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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2024.04.28)

털보나그네 2024. 7. 21. 16:09

북한산 둘레길

(북한산둘레길7구간,차마고도,북한산자락길)

2024년04월28일 일요일

코스:불광사-용화지킴터-족두리봉산불감시초소-향로봉갈림길-차마고도길-탕춘대옛성터길-북한산자락길-포방터시장-옥천암-세검정

거리: 8.58km

시간: 3시간17분34초(휴식: 9분3초)

평속: 2.7km/h

소모열량: 791kcal

기온: 13.0/29.0℃

어제 늦게까지 짐정리를 했다.

오늘은 와이프가 취나물과 돌미나리,참기름등을 가방에 쌓놓고 불광동에 사시는 누님댁에 갔다주고 오란다.

그래서 북한산 둘레길을 가볍게 돌고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북한산레미안 아파트, 도착하니 반갑게 맞이해 준다.

차를 한잔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님이 싸주시는 보이차,목귀버섯,잣등을 베낭에 넣고 나왔다.

장미공원으로 갈까하다가 용화지킴터로 발길을 옴겼다.

오늘 날씨가 덥다고 하더니 오르막을 오르는데 땀이 주룩주룩 나온다.

코스를 잘못정했나 한때 후회도 했지만 이미 들여논 발길이다.

족두리봉을 우회하여 향로봉입구에서 탕춘대방향으로 간다.

차마고도길, 그리고 이어지는 성곽길.

옛날 어린시절 이곳에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놀이터가 산이였다.

탕춘대성(蕩春臺城)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보조성’으로, 조선 숙종 때 완공됐다.

창의문 서쪽에서 시작, 북한산 서남쪽 비봉(碑峰) 아래까지 이르는, 길이 약 4㎞의 산성이다.

탕춘대성이라 부르는 것은 현재의 세검정 동쪽으로 100m쯤 되는 산봉우리에 탕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폭군 연산군(燕山君)이 기생들을 옆에 끼고 잔치를 벌이며 놀았다는, 옛날부터 유명했던 명승지다.

탕춘대성의 다른 이름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성(西城)이라고도 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고난과 치욕을 겪은 조선은 국방, 특히 수도 방위를 위한 대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숙종 때의 대대적인 도성 수축과 북한산성의 축조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어 서로 떨어진 두 성 사이를 연결, 방어 능력을 보완하고자 탕춘대성을 쌓았다.

성안에는 군사훈련장으로 연융대(鍊戎臺)를 설치하고, 선혜청(宣惠廳)의 창고와 경기도 11읍의 대동미를 저장하는 평창(平倉)을 두 군데 마련했다.

성곽길을 가다가 북한산자락길을 만난다.

북한산 자락길’은 서대문구 홍제동(弘濟洞)과 홍은동(弘恩洞) 일대의, 북한산 기슭을 타고 조성된 산책길이다.

‘실락어린이공원’에서 시작, ‘홍록배드민턴장’과 ‘삼하운수’ 종점을 지나 옥천암에 이르는, 총길이 4.5km의 산책로다.

서대문구(西大門區)는 지난 2014년부터 3년간 단계별 공사를 진행, 2016년 11월 완공했다.

‘홍은풍림1차아파트’ 뒤편 실락어린이공원에서 홍록배드민턴장까지는 제1구간 1.2km, 홍록배드민턴장에서 북한산둘레길 7구간(옛성길) 입구까지 제2구간 1.5km, 북한산둘레길 7구간 입구에서 옥천암(玉泉庵)까지의 제3구간(1.8km)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 길은 노약자나 장애인, 임신부 등 ‘교통약자’도 북한산을 즐기며 쉽고 편하게 산책할 수 있는, 무장애(無障碍) 숲길이다.

서울의 무장애 자락길 중 가장 긴 코스로, 휠체어나 유모차도 쉽게 갈 수 있는 데크 길이다.

전 구간에서 10% 이내의 경사도를 유지하고, 전체길이의 90%가 넘는 4.15km에 목재 데크를 설치했다.

잔여 구간엔 마사토를 깔아 편안한 흙길의 맛을 더했다.

중간 중간 그늘에는 쉼터를 만들었고 야외무대, 전망대, 음수대, 화장실, 안내판을 설치해 시민들의 편의를 높였다.

하늘을 뒤덮은 소나무, 갈참나무, 아카시아 숲의 두터운 그늘은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도 시원함을 선물한다.

아직 지역주민들 외에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몰라서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왔다가 또 안 오는 사람은 없다’는, ‘숨은 걷기 명소’다.

홍제동과 홍은동은 조선시대에 중국 사신이 머물던 국립여관인 홍제원(弘濟院)이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무악재를 넘어오면, 홍제원이 있었다.

여기서 ‘떡전거리’를 지나 연서역에서 평안도(平安道)로 향하곤 했다.

실락어린이공원에서 4km지점,다음에는 실락어린이공원에서 출발해봐야겠다.

포방터시장으로 하산.

