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홀로 떠난 감악산 산행이야기(2013.07.30.)

털보나그네 2013. 7. 31. 10:32


 
 
1.George Davidson-Somewhere In Heat  2.Yiruma-Kiss The Rain 
3.Shardad Rohani-Thoughts Of the Past   4.Rick Wakeman-The Sad Dream
 
 
홀로떠난 감악산 이야기.
 
 
 
 
 
2013년07월30일.
오늘은 와이프 생일날이다.
집에 일찍 오기로 하고 아침일찍 집을 나섰다.
하지만 파주를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간다는것이 시간소요가 참 많다.
그래도 대중교통이 더 좋다.
전철를 타고 버스를 타며 이동하는 것도 여행에서 적지않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버스나 전철안에서 스치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옷차림,차창가로 보이는 풍경과 기상상태등등...
음식점에 들려 사먹은 음식과 인심은 나그네가 꼭 챙겨서 느껴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평일이라 그런가,휴가철이라서 그런가 사람이 많치 않다.
양주역까지 앉아서 갔다.
8시10분경에 도착하여 화장실에 갔더니 만원이라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오늘은 아침을 먹지않을 생각이다.
요즘 과식을 자주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몸무게가 많이 늘어 난것 같기도 하다.
기다리는 25번(25-1)버스가 한참만에 왔다.
감악산 법륜사입구는 약30분을 가서야 닿았다.(09:15')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 조용한 산사.
정막을 깨지나 않을까 발거름이 조심스럽다.
재작년여름 엄청 많은 비가 파주지역에 퍼부어 수마의 피해를 보았던 법륜사계곡.
복구를 했다는데...그때의 모습이 상상이 간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사람하나 보이지않는 조용한 산길를 혼자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오른다.
빗물이 지나간 흔적과 사람이 지나간 흔적들이 엇갈려 있다.
임꺽정봉을 향해서 오른다고 올랐는데 결국 계곡길를 계속 올랐다.
삼거리에 닿으니 능선길이 시원하다.
300m를 갔다 다시 돌아 나았다.
정상에는 군부대가 자리잡아 커다란 시설물이 있고 정상석이 옆에 자리하고 있다.(11:20')
정상에는 사람이 더러 있다.
먼저 와 있는사람,새로 올라 온 사람들이 엉킨다.
까스로 전망은 볼 수 없지만 희미한 모습이나마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하산로는 여러갈래로 있다.
나는 까치봉이 있는 능선길로 하산했다.
조금 내려가니 팔각정자가 있고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한 무리가 있다.
나도 이곳에서 가져온 빵으로 요기를 하며 주변경관을 다시 둘러본다.
하산하는 능선길도 바람이 불어 계곡못지않게 시원하다.
까치봉을 거처 소나무숲길를 지나며 하산하는 길가엔 버섯들이 눈에 띄고, 올라오는 산객를 여러번 마주친다.
800m지점부터 임도가 나오고, 작은 계곡물이 흐르고...
계곡물이 합처지는 곳에는 도로공사가 한창 진행중인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주차장이 나올줄 알았는데 주차장은 안보이고 공사장만 보인다.
도로길로 나오니 비룡부대가 보이고 25번 버스정류소 표시가 서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주차장이겠다 생각하고 갔더니 보이지 않는다.
집이하나 있어 길을 물으려 하는데 낯선 나를 본 개가 엄청 짖어댄다.
주차장은 한참 가야하고 조금 더 가면 영국군 전적비가 나오니 그곳에서 버스를 타야 한단다.
 
영국군 전적비가 있는 이곳은 계곡물이 흐르고 많은 무리들이 여름을 즐기고 있다.
버스가 왔다.
양주역에 도착하니 3시다.
콩국수 한그릇 사먹고, 바로 온 인천행 전철를 탔다.
역시 전철안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얼마안가서 물놀이를 즐기다온 아이들 한무리가 타 시끄럽게 떠든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가운데 나는 긴 시간의 전철여행을 했다.
부천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후로 비는 내리다 말다를 계속 반복한다.
저녘으로 문어해물찜을 먹고 마트에 갔다오는데 비가 퍼  붓기 시작한다...
 
 
 
 
 
 
 
경기도 파주시, 양주시, 연천군 사이에 있는 산. 높이 675m이다.
예부터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바위라고 하였다.

 
 
파주 법륜사
 
 
 

 

 

 


 
 
 
 
물봉선과 가는장구채
 
 
 
 
 
 
 
 
 
 
 
 
 
 
 
 
 
 
 
감악산신라고비[ 紺岳山新羅古碑 ]
지금의 개석(蓋石)은 후대의 것이지만, 개석을 부착할 수 있도록 비신 윗부분에 凸모양의 축을 이루고 있어,
본래부터 개석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현재 비문은 오랜 세월 동안 글자가 없어져 고증할 수 없는 이른바 몰자비(沒字碑)이다.

