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향로봉(2012.01.29)
Andante(안단테)
01. 편지(The Letter)
02. 산책(Promenade)
03. 나의 바다(The Sea)
04. 회상(His Life)
05. 눈온 아침(Snow In The Morning)
06. 그녀의 눈물(Tears I)
07. Misty
08. 이별(Goodbye I)
09. 첫사랑(First Love)
10. 사랑은(Love Is...)
11. 그의 눈물(Tears II)
12. 이별 II(A Tale In Heaven)
13. 기다림(Missi
삼각산/향로봉.
2012년01월29일.
오늘은 양평근교의 산을 가보려고 일찌감치 준비를 하고있는데 와이프가 발목을 잡는다.
집에서 할 일이 많으니 일찍 들어 오란다.
그래서 코스를 바꾸어 삼각산이나 다녀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선다.
7시에 집에서 나왔는데 시청에서 내려 사직공원까지 도착하는데 고작 한시간빆에 소요 안되었다.
사직공원을 지나 단군성전앞에서 인왕산길로 안가고 안가본 맞은편 길로 갔더니 선바위 이정표가 나온다.
그리고 바로 성곽길이 나온다.
잘 정리된 성곽길를 걸어 올라가다보니 독립문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이 나오고 등산로는 폐쇄된 싱태.
경비를 서고 있는 병사에게 물어 보니,
우측 도로길를 따라 200m를 가다 보면 나온다는 등산로가 전에 갔던 그길인줄 알았는데 그곳도 폐쇄되어 있고 조금 더 내려가란다.
오르는 길이 이곳에도 또 있었구나 하며 길를 따라 오르니 인왕산 정상을 지나쳐 창의문을 향해 내려 가는 길과 만나는 길이 나온다.
인왕산 정상을 이미 지나처 버렸고 기차바위로 빠지는 길도 지니처 버렸으니, 할 수없이 창의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아마도 그길도 중간에 폐쇄되어 도로길로 빠져야 할것이다.왕짜증.
어!성곽밑을 가다가 발견한 작은 길 하나가 있어, 호기심도 나고 폐쇄된 길 우회하기도 싫고해서 그길로 빠졌다.(09시)
허름한 집한체가 나오고 순한 개한마리가 조금 짖다가 꼬리를 흔든다.
마당앞을 지니는데 마당에는거위 한마리가 있다.
계단식 텃밭을 지나니 작은 동네가 나오고 동네를 지나니 별장식 주택가가 나온다.
골목길를 지나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 "반계 윤응렬 별장"이 나온다.
골목을 벗어나니 부암동길이 나오고 백석동이나오고 상명대앞길에서 석파정을 만나 안채를 둘러본다.
1905년 6월에 착수, 1906년 3월 이전에 2층의 벽돌조 양풍 양식으로 건립되었다. 1911년 윤웅렬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 셋째 아들인 윤치창(尹致昌)이 상속받아 안채 등 한옥 건물을 추가로 조성하여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이 집은 경사진 언덕 위에 석축을 쌓고 약간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동향〔庚坐甲向〕하여 자리잡았는데, 넓은 정원을 지나면 전면 높은 석축 위에 행랑채가 있고, 그 안에 사랑채와 안채가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대문간이 있는 행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一'자형 평면으로, 1칸 대문간 좌우로 각각 방 2칸이 있다. 막돌쌓기 기단 위에 사다리꼴 모양의 주춧돌을 놓아 사각기둥을 세웠으며, 가구(架構)는 3량이고,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으로 보이는 사랑채는 'ㄷ'자형 평면을 하였는데, 한옥 뒷부분에 자리한 2층 붉은 벽돌 건물이 이 별서 건물군(建物群) 가운데 가장 먼저 지어진 것이다.
안채는 사랑채 북쪽에 위치하였는데, 대문간을 들어와 오른쪽으로 꺾여 안마당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안채는 전형적인 서울·경기지방의 'ㄱ'자형 평면을 바탕으로 하여 'ㄷ'자형 평면에 가깝게 구성되었다. 회첨골을 이룬 곳에 2칸 크기의 안방이 위치하였고, 안방 왼쪽으로 정면 2칸 크기의 대청과 1칸 건넌방이 차례로 있다. 안방에서 앞으로 꺾여 나온 곳에는 각각 1칸 크기의 부엌과 찬방이 차례로 자리잡았다. 대청은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전면에는 세살덧문을 달았고 그 안에 유리분합문을 달았다. 대청ㆍ안방ㆍ부엌ㆍ찬방 앞에는 'ㄱ'자로 이어지며 좁은 널마루를 깐 쪽마루가 놓였다. 건넌방 앞에는 세살덧문을 단 누마루 반 칸이 앞으로 돌출되었고, 이 곳에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건넌방 앞에 누마루를 둔 것은 대한제국시기 전통가옥의 변천 과정을 보여준다.
