을 보고는 문득 놀라 일어서서
여귀꽃 핀 언덕으로 도로 날아가 앉았네.
목을 빼고 사람이 가길 기다리다가
가랑비에 온 몸의 깃털 다 젖겠구나.
마음은 오히려 물고기를 노리는데
사람들은 모두 '아무 생각도 없이 서 있네.' 라고 하네.
이 시는 이규보(1168~1241)의 '여귀꽃과 흰 해오라기' 라는 시인데, 요즘 시인들이 도저히 노래할 수 없는 내용이다. 이미 우리시대의 문인들은 여귀꽃을 잃어버렸고, 그 대신 국적잃은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영화 같은 스크린에게 모든 서정성(敍情性)을 저당잡혀 버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여귀란 어떤 풀인가?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강이나 냇가 주변이라면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쉽게 눈품팔 수 있는 풀이다. 마디풀과인 여귀는 키가 보통 50센티미터 내외에서 2미터가 넘는 것도 있지만 무리지어 살아가는지라 물가에서 살아가는 풀들중에서 생명력이 강한 편이다. 그러나 갈대나 줄 같은 강인한 물가의 풀들과는 달리 잎이 무르고 수분이 많은 편이다. 잎은 씹으면 신맛과 매운맛이 우러난다. 그러나 애기똥풀처럼 사람에게 치명적인 해를 주지는 않는다. 옛날에는 '날채', '요화'라고 하여 연한 잎을 뜯어다 나물로 해먹었다고 한다.
여귀는 가을이 되어야 비로소 사람의 눈에 관심을 끈다. 모든 곡식들이 고개 숙이면 여귀도 이삭꽃을 숙이는데 한데 어우러져 고개 숙인 여귀꽃의 풍경은 은은한 멋을 드러낸다. 마치 곡식처럼 다닥다닥 매달려 꽃으로 보이지 않지만 작은 알갱이 하나하나가 꽃이다. 봄꽃이나 여름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을걷이를 갈무리한 어머니의 얼굴 같은 아름다움이랄까. 게다가 가을바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섭리로 받아들이면서 흔들거리는 모습은 단순한 풀이 아니라 뭔가 생각하는 듯한 사람을 연상시킨다. 꽃의 크기와 종류도 많아서 요즘은 관상용으로도 개종되고 있은 아무래도 야생의 여귀의 멋은 찾아볼 수 없다. 꽃이삭이 가는 이삭여귀, 줄기에 보랏빛 얼룩점이 있는 왕개여귀, 잎에 얼룩무늬가 있는 바보여귀, 꽃 하나하나가 비교적 큰 꽃여귀 등이 있다. 이중에서 털여귀는 잎이 달걀모양이고 키가 2미터에 가깝다. 이 털여귀는 관상용으로도 가꾸어진다.
여귀는 아이들과 아주 친한 동무였다. '여귀'라는 이름이야 어른이 되어 식물도감이나 보고 알았겠지만, 유년시절에는 어독초(魚毒草), 독풀, 매운풀, 물고기잡는 풀이라고 이름했다. 아이들은 냇가로 몰려가 목욕을 한바탕 한 다음, 물고기잡는 놀이를 하는데, 바로 그때 이 여귀풀이 쓰인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귀풀을 뜯어낸다. 줄기가 아주 질겨서 잘 뜯어지지 않으면 뿌리채 뽑기도 하고 돌멩이로 쳐서 끊었다. 묘하게도 그 여귀풀에는 벌레들이 많았는지라 조심하지 않으면 팔뚝을 쏘여서 퉁퉁 붓게 마련이었다. 아이들은 여귀풀을 저마다 넓적한 돌에다 놓고 콩콩 찧기 시작한다. 혼자서는 어림없는지라 반드시 한꺼번에 덤벼야 했다. 그리고는 물흐름이 느린 냇가나 얕은 곳에다 일제히 풀을 뿌린다. 물흐름이 세면, 일정한 범위에다 돌이나 모래로 막아놓고 거기다 여귀를 뿌린다. 그러면 금방 효과가 나타난다. 피래미니 갈겨니 같은 물고기들이 주로 떠올랐는데, 맨 아래쪽에서 신발을 벗어들고 물고기를 건져올리면 되었다. 이런 방법은 어디까지나 놀이였는지라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는 없었다. 또 여귀풀을 찧어서 풀어놓는 것이 요즘처럼 농약을 풀어놓거나, 비오는 틈을 타고 살인적인 폐수를 쏟아놓는 것과 비교해서는 안된다. 여귀는 아주 작은 물고기들을 잠시 어지럽게 할 뿐 농약처럼 치명적이지는 않았고, 조금만 물살이 세면 그 효과가 금방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그렇게 풀을 가지고 놀면서 자연과 인간과의 삶을 배웠던 것이다. 가끔씩 잡은 갈겨니 배를 따서 부레를 끄집어낸 다음, 그것이 둥둥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아하, 물고기는 저것 때문에 물에 뜨는구나."하는 것을 깨달았고, 손등을 벌레에게 물렸을 때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건만 여귀풀즙을 발라보고는 "어허, 붓기가 빠지네."하면서 여귀풀이 독성을 해독시키는 성질이 있음을 알았다. [출처] <고개숙일수록 멋드러진 여귀꽃(선경사보)>|작성자 마법사 조선시대에는 ‘요화(蓼花)’라고 하였는데 『동의보감』에서는 ‘뇨화’라 하였다. 이명으로는 수료(水蓼)·택료(澤蓼)·천료(川蓼)·수홍화(水紅花)·홍료자초(紅蓼子草) 등이 있다. 학명은 Persicaria hydropiper (L.) SPACH.이다. 여뀌는 습지 또는 시냇가에서 자라며, 높이 40∼80㎝로서 털이 없고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잎은 피침형으로 어긋나는데 양끝이 좁으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길이 3∼12㎝, 너비 1∼3㎝로서 표면에 털이 없다. 꽃은 6∼9월에 피고 수상화서(穗狀花序)는 길이 5∼10㎝로서 밑으로 처지며 소포(小苞)는 가장자리에 짧은 털이 있다. 열매는 수과(瘦果)로 흑색이며 편란형(扁卵形)이고 작은 점이 있다. 여뀌는 지혈작용이 있어서 약재로 이용된다. 주로 자궁출혈·치질출혈 및 그 밖의 내출혈에 쓰이는데 그 작용은 맥각균의 효능과 유사하다. 잎과 줄기에는 탄닌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항균작용이 현저하다. 또, 휘발성의 정유성분이 혈관확장작용으로 혈압을 내려주고 소장과 자궁의 긴장도를 강하시킨다. 민간에서는 이것을 짓찧어 물고기를 잡는 데 사용한다.
아이들의 아주 친한 동무 '여귀꽃'
실제로 17세기초 허준(?~1615)이 편찬한 <동의보감>이나 중국에서도 16세기말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에도 자주 나오는데 줄기는 해열제, 이뇨제, 해독제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놀이를 통해서 풀의 성분을 알고 자연의 소중함도 몸에 익혀간 것이다. 요즘 아이들처럼, 자연보호를 해야한다고 관념적으로 강요해서 익힌 것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었다. 우리 조상들은 여귀로 누룩을 빚기도 했으며, 오늘날에서도 일본에서는 조미료로 사용하고, 꽃이 늦가을까지 남는지라 양봉에도 유용하게 쓰이는 풀이니 이제라도 여귀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이름을 불러보자.
전수연 / 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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