 

감악산신라고비[ 紺岳山新羅古碑 ]
이 비를 신라고비로 추단하는 근거는, ① 비의 양식이 서울 북한산 정상에 세워져 있던 진흥왕순수비와 흡사하고, ② 『삼국사기』에 신라시대부터 고성(高城)의 상악(霜岳)·설악(雪岳), 북한산주(北漢山州)의 부아악(負兒岳)과 더불어 감악산이 매년 국가에서 소사(小祀)를 지냈던 명산으로 적혀 있는데, 여기에 세워진 비이기 때문이다. ③ 비가 세워진 일대에서 삼국시대의 기와조각이 출토되고 있는 것도 방증이 된다.
감악산 고비로부터 북동으로 약 4.5㎞ 지점에 있는 칠중성(七重城)은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의 지배권을 다투던 삼국간의 혈투장이었고, 그 뒤 거란침입과 6·25남침 때 고랑포(高浪浦)싸움이 있었던 곳이다.
칠중성의 안산(案山 : 집터나 묘자리 맞은 편에 있는 산)인 감악산에 고려시대부터 여러 신을 모신 사당이 세워진 것은 군사적 요지이기 때문이며, 이 비를 당나라의 명장 설인귀의 사적에 부회(附會)시킨 속설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감악산이 차지하는 전략적인 위치와 이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역사상의 여러 사건, 비의 양식이나 크기가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와 거의 같다 하여, 일부에서는 이 비를 또 하나의 진흥왕순수비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문의 내용이 알려지지 않아 아직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중부지방 무속신앙에서 중요시되는 감악산에 있었던 신사로, 이 지역 주민들에게 감악산은 ‘감박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잡지 제사조에는 소사(小祀)의 하나로 ‘감악(鉗岳)’이라 쓰여 있는데, 『고려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紺岳(감악)’·‘紺嶽(감악)’으로 표기되어 있다.

감악산은 신라 때부터 명산이며 무속의 신산(神山)의 하나로, 『태조실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궁중에서 이 산에 춘추로 별기은(別祈恩)을 지냈다고 한다. 산정에는 약 3m 높이의 비석이 있어 그것을 속칭 ‘빗돌대왕’이라 부른다.

주민들에 의하면, 대왕신이 비스듬히 갓을 쓰고 있기 때문에 ‘비뚤어진 돌’, 즉 ‘빗돌’이라고 하며, 또한 ‘갓바위’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갓을 썼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빗돌’은 비석의 속칭이기도 하다.

중부지방 무속의 열두거리굿 가운데 산마누라거리 무가(巫歌)에서 ‘감박산 천총대왕’이라는 산신 이름이 나오고, 문헌에는 당나라 장군 설인귀(薛仁貴)가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 산에는 감악사(紺岳祠)를 비롯하여, 운계사(雲溪寺)·신암사(神巖寺)·봉암사(鳳巖寺) 등의 당과 절이 있는 바, 중부지방에서 주요한 신앙처의 구실을 한다.

특히, 주변의 양주·포천·고양·적성·파주·교하·연천 지방에서는 감악산을 신산으로 여겨 신앙하는데, 봄·가을로 무당에게 의뢰하여 이 산의 산신을 맞아 굿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가리켜 ‘산을 쓴다’고 표현한다. 산을 쓰면,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식을 낳을 수 있고, 또 자식 있는 경우에는 수명 장수 한다고 믿는다.

굿을 할 때 산신을 맞는 제차(祭次)는 산정에서 하지만, 자식의 수명장수를 비는 제석(帝釋)거리는 산정에서 약 30m 아래의 우물이 있는 우물당에서 한다. 이 산은 민간무속에서만 모신 것이 아니라, 궁중무속에서도 제사지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달걀버섯
 
까치봉.
자주조회풀꽃
 
하산하며 뒤돌아 본 감악산 정상.
 
 
경기도 파주는 격전지다.
신라와 고구려는 임진강 유역 요충지인 이곳을 놓고 뺏고 뺏기는 전투를 벌였다.
1982년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675m) 정상에서 발견된 비석이 진흥왕의 다섯 번째 순수비라는 주장도 있다.
적성(積城)이라는 이름도 이 일대가 국경지대의 요지여서 성이 많았다는 것에서 유래.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적성전투에서 영국 글로스터 대대는 중공군 3개 사단의 파상공세를 사흘이나 버텨냈다.
이때 전사한 영국군을 기리는 전몰비가 적성면 설마리에 있다.

파주에는 아군이었던 영국군은 물론 적군이었던 중공군·북한군의 무덤도 있다.
적성면 답곡리의 '적군(敵軍) 묘지'에 중공군 360명을 포함해 1100여 구가 안장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방중 기간 중 중국 측에 제안한 유해의 본국 송환도 이곳에 묻힌 중공군이 대상.
적군 묘지의 묘는 양지바른 남향이 아니라 모두 북향이다.
적이었지만 죽어서나마 고향인 북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인간적 배려.
시인 구상의 연작시 '초토의 시' 중 8편은 적군 묘지에 대한 감상이다.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