안채 기단은 두벌대의 장대석 쌓기를 하였으며, 대청 앞에는 넓은 계단 3단을 두었고, 다듬은 방형의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약한 흘림이 있는 사각기둥(하부 21cm각, 상부 16cm각)을 세웠다. 안채 대청 가구는 5량이며, 긴 대들보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량을 걸었다. 종량 위에는 판공대를 세워 종도리를 받쳤고 종도리 밑에는 장혀를 두었으나 소로는 없다. 전면의 처마도리는 굴도리이나, 후면은 납도리이며, 도리 밑에는 장혀를 소로수장으로 상인방 위에 놓았다. 처마는 전면은 겹처마이고, 후면은 홑처마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그동안 이 집은 윤웅렬의 첫째 아들인 윤치호(尹致昊, 1865년~1945년)의 별서(別墅)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에 윤치호가 아니라 그의 동생인 윤치창의 별장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타인글이나 자료 인용] http://sca.visitseoul.net/korean/architecture/i_house01007.htm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별서(別墅)로서 안태각(安泰閣)·낙안당(樂安堂)·망원정(望遠亭)·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風樓) 등 8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뜰에는 해묵은 노송(老松)들이 차일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있으며, 서쪽 바위산에서 흘러내린 계류(溪流) 한가운데에는 평대(平臺)를 쌓고 그 위에 서양식 건축기법이 더해진 유수성중관풍루를 세웠다. 4모지붕이나 기와를 씌우지 않은 색다른 지붕을 하고 있다.
사랑채인 대원군별장은 1958년 종로구 홍지동으로 옮겨져 따로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원래의 터 뒤쪽 바위에는 ‘三溪洞(삼계종)’이라는 글자를 새겨놓아서 원주인인 영의정 김흥근(金興根)이 살 당시에는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라 불렀다.
뒤에 이름을 석파정(石坡亭)이라 바꾸고 대원군의 호도 석파로 하였다고 한다. 소유권은 이희(李喜)→이준(李埈)→이우(李堣) 등으로 세습되어오다가 6·25 직후 고아원·병원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현재 개인소유로 되어 있다. 서울 성곽의 북서쪽밖에 자리잡고 있어서 수려한 자연경관과 조선 말기의 건축술이 조화된 대표적 건축이다.
서울文化財大觀(서울特別市, 1987)
석파정을 나와 계천길을 따라 내려가 홍지문을 지나치고 옥천암을 지나 나의 어릴적 모습이 선한 계천과 다리를 만난다.
지금은 몰라보게 변해 있지만 오늘같은 겨울에는 썰매를 열심히 타고 놀던 계천이다.
아!한집이 어릴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천옆에 서 있다.
국민학교 다닐때 다니던 길를 따라 어릴적에 집에 가듯이 길를 따라 가지만 너무나도 변해버린 길이라 헷갈린다.
이길로 계속 오르면 산으로 연결된다.그리고 산위에는 성곽이 있다.
어릴적에는 따로 놀이터가 없었던 시절이라 산이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그곳에서 칼싸움도 하고 요즘 같으면 쥐불놀이를 열심히 했겠다.
산위에 올라서서 성곽길를 따라 가면서 계속 우리동네를 찾았다.
안산과 인왕산 그리고 북악산이 보이는 우리집 마당,텃마루....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아직도 살고 계시는 건너편 언덕에 누님집이 나무사이로 희미하게 보인다.
어릴적에는 몰랐는데 이성의 이름이 탕춘대성(서성)이고 삼각산이라고 알고있던 산이 향로봉 이였다.
어릴적엔 향로봉까지가 한계였다.
탕춘대성 암문까지 오니까 이곳부터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건조한 탓에 사람이 지날때마다 흙먼지가 일어난다.
향로봉정상은 통행금지,비봉정상도 통행금지다.
비봉탐방로 입구방향으로 하산(12시)을 시작.
이북오도청앞에서 7212번 버스를 타고 불광역에서 하차(2시).
순대국밥집에 들어가 한그릇(5.000원:싸고 맛도좋다)먹고 전철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3시다.
탕춘대성은 조선시대 한양의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으로 인왕산의 동북쪽에서 시작하여 능선을 따라 북한산 서남의 비봉아래까지 연결되어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조선시대 잦은 홍수와 토사유실, 왕권교체 등의 이유로 현재까지 완공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다.이 성의 명칭을 탕춘대성이라 한 것은현재 세검정 근처 산봉우리에 연산군의 놀이터였던 탕춘대가 있었다고 구전되어 그 이름을 딴 것이고 도성의 서쪽에 위치하였다하여'서성'으로도 불렸다한다.쌓다만 성벽4km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3호이다.
향로봉과 족두리봉.
물개바위
삼각산 금선사.