이 일대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도성을 지키기 위해 설치한 오군영 중의 하나인 총융청(摠戎廳)이 있던 곳으로, 특히 포 훈련을 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또 6·25전쟁 당시 퇴각하는 북한군을 공격하기 위해 이곳에 포(砲)를 설치, 서울을 방어했던 데서 이런 지명이 유래됐다.

포방터시장은 ‘부탁해요 엄마’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많이 활용됐지만, 본격적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건, 요리연구가 백종원(白種元)의 ‘골목식당’에 소개되면서부터다.

나에게는 어린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삼덕교회,홍성교회는 아직도 그자리에 변함없이 있고 그 곳을 지나던 다리도 여전히 있다.

홍제천, 모습이 많이 바뀌였지만 그 골격은 그대로 이다.

옛모습을 찾으며 천천히 걸음을 옴긴다.

흐르는 물은 그때보다 많이 더럽다.

그때는 이 개천에서 수영을 하며 놀았다.

개울을 따라 올라가니 옥천암이 보인다.

천암은 홍은2동 8번지 북한산 끝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의 직할사찰이다.

동해 낙산 홍련암(紅蓮庵), 서해 강화도 보문사(普門寺), 남해 보리암(菩提庵)과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옥천암에 있는 관음보살상 덕분이다.

공식 명칭은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으로, 보물 제1820호로 지정돼 있다.

보도각 백불(普渡閣 白佛)로도 불리는 이 관음보살은 많은 영험담이 전해 내려온다.

일찍이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도 이 석불에 기도한 일이 있고, 또 흥선대원군의 부인 민씨(閔氏)도 아들인 고종을 위해, 자주 찾아와 기도했다고 한다.

높이 약 5m를 넘는 대형 마애보살좌상(磨崖菩薩坐像)으로, 흰색의 호분이 전체적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기 때문에 ‘백불’ 또는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고도 한다.

근래에 세워진 정면 1칸, 측면 2칸의 ‘보도각’이란 전각 안에 보존돼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마애불로서, 북한산 구기리 마애석가여래좌상(보물 제215호)과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보인다. 12~13세기 마애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삼각산(三角山. 북한산의 옛 명칭)의 맥이 비봉과 향로봉을 거쳐 인왕산으로 이어지기 직전, 삼각산이 끝나는 지점에 자리한 옥천암은 서울이 대규모로 도시화되기 전만 해도 옥같이 맑은 물이 흘렀다.

그러한 까닭에, 절 이름 또한 옥천암이라 불렸다.

절 조금 위에는, 탕춘대성 성곽이 흘러내려와 홍제천과 만나는 곳에,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이 하천을 가로지른다.

오간대수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탕춘대성의 성문이 홍지문(弘智門)이다.

이 문은 한성의 북쪽에 있다고 해서 한북문(漢北門), 북쪽을 지킨다 하여 한북문(捍北門)이라 불리기도 했으나, 숙종이 친필로 편액을 하사, 홍지문이 공식적인 이름이 됐다.

200년간 탕춘대성의 성문 역할을 하다가 1921년 홍수로 붕괴, 방치되던 유적을 1977년에 수습, 복원한 것이 지금의 홍지문이다.

형태는 도성의 사소문(四小門)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가운데 홍예문(虹霓門;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문)이 있는 석축기단 위에 단층 문루를 올렸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 건물이다.

바로 옆에는 홍예형 수구가 5곳 뚫린, 오간대수문이 홍제천을 가로지른다.

홍지문과 함께 설치됐던 이 수문도, 성문과 이력을 같이 한다.

규모는 길이 26.72m 폭 6.8m 높이 5.23m다.

성문과 수문, 탕춘대성 성벽을 한꺼번에 둘러본 후, 홍제천을 따라 내려간다.

홍제천은 과거 모래가 많아서, 사천(沙川)이라고도 불렸다.

홍제천을 따라 거슬러 오르니 '세검정'이 나온다.

세검정 터(洗劍亭 터)는 서울 창의문(彰義門) 밖에 있던 정자다.

조선영조 24년(1748년)에 세웠다.

그 이름은 인조반정 때 이귀·김유 등 이곳에 모여 광해군 폐위를 결의하고 칼날을 세웠다는 데서 유래했다.

1976년 11월 11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세검정은 평화를 상징하는 정자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는 점 등에서 한국적인 건축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다음은 백사실계곡이다.

이제시간도 그렇고, 코스도 더 진행하기도 그렇다.

햐여, 버스를 타고 경복궁역에서 하차했다.

많은 젊은 사람들과 외국인이 거리를 메워놓고 있다.

나는 이곳을 빠져나와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풀의 말

 

바람이 행복이에요

어디, 바람 없이 피는 풀꽃이 있나요

 

바람이 행복이에요

어디, 바람 없이 맺는 열매가 있나요

 

바람이 행복이에요

어디, 바람 없이 고개를 숙이는 풀잎들이 있나요

 

바람이 행복이에요

이창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